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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지리산의보석같은약초이야기 - 약초캐기 위해 50년간 지리산 올라가현마을, 오봉마을 등 지리산에서도 가장 오지로 약초 많아마을인근 고동재에 대창포 비롯해 오미자, 다래 군락지 있어
  • 황인태 대기자
  • 승인 2019.02.07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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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약초와 구전 민간요법의 대가 박사문 선생 <1>

지리산 약초와 구전 민간요법의 대가 ‘박사문 선생’은 15살 때부터 약초를 캐기 시작해 지금까지 약 50년간 약초를 캐고 있다.

[한국농어촌방송/경남=황인태 대기자] 박사문 선생이 살고 있는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는 ‘2013 산청세계엑스포’가 열린 주 무대인 동의보감촌 이웃에 있다. 박사문 선생의 자택은 동의보감촌에서 60번 지방도를 타고 북쪽으로 2km 남짓 가면 있다.

박사문 선생 이야기에 들어가기에 앞서 박사문 선생이 살고 있는 산청엑스포가 열리는 동의보감촌 주변의 이야기를 먼저 해야겠다. 엑스포가 열리는 동의보감촌은 왕산과 필봉으로 둘러싸여 있다. 왕산과 필봉은 지리산의 하봉에 있는 봉우리들이다. 지리산의 모든 봉우리들은 ‘봉’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반야봉 국사봉 등 지리산의 봉우리들은 지리산의 봉우리라는 의미에서 ‘봉’을 쓰고 있다. 그런데 왕산만큼은 지리산의 봉우리임에도 예외적으로 ‘산’이라는 지명이 허용됐다. 그만큼 왕산은 지리산의 수많은 봉우리들 중에서 특별한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전국의 산중에서도 왕산이라는 이름을 바로 쓰는 산은 동의보감촌을 둘러싸고 있는 왕산 외에는 없다고 한다. 왕산은 높이가 923m로 그렇게 높은 산은 아니다. 그럼에도 왕산이라고 불리는 데는 바로 이웃에 구형왕릉이 있어서 그렇다는 설과 앞으로 이 산 밑에서 왕이 나올 것이라 그렇다는 설이 있다. 어떤 설이 맞는지는 모를 일이나 풍수를 하는 사람들은 왕산에 와보고는 풍수적으로 명당이라는 데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왕산 앞마당에서 세계전통의약엑스포가 열리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동의보감촌이 들어선 왕산과 필봉 주변은 예전부터 약초의 보고였다. 지리산 약초는 이 주변에서 다 난다고 할 정도로 약초가 지천이었던 곳이다. 문헌에 의하면 허준 선생이 ‘산음’에서 활동했던 것으로 나와 있다. 산음은 행정구역으로 보면 오늘날 동의보감촌 이웃동네인 산청군 생초면이다. 생초면은 동의보감촌이 들어서 있는 금서면의 바로 이웃동네이다.

동의보감촌은 이처럼 허준 선생이 활동한 지역에 만들어져 있다. 허준 선생이 ‘산음’에 온 것이 다름 아닌 스승인 류의태 선생의 병을 고치기 위한 약초를 구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처럼 박사문 선생이 사는 동네는 허준 선생이 좋은 약초를 찾아 왔을 정도로 예전부터 약초의 보고였던 지역이다. 여기서 박사문 선생은 자연스럽게 약초에 대한 공부를 하게 됐다. 박사문 선생은 당시에는 마을 사람 모두가 약초전문가들이었다고 했다.

“당시에는 약초를 캐서 시장에 내다 파는 일이 주업이었지요. 그리고 동네에 병원이 없어서 병이라도 생기면 모두다 동네에서 해결하곤 했습니다. 동네 어른들이 지금 생각하면 모두 의사들인 셈이지요.”

박사문 선생은 우리나라 나이로 올해로 67세이다. 그가 산으로 약초를 캐러 다니기 시작한 것이 15살 때부터이니까 벌써 50년간이나 지리산을 오른 셈이다. 그가 지리산에서 약초를 캐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진학에 좌절하고서 부터이다. 고향에서 중학교를 마친 그는 당시 인근에서 최고의 명문고등학교였던 진주고등학교에 입학시험을 쳐 합격했다. 당시 화계 같은 산골에서 진주고등학교에 들어가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웠을 때였다. 서부경남 전체의 인재들이 모여드는 학교였던 만큼 산골에서 합격은 그 마을의 자랑이었다. 산골에서 천재가 났다고 할 정도로 마을이 후끈했다. 그러나 집안 사정이 어려워 진학을 하지 못했다. 그 분을 이기지 못해 박 선생은 무작정 산에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화를 삭이느라 산을 다녔어예. 그런데 제가 사는 이 골짝이 지리산에서도 약초가 많기로 유명한 골짝이라여.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약초에 익숙하게 됐고 약초전문가가 됐지요.”

박사문 선생이 살고 있는 동의보감촌 주변은 지금은 길이 나 있어 산골 같아 보이지 않지만 박 선생이 한창 젊었을 때는 오지 중의 오지였다. 동의보감촌 뒷산인 왕산에서 북쪽으로 조금 더 가면 나타나는 가현마을, 오봉마을 등은 지리산에서도 가장 오지이고 약초가 많기로 유명한 곳이다. 해발 600m 고지의 마을들인데 박 선생이 어릴 때는 지리산에서 약초를 캐서 업을 이어가던 사람들이 많았다. 지금도 석재규, 김성윤, 왕등약초농원, 민대호 선생 등 약초꾼들이 있긴 하나 약초꾼 대부분은 이미 죽고 나머지는 외지로 떠나고 말았다고 한다. 이 마을들에는 오히려 지금은 외지에서 병을 얻어 요양하러 들어왔다가 마을이 좋아서 눌러앉아 주민이 된 사람이 더 많다고 한다.

이 가현마을에서 조금 산을 올라가면 700m 고지에 습지가 있다. 이 습지에 가야시대 군사들이 주둔했었다는 전설이 있다. 지금도 군사들이 성을 쌓았던 흔적이 남아 있다. 이 습지가 있는 고개 이름이 고동재이다. 습지에 사는 산고동이 우는 소리가 자주 들려서 고동재라 불렀다고 한다.

이 고동재 주변에는 대창포를 비롯하여 원시 오미자 군락지와 다래 군락지가 있다. 사람 팔뚝만한 오미자 나무가 수백그루나 있는 오미자 군락지는 말 그대로 장관이다. 지리산 원시 오미자를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지역이다. 또 고동재 주변은 지리산에서 유일하게 산삼을 캘 수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지금은 이 고개 주변이 지리산 둘레길 5구간으로 지정돼 지리산 둘레길 가운데서도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지리산은 다른 곳보다도 산청을 중심으로 한 지리산 동편에 약초가 많다. 지리산의 남쪽과 서쪽인 하동과 구례에서는 약초가 많이 나지 않는다. 지리산의 북쪽인 함양과 남원에도 약초가 나긴 하지만 산청만큼은 못하다. 그런데 산청 중에서도 박사문 선생이 태어나고 자란 왕산을 중심으로 한 금서면 일대가 약초가 가장 많이 난다.

박 선생 집 뒤에는 류의태 약수터가 있다. 류의태 약수터는 류의태 선생이 이곳의 물로 약을 달였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 어릴 적 박 선생은 류의태 약수터 근처에 소를 먹이러 자주 갔는데 한겨울에도 물이 마르지 않을 정도로 수량이 풍부했다고 한다.

“류의태 약수터는 아무리 가뭄이 와도 물이 마르는 적이 없었어여. 그리고 류의태 약수터 주변에는 지치, 하수오, 신선초 등이 지천으로 많았지예. 그런데 요즈음은 숲이 우거지고 약초가 남획이 되어서 그런지 그런 약초들이 잘 보이질 않아여.”

박사문 선생이 태어나 자란 곳인 산청군 금서면 일대가 이처럼 지리산 오지의 약초 고장이다 보니 그가 약초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런 일인지도 모르겠다.

박사문 선생이 특이한 점은 지리산에서 약초를 캐면서 약초뿐 아니라 지리산에 전해져 내려오는 민간요법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당시는 한의사가 전문적으로 없던 시절이어서 동네 사람들이 약초를 다루는 자신에게 치료를 부탁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 이런 필요성으로 인해 박사문 선생은 자연스럽게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민간요법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한의약이라는 것이 대부분 민간요법이 체계화된 것인기라. 민간요법으로 전해져 내려오던 것이 어떤 유명한 한의사에 의해 체계화 되면 그것이 한의약이 되는 것이지여. 그리고 민간요법은 철저히 치료효과를 본 것만 전수돼 내려오기 때문에 임상실험이 완벽하다고 봐야지여. 그런 점에서 민간요법이 효험이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요.”

그러나 전수돼 내려오는 민간요법이 점차 사라져 간다고 한다. 입으로만 전해져 내려오는 민간요법의 특성상 치료법이 사람의 기억에 의존하게 되는데 전수자들이 대부분 고령이라서 이제 기억이 왔다 갔다 하기 때문. 따라서 이들 전수자들이 나이를 더 먹기 전에 체계화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한다. 지리산에 전해져 내려오는 민간요법에는 현재 한의약이 모르는 보석과 같은 치료법들이 많이 있다는 게 박사문 선생의 주장이다.

박사문 선생이 전해들은 것 중 치료가 어려운 병이 낫는 것을 많이 본 분야가 좌골신경통 관련 민간요법이다.

“좌골신경통은 여성들이 아이를 낳기 위해 골반 뼈가 빠졌다가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해 대퇴골 좌측 신경을 건드리기 때문에 발생하는 병이라요. 그런데 이 좌골신경통으로 병원엘 가서 진찰을 하면 척추 3번, 5번 디스크라고 판정이 나오는 경우가 많아여. 이런 진단 가운데 많은 경우 좌골신경통이라고 보면 되는기라. 좌골신경통이 생기면 대퇴부 엉치 뼈가 아프기 시작하지여. 큰 신경이 하복부로 내려가는 신경을 건드리기 때문이라요. 그러면 다리가 춥고 발이 시리게 되어예. 심하면 여자들이 왼쪽 다리 한쪽을 못 쓰게 되는 경우도 있어예. 발을 못쓰는 것은 물론이고 그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어예.”

박사문 선생은 좌골신경통으로 걸음을 제대로 걷지 못하는 사람도 많이 보았다고 한다. 이것을 그대로 두면 관절도 문제가 생겨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되고 무릎 관절에 물이 차게 되기도 한다. 심하면 하반신 불수가 되는 경우도 생기게 된다. 좌골신경통은 이처럼 무서운 병이고 고통도 이만저만 한 게 아니다. 그런데 현대의학으로는 풀지 못하고 한의학으로도 안 되는 이 병이 지리산에 구전돼 내려오는 민간요법으로는 풀리는 것을 많이 봤다는 게 박사문 선생의 이야기이다.

“걷지도 못하던 사람이 지리산에 전해 내려 오는 좌골신경통 민간요법을 활용해 일주일 만에 걷게 되는 경우를 많이 봤어여. 모두들 거짓말이라고 할 정도인데 저도 그것이 어떻게 낫는지는 잘 몰라여. 그렇지만 현대의학으로도 안되고 한의약으로도 안되는 게 이 민간요법으로 나으니 신기할 뿐이지여.”

황인태 대기자  ngmnam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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