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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S역사칼럼-길 위의 역사] (2부 무오사화) - 28회 노사신, 영의정에서 물러나다.
  • 김세곤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2.08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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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어촌방송=김세곤 칼럼니스트] 1495년 8월1일, 2일, 3일에도 대간은 노사신의 죄를 극렬하게 논하였으나, 연산군은 들어 주지 않았다. 대간은 사직으로 항의 표시를 했다.

연산군은 복직을 명하였지만 대간은 또 사직했다.

8월4일에 훈구대신 윤필상이 나섰다.

“전하께서 속히 결단하셔야 하겠습니다."

연산군은 불쾌했다.

"대간이 내 말을 듣지 않으니, 내가 대간을 교체하려 한다."

윤필상이 또 아뢰었다.

"대간은 복직하지 않을 것이며, 대간을 교체하더라도 다음에 들어올 대간이 어찌 간언하지 않고 물러가겠습니까. 조정이 오래도록 안정하지 못할까 염려됩니다."

8월5일에 대간이 노사신의 간사함에 대해 강단(剛斷)하기를 거듭 아뢰었다. 연산군은 역시 들어 주지 않았다.

8월6일에 대간이 합사하여 노사신의 일을 논했다. 그런데 연산군은 다음과 같이 전교했다.

"경들이 나를 걸(桀)·주(紂)·유왕(幽王)·여왕(厲王)·원제(元帝)와 같은 폭군에 비교하기도 하나, 들어 줄 수 없다."

걸 ·주 · 유왕 ·여왕 · 원제는 나라를 망친 중국의 폭군들이다. 걸(桀)은 하(夏)나라의 마지막 왕이고 주(紂)는 은(殷)나라의 마지막 왕인데 폭군(暴君)의 대명사였다. 유왕(?~ BC 771?) 주(周)나라 왕으로 향락과 주색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아 견융의 침공으로 살해되었다.

여왕(재위 355~357)은 5호16국 시대 왕으로 늘 술에 취해 정무를 제대로 보지 않았고, 대신들과 궁인들을 함부로 죽이는 등 폭정을 일삼다가 폐위되었다. 원제(재위 BC 48~33년)는 한나라 황제로서 환관들의 득세를 막지 못했다.

위의 전교는 무엇을 의미하나? 연산군은 폭군을 하다가 폐위 될 것을 예감한 것일까?

한편 노사신에 대한 대간의 공격이 계속되자 8월13일에 노사신이 사직서를 올렸다. 하지만 연산군은 윤허하지 않았다.

8월15일에 사간원 사간 이의무가 아뢰었다.

"홍문관·대간이 노사신을 나라를 그르치는 대간(大奸)이라고 하여 극론하였는데 전하께서 살피지 않고 도리어 대간을 그르다 하시니, 이렇게 하면 언로가 크게 막히고 국사가 날로 글러질 것입니다."

하지만 연산군은 귀를 막았다.

8월19일에 집의 권주가 노사신을 조정에 둘 수 없음을 아뢰었다.

연산군은 전교하였다.

"노사신의 말은 옳으니, 그르다고 할 수 없다. 다만 대간이 아무 재상이 그르다고 말하면 그 재상을 체직시킨다면, 이것은 권세가 대간에게 있고 임금에게 없으니, 이것이야말로 나라가 망할 징조이다.”

8월22일에 겸 대사헌 한치형·겸 대사간 이즙·집의 권주·사간 이의무·장령 이달선·지평 박중간·유헌· 정언 한훈이 번갈아 상소하여 노사신을 죄주라고 했으나, 들어 주지 않았다.

8월24일에도 대간이 합사로 노사신을 논하였으나, 역시 들어 주지 않았다.

8월27일에 장령 이달선·정언 한훈이 아뢰었다.

"노사신의 일을 전교하시기를 ‘짐작하여 결단한다.’ 하셨는데, 상교(上敎)를 들려주소서."

연산군은 전교하였다.

"노사신은 잘못한 일이 없다. 들을 만한 일이라면 그것을 이제까지 안 들었겠느냐."

이러자 집의 권주와 사간 이의무 등이 합사하여 “하교하시기를 ‘노사신이 무죄하다.’하시니, 신등은 정말 실망입니다. 빨리 죄주소서." 하였으나, 연산군은 들어 주지 않았다. 이러자 대간이 두 차례나 더 죄주라고 하였으나 연산군은 완고했다.

8월28일에 집의 권주와 사간 이의무 등이 아뢰었다.

"노사신이 어제 널리 대신들에게 의논하기를 청하였으니 모름지기 결단하소서."

연산군은 전교하였다.

"그대들이 대신들에게 묻기를 청하는데, 신하 중에 혹 노사신을 옳다고 하려는 자가 있다 하더라도 모두 대간을 두려워하니, 그 누가 바로 말할 수 있겠느냐.“

9월8일에 연산군은 참판 이상 조정대신들에게 명하여 노사신의 일을 의논하게 하였다.

먼저 윤필상은 말했다.

"대간이 논청(論請)하기를 3개월이 계속되니 조정이 언제나 편안해지겠습니까. 노사신이 근무하기가 매우 어렵게 되었사오니, 부원군(府院君)에 봉하여 조정을 편안하게 함이 어떠하겠습니까?"

이어서 윤호가 말했다.

"노사신의 실수가 가볍기는 하지만 대간이 여러 번 청하여 마지않으니, 부원군에 봉함이 어떻겠습니까?"

정문형이 말했다.

"노사신이 아뢴 데 대한 시비를 신들이 자세히 알지는 못합니다. 다만 오랫동안 삼사가 논박하여 마지않음을 받았으니, 형세가 서로 용납할 수 없습니다."

성준도 의견을 제시했다.

"신이 전일 경연에서, 노사신이 이미 비난을 받았으니 함께 있기는 어렵다고 아뢰었사온데, 이제 다시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박건이 아뢰었다.

"대간이 일을 논하는 것은 혹 지나친 일이 있더라도 본디 너그럽게 받아들여 언로를 열어야 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이제 처음 즉위하셨으니, 더욱 곧은 말을 받아들이고 정직한 의논 듣기를 좋아하여 혹시라도 말하는 이들이 그 의사를 다하지 못할까 두려워하여야 하는 것인데, 노사신은 대신의 체모를 잃은 것입니다."

윤효손은 의논드리기를,

"신은 듣자오니 ‘나무가 먹줄을 좇으면 발라지고, 임금이 간함을 좇으면 성인이 된다.’고 합니다. 노사신은 터무니없는 말을 내어서 여러 사람의 이목을 놀라게 했으니, 자못 대신의 체모를 잃었습니다."

성현·김경조·안우건·한사문·김극뉴·윤민은 의논드리기를,

"대간은 조정의 이목(耳目)이므로 말이 정도에 지나치더라도 진실로 너그럽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데, 노사신의 말은 이미 대신의 체모를 잃었습니다."

김자정이 말하기를,

"노사신의 소행은 원래 잘못된 일이 없었는데, 다만 근일 말한 것이 이미 체모를 잃었습니다. 대간의 의논은 혹 실정에 지나친 말이 있더라도 오로지 노사신 만을 옳다하고 대간의 청을 듣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신종호·허침은 의논드리기를,

"전하께서 새로 대위를 계승하였으니, 마땅히 정직한 말을 받아들여야 하고, 말이 혹 적합하지 않더라도 역시 너그럽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데, 노사신이 대신이 되어 위엄으로 결단한다는 말을 드려서 상청(上聽)을 움직였습니다. 위엄으로 결단하는 것이 임금의 한 덕이기는 하지만, 이것을 대간에게 시행하여서야 되겠습니까. 이 말이 실시하게 된다면, 앞으로는 곧은 선비를 모욕하고 언로(言路)를 두절하게 될 것이니, 그 해(害)를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대간의 논란이 바로 노사신의 실수를 맞힌 것입니다."

이렇게 여러 의논이 들어가매, 연산군은 "내가 장차 열람하고서 결정을 짓겠다." 하였다.

9월12일에 대간이 거듭 노사신의 죄를 논하고 죄주기를 청하였으나, 들어 주지 않았다. 9월13일에 대간들은 연산군이 노사신을 죄주자는 공의를 좇지 않는다고 사직했다.

대간의 상차를 읽어보자.

"임금은 공의(公議)의 주인이요, 조정의 공의는 하루도 폐할 수 없으니, 공의가 폐지되면 나라는 하루도 유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전하께서 널리 조정대신들을 불러 군의(群議)를 모아 보았으되 한 사람도 노사신을 옳다 하는 사람은 없고 모두들 그의 그른 것을 배척하였으니, 이것은 조정의 공의이므로 전하께서 결코 좇지 않을 수 없는 것인데, 이제 하교하시기를 ‘공의는 원래 좇아야 하겠지만 노사신의 일은 좇을 수 없다.’ 하시니, 신들은, 어떤 공의는 좇을 수 있고 어떤 공의는 좇을 수 없는 것인지 그 내용을 모르겠습니다.

전하께서는 공의를 배척하고 죄인을 용서하시니, 조정에 어떠하며 종사(宗社)가 어떠하겠습니까. 전하께서는 일개 노사신 때문에 국론(國論)의 공정함을 폐지하고 위망(危亡)의 징조를 터놓으시니, 하늘에 계신 조종조의 영령이 ‘나에게 후사(後嗣)가 있다. 나의 종사를 떨어뜨리지 않으리라.’고 하겠습니까.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빨리 공의를 좇아 만민의 소망에 부응(副應)하게 하소서.”

그러나 연산군이 들어 주지 않으매, 대간이 사직하였다.

(연산군일기 1495년 9월13일 2번째 기사)

9월15일에 대간이 합사하여 노사신의 죄를 논계하였다

"노사신을 죄주지 않으시려면 신들의 직을 파면하여 주소서."

하지만 연산군은 듣지 않았다.

대간이 다시 결단을 촉구하자, 연산군은 영의정 노사신을 체직시키고 한직인 선성부원군으로 옮기도록 발령을 냈다. 그런데 체직 이유가 묘하다.

"노사신은 성종 대왕께서 부탁하신 원훈(元勳)이니, 이제 처음 정사를 하는 중에 말 한 마디를 실수하였다 하여 체직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민원(民怨)이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백성을 위하여 좇는 것이요, 경들의 말 때문은 아니다." (연산군일기 1495년 9월15일)

민원(民怨)이란 핑계를 댔지만 연산군은 대간의 끈질긴 탄핵에 손 든 것이다.

 

28-1 창덕궁 인정문
28-2 인정전 해설판
28-3 인정전

 

김세곤 칼럼니스트  segon5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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