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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S역사칼럼-길 위의 역사](23회) 영월 장릉 장판옥 - 조사위(朝士位) 186인
  • 김세곤 칼럼니스트
  • 승인 2018.07.11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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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어촌방송=김세곤 칼럼니스트] 영월 장릉의 장판옥에는 조사위(朝士位) 186인, 환관위(宦官位) 44인, 여인위(女人位) 6명 등 모두 236인이 모셔져 있다.

사진=장판옥 건물

먼저 장판옥 건물 3칸 중 중간 칸에 모셔져 있는 조사위(朝士位) 위패부터 살펴본다. 위패는 조사위라고 표시되어 있고, 상단과 하단에 이름이 깨알같이 적혀있다.

사진=조사위 위패

상단 우측에는 평안도 관찰사 조수량(1453년 계유정난 때 황보인과 같은 날에 죽은 병조판서 조극관의 아우), 충청도 관찰사 안완경, 경성부사 이경유, 진무 원구, 집현전 교리 이현로, 군기감 판사 윤처공, 선공감 부정 이명민, 안악 군사 황의헌, 고양 현감 고덕칭, 장신(將臣) 송석동, 형조 정랑 윤영손, 이조 좌랑 심신의 이름이 적혀 있다.

조수량과 안완경, 이경유, 이현로는 계유년(1453)에 안평대군 사건으로 죽었다. 황의헌은 안평대군과 친분을 맺어서 사냥을 핑계로 군사 974명을 모았고, 고덕칭은 군마(軍馬)와 군기(軍器)를 거두어들여 안평대군을 찾아가서 모두 능지처참되었다.

송석동과 윤영손, 심신은 1456년 6월 단종복위 거사 실패로 성삼문 등과 같이 죽었다.

이들 명단과 한 참 띄워져서 의춘군 이우직과 덕양군 이우량(안평대군의 아들들), 계유정난으로 죽은 김종서의 아들 김승규 · 김승벽 · 김목호 · 김석호, 김승규의 아들 김조동 · 김수동, 영의정 황보인의 아들 황보석 · 황보흠, 황보석의 아들 황보가마 · 황보경근, 이조 판서 민신의 아들 민보창· 민보해· 민보석· 민보흥 · 민석이, 병조판서 조극관의 사촌동생 조번, 조번의 아들 조계동· 조귀동의 이름이 적혀 있다.

이어서 이경유의 아들인 이물금 · 이수동 · 이한산, 이현로의 아들인 이건금 ·이건옥 ·이건철, 윤처공의 아들인 윤경· 윤위 · 윤탁 · 윤식· 윤개동 · 윤효동의 이름도 적혀 있다.

이들은 모두 안평대군 사건 그리고 계유정난과 연좌되어 죽은 사람들이다.

한편 위패 하단에는 정효강(정효전의 형), 정원석(정효전 아들), 정백지(정효강 아들)가 적혀 있다. 이들은 계유정난 사건과 연좌되어 죽은 자들이다. 이어서 권구지(권자신의 아들), 김현석(김문기의 아들), 성삼문의 아우(성승의 아들) 성삼빙 · 성삼고 · 성삼성, 성삼문의 아들 성맹첨 · 성맹평 · 성맹종· 성헌 · 성택, 성승의 매부 조숭문, 조숭문의 아들 조철산, 박쟁의 아들 박숭문, 그리고 계남 · 칙동의 이름이 보인다.

그 다음에 박중림의 아들이자 박팽년의 형제인 박인년 · 박기년 · 박대년 · 박영년, 박팽년의 아들 박헌 · 박순 · 박분, 그리고 점동 · 언동 · 피녹대 · 흔산, 박중림의 사위 봉여해, 봉여해의 숙부 봉축, 이개의 사촌 동생 이유기, 은산, 이개의 아들 이공회, 하위지의 아우 하기지와 하소지, 하위지의 아들 하호의 이름도 있다.

이어서 유성원의 아들 유귀련과 유송련, 유응부의 아들 유사수, 그리고 허조의 아들 허연령(김문기의 사위)과 허구령, 송석동의 아들 송창 · 송녕 · 송안 ·송태산, 오을미의 이름이 적혀 있다. 이들은 모두 1456년 6월 단종 복위사건과 연좌되어 죽은 이들이다.

다음에는 절제사 지정, 조석강, 목사 박이녕, 현감 박하, 하석, 양옥, 이차, 안막동, 최로, 김정, 김정의 아들 김개니동, 김말생, 김말생의 아들 김책 · 김호, 김상충, 김상충의 아들 김득천 · 김복천의 이름이 적혀 있다. 이들은 1453년 계유정난에 연루된 인물들이다.

그 뒤에는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 이석정, 조완규, 조순생, 불련의 이름이 적혀 있다. 이들은 안평대군과 관련된 인물들이다. 이어서 동지중추원사 조유례, 호군 성문치, 이예숭, 김옥겸, 최영손, 허축(허조의 6촌형제), 홍구성, 홍옥봉, 홍적, 이문, 진유번, 최자척, 신맹지, 신맹지의 아우 신중지ㆍ신근지ㆍ신경지이다. 이들은 세조 1년에 연루되어 죽었다. 이어서 별시위(別侍衛) 이정상, 별시위 이의영, 이의영의 아우 이말생, 녹사 이지영(유응부의 사위임), 이사이, 최득지, 최치지, 최치지의 아들 최윤석ㆍ최계동ㆍ최막동ㆍ최석동ㆍ최철동ㆍ최철산, 조청로, 조청로의 아들 조영서, 황선보, 권서(권전 조카), 권저, 최사우, 이호, 성손, 무손, 김감, 김감의 아들 김한지 · 김선지, 정관, 장귀남, 장충, 최면, 최시창, 심상좌, 김구지의 이름이 차례로 적혀 있다. 이들은 병자년(1456, 세조 2)에 성삼문과 함께 모의를 하다가 모두 죽었다.

다음은 관찰사 유귀산과 그 아우 유오산이 적혀 있다. 이들은 1457년(세조3)에 경상도 순흥에 거주하였다는 이유로 온 집안이 함께 죽음을 당하였다. 이어서 학생 심희괄, 학생 박수명인데 이 두 사람은 1458년(세조4)에 난언(亂言)으로 죽었다. 조사위 위패의 마지막에는 김죽 ·김신례 · 유세 · 강막동의 이름이 적혀 있다.

이리하여 조사위 위패에는 186명의 이름이 촘촘하게 적혀 있다. 이들은 단종을 위해 충절을 다한 이들이지만 사육신만큼 세상에 그리 알려지지 않았다. 이번 기회에 이들의 이름을 한 사람 한 사람 거명함으로서 이들을 위로한다. 1)

1) 이 글은 아래 책의 도움을 받았다.

지두환, 단종대왕과 친인척, 역사문화, 2008

김세곤 칼럼니스트  segon5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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