[RBS역사칼럼-길 위의 역사](13회) 신숙주 부인, 죽음으로 절개를 지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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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S역사칼럼-길 위의 역사](13회) 신숙주 부인, 죽음으로 절개를 지키다.
  • 김세곤 칼럼니스트
  • 승인 2018.04.25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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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어촌방송=김세곤 칼럼니스트] 성삼문 · 이개 등이 군기감 앞에서 사지가 찢기는 거열형을 당한 날 밤에 신숙주가 집에 오자 부인 윤씨가 절의를 저버린 남편을 질타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이야기는 박종화의 소설 『목 매이는 여자(1923년)』와 춘원 이광수의 소설 『단종애사(1929년)』에 나온다. 특히 이광수의 『단종애사』는 1963년에 영화로도 만들어져 크게 흥행했다. 1)

그러면 『단종애사』에 나오는 신숙주 부인의 자살 장면을 읽어보자.

숙주가 집에 다다르니 중문(中門)이 환히 열렸다. 숙주는 안방에 들어왔다. 부인이 없었다. 숙주는 다락문을 열었다. 들이쏘는 등잔불 빛이 소복을 하고 손에 긴 베 한 폭을 들고 울고 앉은 부인을 비추었다.

숙주는 놀랐다. 부인 어찌하여 거기 앉았소?”하고 숙주가 물었다.

부인은 눈물에 젖은 눈으로 남편을 바라보며,

“나는 대감이 살아 돌아오실 줄은 몰랐구려. 평일에 성승지와 대감과 얼마나 친하시었소? 어디 형제가 그런 형제가 있을 수가 있소. 그랬는데 들으니 성학사, 박학사 여러분의 옥사가 생기었으니 필시 대감도 함께 돌아가실 줄만 알고, 돌아가셨다는 기별만 오면 나도 따라 죽을 양으로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데 대감이 살아 돌아오실 줄을 뉘 알았겠소?”

부인의 말에 숙주는 부끄러워 머리를 숙이며 어찌 할 바를 모르다가 겨우 고개를 들며, “그러니 저것들을 어찌하오?”하고 늘어선 아이들을 가리킨다. 이때에 숙주와 부인과 사이에는 아들 8형제가 있었다.

그러나 숙주가 이 말을 하고 고개를 든 때에는 부인은 벌써 보꾹에 목을 매고 늘어지었다. 부인 윤씨는 죽은 것이다. 2)

그런데 이 소설은 역사적 사실(Fact)이 아니고 지어낸 이야기(Fiction)이다. 1456년 1월23일자 세조실록에는 “대제학 신숙주의 처 윤씨의 상을 당했는데 이 때 신숙주는 사신으로 명나라에 있었다. 세조는 신숙주의 매부 사재감 정(司宰監正) 조효문에게 호상(護喪)하게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성삼문이 6월8일에 처형되었으니, 신숙주의 부인 윤씨는 이미 5개월 전에 사망한 것이다.

그러면 왜 이광수는 이런 글을 썼을까? 아마 그는 신숙주의 부인조차 절개를 지켰는데 신숙주는 변절자였음을 강조하고자 함이었다.

한편 이광수는 『단종애사』를 쓰면서 역사 기록은 정사(正史)보다는 야사(野史)에 정확한 내용이 많다고 말했다. 아마 그는 신숙주 부인의 죽음에 관해 야담집 『송와잡설(松窩雜說)』을 본 것 같다. 『송와잡설』을 읽어보자.

“신숙주의 부인 윤씨는 윤자운의 누이동생이다. 세조 병자년 변란 때에 성삼문 등의 옥사(獄事)가 발각되었는데, 그날 저녁에 신숙주가 자기 집에 돌아오니, 중문이 활짝 열렸고 부인은 보이지 않았다. 공은 방으로 행랑으로 두루 찾다가, 부인이 홀로 다락에 올라 손에 두어 자 되는 베를 쥐고 들보 밑에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공이 그 까닭을 물으니, 부인이 답하기를, “당신이 평소에 성삼문 등과 서로 친교가 두터운 것이 형제보다도 더하였기에 지금 성삼문 등의 옥사가 발각되었음을 듣고서, 당신도 틀림없이 함께 죽을 것이라 생각되어, 당신이 죽었다는 소문이 들려오면 자결하려던 참이었소. 당신이 홀로 살아서 돌아오리라고는 생각지 못하였소.” 하였다. 공은 말문이 막혀 몸 둘 곳이 없는 듯하였다.

그러나 이 기록은 잘못 전해 듣고서 쓴 것이다. 부인은 병자년 정월에 죽었고, 육신(六臣)의 옥사는 그해 6월에 일어났으니, 이러저러한 말이 어찌 있을 수 있겠는가?”

『단종애사』와 『송와잡설』을 비교해보면 이광수는 『송와잡설』의 마지막 부분을 무시한 듯하다. 또한 『송와잡설』에서는 신숙주 부인은 옥사가 시작된 날에 죽은 것으로 되어있는데, 『단종애사』는 성삼문이 처형된 날로 바뀌었다.

세조의 왕위찬탈은 금기사항이었다. 이는 김일손이 김종직의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사초에 실어서 무오사화(1498년)가 일어난 것과, 1576년에 박계현이 선조에게 남효온의 『육신전』을 읽어보라고 권유했다가 육신전이 불타 버릴 뻔 한 사실이 말해준다.(선조실록 1576년 6월24일)

사육신 공원 역사관에 있는 박계현 관련 연표

그런데 성삼문 등 사육신은 1691년(숙종17)에 복관되어 충신으로 추앙받았고, 신숙주는 변절자가 되고 말았다. 백성들은 녹두 나물을 ‘숙주나물’이라 불렀고, 신숙주 부인은 죽음으로 절개를 지켰는데 신숙주는 변절했다는 전설을 퍼트렸다. 3)

사육신공원의 의절사

1) 박은봉 지음, 한국사 상식 바로잡기, 책과함께, 2007, p 137-146

2) 이광수, 단종애사, 일신서적, 1969, p 347-348

3) 신숙주는 노산군과 금성대군을 사사(賜死: 임금이 사약을 내려 죽이는 일)하라고 청했다.(세조실록 1457년 9월10일) 『연려실기술』에는 단종을 죽이자고 청한 대신 중에 으뜸이 정인지이고, 신숙주가 다음이라고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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