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촌방송=김세곤 칼럼니스트] 연산군은 세조(시아버지)와 권귀인(며느리)의 관계에 대하여 친국을 계속한다.

연산군 : "그 권씨의 일을 쓸 적에 반드시 함께 의논한 사람이 있을 것이니, 말하라."

김일손 : "국가에서 사관(史官)을 설치한 것은 사(史)의 일을 소중히 여겼기 때문이므로, 신이 직무에 이바지하고자 감히 쓴 것입니다. 그러하오나 이같이 중한 일을 어찌 감히 사람들과 의논하겠습니까. 신은 이미 본심을 다 털어 놓았으니, 신은 청컨대 혼자 죽겠습니다.”

연산군은 공모자를 대라고 다그친다. 하지만 김일손은 사관의 직무를 이야기 하면서 청컨대 혼자서 죽겠다고 진술한다.

이어서 연산군은 덕종(德宗)의 후궁 소훈 윤씨(昭訓尹氏)에 대하여 국문한다.

연산군 : "네가 또 덕종의 소훈 윤씨 사실을 썼다는데, 그것은 어디에서 들었느냐?"

김일손 : 이것 역시 허반에게서 들었습니다."

소훈 윤씨 역시 덕종(성종의 아버지)의 후궁으로 종 5품이었다. 그런데 권귀인이 세조의 부름을 받아 대내(大內 임금의 거처)에 들어갔을 적에 시종하던 계집 종 신월(新月)이가 소훈 윤씨의 일을 귀에다 대고 소곤거렸다. 덕종의 상을 마친 후 세조는 소훈 윤씨에게 토지와 노비와 집 등을 하사했는데, 일반적으로 내리는 시혜보다 갑절이나 더했고, 대소의 거둥에는 반드시 어가(御駕)를 수행하게 하였다는 소문이었다.

(연산군일기 1498년 7월 15일- 『실록』에 기록된 윤씨·권씨의 일에 관한 허반의 공초 내용)

이는 시아버지(세조)와 며느리(소훈 윤씨)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연산군은 김일손이 왕실의 비밀을 사초에 기록했으니 노한 것이다.

연산군 : "어느 때, 어느 곳에서 어느 사람과 함께 들었느냐?"

김일손 : "들은 월일이나 장소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중한 일을 어찌 감히 잡인(雜人)과 더불어 말했겠습니까. 신이 참으로 혼자 들었습니다."

연산군 : "허반이 두 가지 일을 모두 한때에 말했느냐?"

김일손 : "그러하옵니다.“

김일손은 권귀인과 소훈 윤씨의 일 두 가지를 허반으로부터 들었다고 아뢴다.

연산군 : "이러한 중대사를 어찌 잊을 리 있겠느냐. 네가 들은 곳이라든가 어느 날, 어느 달에 함께 들은 사람은 누구인지 모두 말하라."

김일손 : "어느 날, 어느 달과 들은 곳에 대해서는 신이 실로 잊었습니다. 신이 이미 큰일을 말씀드렸사온데, 어찌 감히 이것만을 휘(諱)하오리까. 허반이 혹은 신의 집에서 자기도 했고 신도 또한 허반의 집에서 잤사온데, 함께 유숙할 때에 허반이 말하였으므로, 신이 실로 혼자서 들었습니다."

이러자 연산군은 허반을 잡아오라고 명한다. 이때 허반은 권지 승문원 부정자(權知承文院副正字)로 관청에 있었다. 2) 허반이 잡혀오자 연산군은 허반을 좌전(座前)에 나오게 하고 친국한다.

사진=창덕궁 희정당 앞 뜰

연산군 :"네가 김일손과 더불어 말한 바가 있었는데, 모두 진술하라."

허반 : "신은 말한 바 없사옵니다."

허반은 김일손에게 말 한 바가 없다고 잡아뗀다.

연산군 : "너는 일손을 알지 못하느냐?“

허반의 진술이 이러자, 연산군은 허반에게 김일손을 알지 못하냐고 캐묻는다.

허반 : "신이 신해년에 김해(金海)에 있는 종의 집에 갔을 적에, 김일손이 사건이 있어 김해에서 국문을 당하고 있었으므로 신이 그 이름을 듣고 가서 보았는데, 드디어 상종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일찍이 같이 지내면서 글 읽은 일도 없으며, 깊이 서로 사귀었으나 또한 말한 일은 없습니다." 1)

허반은 전혀 말한 바 없다고 또 잡아뗀다.

연산군 : "네가 한 말은 김일손이 이미 다 말했는데, 네가 감히 속이느냐?"

연산군은 허반에게 감히 속이느냐고 언성을 높인다.

허반 : "그러한 사실이 있다면 어찌 감히 하늘을 속이리까. 청컨대 김일손과 더불어 대질하겠습니다."

허반은 김일손과 대질하겠노라고 버틴다.

연산군 : "네가 일손과 더불어 권귀인(權貴人)·윤소훈(尹昭訓)의 일을 말했다는데, 감히 끝내 휘(諱 거짓말)할 생각이냐?"

허반 : "신은 바로 귀인의 삼촌 조카이온데, 궁금(宮禁)의 일을 어찌 감히 말하오리까. 김일손이 신을 끌어댄 것은 계교가 궁해서 그러한 것입니다."

허반은 끝까지 버틴다. 이러자 연산군은 허반과 김일손을 대질 심문 시킨다.

연산군 : "허반이 끝내 거짓말하니, 네가 그와 면질(面質)하라."

김일손 : "신이 궁금(宮禁)과 연줄이 안 닿는데, 어디서 들었겠습니까. 신은 실지로 허반에게서 들었습니다."

허반 : "궁금의 일을 신이 어찌 감히 말하리까. 일손이 계교가 궁해서 그랬거나, 아니면 병이 깊고 혼미(昏迷)해서 그랬을 것입니다."

김일손 : "신은 비록 혼암(昏暗)하고 미욱하오나 어찌 망언(妄言)까지 하오리까."

이러자 연산군은 허반이 속임을 알고 명하여 어전에서 형장 심문을 했다. 그러나 허반은 형장 30대를 맞고도 오히려 사실을 털어놓지 않았다.

1) 허반은 1491년 신해년에 김해에서 김일손을 처음 만났다고 진술했다. 그런데 김일손이 김해에서 국문을 당한 때는 기유년(1489년) 10월이다.(탁영선생 연보에 의함). 허반의 진술은 착오가 있다.

2) 승문원은 외교문서를 관장하는 관서로서 부정자는 종9품이다. 승문원은 경복궁 안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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