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BS역사칼럼-길 위의 역사](17회)-단종, 영월에서 유배 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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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S역사칼럼-길 위의 역사](17회)-단종, 영월에서 유배 살다.
  • 김세곤 칼럼니스트
  • 승인 2018.05.30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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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어촌방송=김세곤 칼럼니스트] #1. 영월 청령포에서

강원도 영월은 첩첩산중으로 둘러싸인 오지이다. 더구나 청령포는 3면이 깊은 강물로 둘러싸여 있고 한 면은 험준한 절벽이 가로막고 있어서 천혜의 유배지였다.

나룻배를 타고 청령포를 간다. 먼저 단종 어소부터 구경한다. 1457년 6월28일 청령포에 도착한 단종은 조그만 집에 거처했다. 7월15일에 세조는 강원도 관찰사에게 명하여 "노산군의 일상 용도에 쓰는 비용을 곡진(曲盡)하게 지급하라. 또 듣건대 거주하는 곳에 우물이 없다고 하니 급히 우물을 파도록 하라."고 명하였다. (세조실록 1457년 7월15일)

사진1=청령포 전경 - 나룻배를 타고 간다.
사진2=단종 어소

단종은 이곳에서 한(恨) 서린 시 두 수를 지었다. 어가 처마 밑에 시가 결려 있다.

천추의 원한을 가슴 깊이 품은 채

적막한 영월 땅 황량한 산 속에서

만고의 의로운 혼이 홀로 헤매는데

푸른 솔은 옛 동산에 우거졌구나.

고개위의 소나무는 삼계에 늙었고

냇물은 돌에 부딪쳐 소란도 하다.

산이 깊어 맹수도 득실거리니

저물기 전에 사립문을 닫노라.

사진3=청령포 단종 어소 처마에 걸려 있는 시

청령포에서의 유배살이가 오롯이 담겨져 있는 시이다. 단종 어소 옆에는 단종에게 절을 드리고 있는 소나무가 한 그루 있다. 청령포에는 소나무가 많다.

사진4=단종 어소 옆의 소나무

한편 단종을 모시고 온 나졸들은 단종의 인품에 반했다. 특히 의금부 도사 왕방연이 그랬다. 얼마나 반했을까? 왕방연은 서울로 돌아가면서 곡탄(曲灘) 언덕 위에 앉아 아래 시조를 지었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야 울어 밤길 예놋다.

단종은 청령포에서 두 달 정도 머물렀다. 그런데 여름에 큰 홍수가 났다. 별 수 없이 단종은 영월군 영월읍에 있는 영월 객사인 관풍헌으로 거처를 옮겨야 했다.

#2. 관풍헌에서

관풍헌으로 거처를 옮긴 단종은 활동의 제약을 받았다. 경상도 순흥에서 유배중인 금성대군(세종의 6남)이 단종복위를 도모하여 옥사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사진5=관풍헌

단종은 관풍헌 동쪽에 있는 매죽루에 자주 올라 시를 읊었다. 1)

먼저 ‘자규사(子規詞)’를 살펴보자. 이 시는 매죽루 누각에 걸려 있다. 2)

달 밝은 밤 귀촉도 슬피 울 제

수심에 젖어 다락에 기대섰네.

네가 슬피 우니 듣는 내가 괴롭구나.

네가 울지 않으면 내 시름도 없으련만

춘삼월에는 자규루에 부디 오르지 마소

月白夜蜀魂啾

含愁情依樓頭

爾啼悲我聞苦

無爾聲無我愁

愼莫登春三月子規樓

귀촉도(歸蜀道)는 두견새의 또 다른 이름이다. 신하에게 쫓겨난 촉나라 임금 두우가 슬피 울며 죽어서 새가 되었단다. 그래서 그 새를 ‘촉나라로 돌아가고 싶다’는 뜻으로 귀촉도라 불렀다. 그런데 귀촉도는 목구멍에서 피가 나도록 울어댔는데, 그 피가 떨어져 두견화(杜鵑花)가 되었단다.

이 두견화가 바로 진달래꽃이다. 사람들은 춘삼월에 진달래가 필 때 밖에 나가 꽃전을 부쳐 먹고 흥청하게 논다.

단종은 이런 춘삼월에 부디 자규루에 오르지 말라고 당부한다. 자신처럼 서러운 신세가 생각나면 잔치가 망치니까. 3)

사진6=자규루
사진7=자규루에 걸린 ‘자규사’ 시판

단종은 외로웠다. 잠도 오지 않았다. 그는 간혹 밤에 매죽루에 올라 사람을 시켜 피리를 불었다. 그 소리가 먼 마을까지 들렸다. 그러면서 ‘자규시’를 읊었다. 4)

원통한 새 한 마리 궁중을 나오니

외로운 단신 그림자 짝 잃고 푸른 산을 헤매네.

밤마다 잠을 청하나 잠들 수가 없고

해가 바뀌어도 한은 끝없어라.

一自寃禽出帝宮

孤身隻影碧山中

假眠夜夜眠無假

窮恨年年恨不窮

새 울음소리 끊긴 새벽 산 위에는 지는 달이 희고

피 흐르는 봄 골짜기엔 떨어진 꽃잎 붉겠구나.

하늘은 귀먹어 저 하소연을 듣지 못하는데

시름하는 이 몸의 귀만 어찌 이리 밝단 말인가.

聲斷曉岑殘月白

血流春谷落花紅

天聾尙未聞哀訴

胡乃愁人耳獨聰

단종의 외로움이 진하게 배어나는 시이다. 16세 나이에 부인 송씨와 생이별했으니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리고 한스러웠다. 권력이 이리도 무상한 것인가. 숙부 세조가 너무나 원망스러웠으리라.

실록은 승자의 기록이지만 시(詩)는 짓밟힌 자, 사라진 자들의 유서(遺書)이다.

1) 매죽루는 세종 10년(1428) 영월군수 신숙근에 의해 지어진 누각인데, 나중에 사람들은 한 맺힌 자규시를 읊은 단종을 추모하여 누각 이름을 자규루로 바꾸어 불렀다.

2) 한편 단종의 ‘자규사’ 등은 김시습, 조상치 등에 의해 후세에 전해졌고 이들은 ‘자규사’의 차운 시를 지었다.

3) 안타깝게도 단종은 다음 해 춘삼월까지 살지 못했다. 유배 온 지 4개월 만인 1457년 10월24일에 영월 관풍헌에서 죽임을 당한 것이다.

4) 『연려실기술』은 단종의 자규시를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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