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매거진W 299회 - 한우, ‘묶음 번호’ 때문에 사실상 이력 추적제 불가 ]

[한국농어촌방송=노하빈 기자] 2009년 6월 광우병 사태로 소비자들이 한우를 안심하고 먹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소고기 이력 추적제가 도입됐습니다.
이력 추적제는 국내산 한우에게 사람의 주민등록번호와 같은 12자리의 식별번호로 소비자가 직접 소고기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제도인데요.

이 식별번호는 사육, 도축, 유통, 판매의 모든 단계에서 등록되어 관리되고 이 번호만 알면 육질등급, 종류, 사육지 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백화점에서 판매하고 있는 한우 선물세트의 이력추적제도가 묶음 번호 제도 때문에 사실상 있으나 마나 한 제도라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소비자TV와 뉴스후플러스의 공동 취재입니다.

롯데백화점에서 판매하는 추석 선물세트에서 판매하는 700g짜리 한우갈비 한 팩입니다.

이 갈비의 한 팩 묶음 번호 중 하나의 이력을 조회해봤더니 전국 각지의 47마리의 소가 경기도 부천 공판장에서 도축 및 가공했다고 되어있습니다.

갈비 700g이 한우 47마리에서 나왔고, 이 한우들이 한 곳의 도축장에서 도축됐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이 갈비가 47마리의 소 중 어느 소의 들어있는 갈비인지 확인할 방법이 전혀 없습니다.
 
이력제는 소의 출생부터 도축, 포장처리 판매에 이르기까지 정보를 확인하는 제도입니다.

롯데백화점 관계자에게 갈비 팩에 들어있는 소의 이력을 물어봤습니다.

전화INT 전홍빈/롯데백화점 강남점 축산관리자
그 한 팩에 대해서 정확하게 어떤 마리가 대응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팩이 어떠한 공정에서 제조가 되고...

롯데백화점은 해당 갈비 팩에 정확하게 어떤 소의 갈비가 들어있는지 모릅니다.

묶음 번호제도 는 동그랑땡과 같이 한 팩에 여러 마리의 소고기 부위가 들어가 개체번호를 일일이 표시하기 어려울 때 편의를 위해 만든 제돕니다.

그런데 묶음 번호를 갈비에도 사용하고, 꽃등심에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롯데 백화점에서는 업체와 해당 제조공장에 사실 확인을 해보겠다고 했습니다.

전화INT 전홍빈/롯데백화점 강남점 축산관리자
그 한 팩에 대해서는 그 팩이 어떤 한우에서 나왔는지 아까 말씀하신 35마리 중에 하나긴 하지만, 정확하게 어떤 소에 매칭이 되는지는 확인이 어렵다고 합니다. 예, 저희가 지금 작업장에 확인해서 답변을 얻은 상태고요
 
쇠고기 이력 시스템에 나오는 소의 개체 수와 담당자가 파악한 소의 개체 수가 다릅니다. 담당자에게 작업장에서 얻은 정보와 소의 이력 정보가 다른 이유를 물어봤습니다.

전화INT 전홍빈/롯데백화점 강남점 축산관리자
기자: 지금 35마리라고 하셨는데 이력에는 47곳으로.
담당자: 개체 수는 아까 서른 저희가 조회했을 때는 서른 몇 마리인 것으로 확인했거든요
 
결국 한 팩에 들어가는 소의 정확한 이력은 제조공장에서도 파악할 수 없었습니다.

전화INT 전홍빈/롯데백화점 강남점 축산관리자
기자: 그럼 이력추적이 안 되는 거네요
담당자: 그 서른네 마리 한 마리 한 마리 다 조회가 가능하고요
기자: 그러니까 안 되는 거죠 그중에 어떤 한 마리인지를 모르시는 거잖아요?
담당자: 꼭 그 정확히 한 마리를 매칭해야 할 필요는 없는 거니까요.

롯데백화점 담당자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어 정확한 이력을 알 필요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소비자가 구매한 갈비 한 팩의 이력추적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취재 결과 묵음 번호 이력제가 관련 업자들의 편의를 위한 도구로 전락해 이력 추적의 기능을 전혀 못하고 있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소비자들은 제대로 된 정보제공을 받지 못하고 있었던 건데요.
묶음 번호 이력제의 문제점에 대해 더 자세히 전해드립니다.

한우 꽃등심 선물세트 2kg의 가격이 45만 원. 
소의 출생부터 도축 포장처리 판매에 이르기까지 정보를 기록한 소의 이력을 추적해봤습니다.

선물세트 안에 200그램짜리 팩 하나의 이력을 조회해봤더니 도축장 네 군데와 한우 22마리의 정보가 나옵니다. 
고기 200g이 22마리에 한우가 나왔고 이 한우들은 4곳의 도축장에서 도축됐다는 의밉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판매 직원에게 물었습니다. 

신세계백화점 한우 판매 직원
이거는 그중에 한 마리가 들어가 있는 건데 그게 어느 마리인지는 몰라요.
 
판매 직원은 25마리 가운데 한 마리가 들어가 있지만 어떤 소가 들어가 있는지 모른다는 말입니다. 

신세계백화점의 정육 코너을 책임지고 있는 실장에게 더 자세히 물어봤습니다.

OOO 실장/신세계 마트 정육 코너
이게 어디 건지 정확히 알 수가 없죠. 다 섞여져 있으니까.
아니야 아니야 매장에서는 20마리까지 할 수 있고요. 그렇죠. 다 섞여 있는 거지. 마릿수는 법적으로 그렇게 돼 있어요.

분쇄육 등을 만들 때 일일이 개체 번호를 정확히 표기하기 어려운 점 때문에 가공상 편의를 위해 만든 제돕니다.  
하지만 분쇄육이 아닌 최고급 꽃등심에까지 이런 제도가 악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묶음 번호 제도 때문에 사실상 이력추적제가 있으나 마나 한 제도가 돼버렸습니다. 

결국은 한 팩에 들어가는 소의 정확한 이력은 판매직원마저도 파악할 수 없습니다.
특히 이런 일은 명절 때 빈번히 일어납니다.

OOO 실장/신세계 마트 정육 코너
평상시에는 3마리 5마리 묶어서 팔다가 많이 나갈 때는 20마리까지 넘어가면 안 되고 가공장에서 명절에 작업하기에는 일일이 그걸 다하기가 힘들잖아요. 세절육 그런 게 문제가 아니라 그냥 마리로 50마리까지 돼 있어요. 

평소에는 이력번호를 제대로 사용하지만, 명절에는 작업량이 많아서 편의상 묶음 번호를 쓴다는 것입니다. 
이력제는 원래 특정 농장에서 기른 소가 특정 도축장을 거쳐 소비자 장바구니에 들어갈 때까지의 이력을 밝히려는 게 목적입니다. 

[소비자매거진W 299회 - 한우, ‘묶음 번호’ 때문에 사실상 이력 추적제 불가 ]

도축장 여러 곳, 수십 마리의 소에서 나온 200g 한우 팩이 소비자들의 신뢰를 받기는 어렵습니다.
결국 수십만 원짜리 한우 선물세트의 이력 추적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판매 부위가 다를 경우 일일이 이력을 확인하는 번거로움을 덜기 위해 도입된 묶음 번호 이력제가 관련 업자들의 편의를 위한 도구로 전락한 것을 취재 결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지난 설에는 한우 선물세트의 이력 추적제가 제대로 운용되고 있었을까요.
영상으로 전해드립니다.

신세계 백화점의 한우 설 선물 세트입니다.
신세계 백화점의 한우 선물 세트는 여전히 묶음 이력제로 되어 있습니다.
한우 한 덩이에 어떤 소가 들어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롯데마트는 다른지 확인해 봤습니다.
백화점뿐만 아니라 대형마트 또한 한우 선물 세트는 묶음 이력제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묶음 이력제는 식중독과 같은 질병이 발생하더라도 어떤 소에서 문제가 발생했는지를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묶음 이력제에 표기된 몇 개의 도축장과 몇십 개의 이력제를 확인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백화점이나 마트에서 판매하고 있는 한우 선물세트가 묶음 번호 제도가 소비자들에게는 어떠한 피해로 다가올 수 있는지 물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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