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장 취임 후 제일먼저 조합장 관용차 없앴다

농사짓다가 첫 출마해 현직 누르고 당선 이변 연출
서기보로 출발해 조합장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 돼
대평 딸기 명품 화 위해 수출, 잼 가공공장 만들 것
강경훈 전 진주시생활체육회 회장과 초, 중학교 친구

박보영 조합장은 이번 진주북부농협 조합장 선거에서 처음 출마해 치열한 선거전 끝에 현직을 누르고 당선되는 이변을 연출했다.

[한국농어촌방송/경남=황인태 대기자] 인터뷰를 위해 진주북부농협의 박보영 조합장 방에 들어갔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조합장 명패였다. 보통 명패는 조합장 ○ ◌ ◌ 으로 돼 있는데 박보영 조합장의 명패에는 이름 글자 아래에 回初里(회초리)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박 조합장에게 그 글이 새겨진 이유와 뜻을 물었더니 친구들이 조합장 됐다고 축하한다며 직접 명패를 만들어 주면서 “늘 처음을 생각하라”는 의미로 잘 보이는 명패에 이런 글을 새겨서 주었다고 했다. 박 조합장은 임기동안 늘 이 명패를 보면서 친구들이 해 준 말을 조합장의 좌우명으로 삼겠다고 다짐했다. 참 좋은 친구들을 두었구나 하는 생각에 박 조합장의 인품을 다시 보게 됐다.

박 조합장은 1985년 진주 동부조합에 서기보로 들어와 고향인 북부농협에는 1993년도에 왔다. 그 이후 줄 곳 북부농협에서 근무해 1년 반 전 전무로 퇴직했다. 임금피크제로 인해 다른 사람보다 조금 일찍 퇴직한 셈이다. 조합을 퇴직한 후에는 박 조합장의 고향인 명석면 왕지마을에서 평생 해온 농사일을 했다. 농사일을 하면서 마을 이장까지 맡아서 마을대소사를 챙겼다. 그리고는 이번 선거에 처음 출마해 당선돼 이변을 연출했다. 현직인 상대후보를 누르고 당선돼 진주시내 농협선거에서는 이변으로 꼽히는 지역이 됐다.

진주북부농협의 이번 조합장 선거는 치열했다. 박 조합장과 상대후보간의 표차이가 45표밖에 나지 않았다. 그만큼 초박빙의 경쟁을 벌였다. 조합원들이 박 조합장과 현직 조합장 등 2명의 후보를 놓고 마음의 갈등이 심했다는 의미이다. 선거가 치열했지만 현직 조합장을 누르고 당선될 만큼 박 조합장에 대한 조합원들의 평가와 기대 또한 컸다고 할 수 있다. 박 조합장은 자신이 평생 북부 조합에서 활동해 온 것들과 자신의 삶에 대해 조합원들이 평가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당선의 이유를 밝혔다. 박 조합장은 그러나 상대후보에 대한 평가도 여전히 많았기 때문에 그런 조합원들의 생각도 존중해서 4년 동안 조합의 정책을 펴 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박 조합장이 당선되고 취임한 후 처음으로 한 일은 조합장 관용차를 없앤 것이다. 박 조합장이 이 일을 처음으로 한 것은 선거기간 내내 겸손하고 깨끗한 조합장이 되겠다는 자신의 약속을 지키는 차원이었다. “불편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긴급한 경우에는 업무용차량을 이용하면 되기 때문에 그리 불편할 일은 없다고 말했다. 박 조합장은 선거기간 중 조합원들에게 약속한 일을 이렇게 조용히 실천해 나가고 있었다.

진주북부농협조합은 딸기로 유명한 진주시 대평면과 명석면을 관할지역으로 하고 있다. 특히 대평에는 딸기명인 김수현 선생이 농사를 짓는 곳이다. 그만큼 대평 딸기는 전국적으로 지명도를 확보하고 있다. 그래서 박 조합장은 임기 중 딸기생산과 판매에 주력할 계획이다. 국내 딸기 값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수출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조합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외시장 개척을 할 생각이다. 또 딸기잼 공장을 만들어 팔고 남은 조합원들의 딸기를 가공해 조합원 소득을 증대시킬 계획이다. 이외에도 고생하시는 영농회장들을 위해 수당을 월 5만 원가량 인상시킬 계획이다. 이런데 필요한 재원은 자신의 월급과 판공비를 줄이고 선심성 예산을 축소해 마련할 생각이다.

박보영 조합장은 1961년 명석면 왕지마을에서 태어났다. 태어날 때 70호 정도의 박 씨 집성촌이었다. 그래서 어려서는 동네에만 나가면 삼촌, 형들이 많아서 행복한 유년기를 보냈다. 명석초등학교와 명석중학교를 졸업하고는 시내에 유학 가 동명고등학교와 진주농림전문학교를 졸업했다. 초, 중학 친구로는 평생을 함께 하고 있는 강경훈 전 진주시생활체육회 회장이 있다. 자신도 87년부터 3년전 까지 매일 아침 조기축구를 할 정도로 운동을 좋아한다. 그래서 친구 강 회장과 진주시 생활체육회에서 이사와 감사를 하기 도 했다. 이처럼 직장생활을 제외한 사회생활은 강경훈 회장과 동고동락하면서 인생을 보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막역한 친구이다. 고등학교 동기로는 현재 모교의 교장을 하고 있는 문형준 선생이 있다.

박 조합장은 조합장 재출마에 대해 “농협에서 서기보로 출발해 조합장까지 됐으니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그래서 더 이상의 욕심은 없다. 4년을 열심히 해서 재선까지는 해 보겠지만 그 이상은 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다음은 박보영 조합장과의 인터뷰이다.

박보영 조합장 명패 이름 글자 아래에 回初里(회초리)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박 조합장 친구들이 명패를 만들어 주면서 언제나 초심을 잃지 말라며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조합장 박보영 명패에 回初里(회초리)라는 게 눈에 띈다. 처음으로 돌아가는 마을이란 뜻인데 무슨 의미인가.

-아. 저거. 한자를 그대로 풀이하면 그런 뜻이다. 친구들이 명패를 만들어 주면서 언제나 초심을 잃지 말라며 만들어 준 것이다.

△좋은 친구들을 뒀다.

-저는 좋은 친구를 둔 복은 있는 것 같다. 친구들 덕분에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생각한다.

△이번 선거가 처음 출마인가.

-그렇다. 북부 조합에서 전무로 퇴직한 후 1년 여 농사짓다가 이번에 출마했다.

△첫 출마해 당선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이번 선거가 어땠나.

-치열했다. 특히 상대후보가 현역조합장이어서 어려운 싸움이었다.

△득표율이 얼마인가.

-북부 조합은 조합원이 1300여명으로 크지 않은 농협이다. 그런데 선거가 치열하다보니 투표율이 93.8%로 진주에서 가장 높았다. 후보들의 지지자들이 대거 투표장에 나와서 그렇게 된 것 같다. 그중에서 51.8%를 득표했다. 상대후보 보다 45표 많았다. 아슬아슬한 선거였다.

△이렇게 후보들 득표율이 비슷할 경우 선거 후유증이 생기곤 하는데.

-아직까지는 그런 것은 없다. 저를 지지하지 않은 조합원도 제가 잘 모실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쟁점은 무엇이었나.

-아무래도 상대후보가 3선을 도전하는 것이어서 3선을 허용할 것인가 새로운 사람으로 바꿀 것인가 그게 이슈였던 것 같다.

△결국 조합원들이 변화를 선택한 것인데.

-그렇다고 본다. 오래 한 사람이 경험이 많아서 잘 하는 것도 있겠지만 새로운 인물을 통해 북부농협의 변화를 바라는 조합원들이 많았다고 보여 진다.

△박 조합장의 무엇을 조합원들이 평가했다고 생각하나.

-제가 선거기간 내내 얘기하고 다닌 것이 깨끗하고 겸손한 조합장이었다. 이 캐치프레이즈는 선거 구호라기보다는 제 삶이다. 저는 늘 깨끗하고 겸손하게 인생을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그런 저의 모습에 대해 조합원들이 평가하지 않았나 싶다.

△그럼 선거 때 그 구호를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제가 조합장에 취임하고 제일 먼저 한 일이 조합장 관용차를 없앤 것이다. 지금까지 제너시스를 관용차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것을 없애버렸다.

△왜 그랬나.

-굳이 조합장이 굳이 별도의 차량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 제 생각이다. 제 개인 차량도 있고 업무용 차량도 있다. 평소에는 제 개인차량을 이용하고 꼭 필요한 경우에는 업무용 차량을 활용하면 된다.

△그래도 행사에 참석하려면 좀 괜찮은 차가 있어야 되지 않나.

-그게 권위주의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저는 있는 그대로 조합장을 할 생각이다. 제가 조합장이라고 해서 특별히 위상이 달라지는 게 없다고 생각한다.

△상당한 개혁인데 또 다른 개혁은 어떤게 있나.

-조합장 급여도 삭감할 생각이다. 판공비 등도 마찬가지이다.

△얼마나 줄일 것인가.

-그건 이사회 등 절차를 통해 할 것이다. 아직 얼마를 삭감해야 할지는 결정하지 못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월급 적게 받고 관용차 없애는 것보다 일 잘해서 월급 많이 가져가고 좋은 차타는 게 더 낫지 않나.

-그것도 일견 일리 있는 말인데 조합은 일반 주식회사와는 다르다. 효율이나 생산성만으로 조합을 끌어갈 수는 없다. 조합원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함께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조합장이 가지고 있는 특권을 내려놓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저는 솔선수범해서 그런 특권을 내려놓겠다는 것이다.

△임기 중에 특별히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북부조합은 진주시 명석면, 대평면을 관할 지역으로 하고 있다. 이 지역은 딸기재배가 전국적으로 유명한 곳이다. 그래서 딸기와 관련된 사업들을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싶다.

△주로 어떤 것들인가.

-딸기를 제값을 받기 위해서는 수출을 늘려야 한다. 조합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딸기 수출증대활동을 할 생각이다. 또 생과로 팔고 남은 상품성이 떨어지는 딸기들은 쨈으로 만들어서 농민들 수익을 높여줄 생각이다.

△딸기 잼이 인기가 있나.

-지금까지는 인기가 좋다. 지금도 개인 농가에서 잼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지만 이를 조합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설까 생각하고 있다.

△특히 대평 딸기가 유명한 것 같은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

-진주시 대평면은 우리나라 딸기 기술 선도지역이다. 수막보온재배법이라고 지하수를 이용해서 보온하는 방식인데 이 기법을 대평에서 처음 시작했다. 또 대평에는 딸기명인을 보유하고 있다. 김수현 선생이라고 우리나라에서 딸기로 두 번째 명인타이틀을 딴 분이다. 그 정도로 북부농협 관할인 진주시 대평면은 딸기농사로 유명하다.

△딸기에 대한 지원 외에 다른 정책은 어떤 게 있나.

-벼농사에 필요한 공동방제 농약에 대해 무상지원을 할 생각이다.

△지금까지 공동방제에 농민들이 농약 값을 냈나.

-그렇다. 시 보조, 농협보조 등이 있지만 개인 농가에서도 평당 51원 정도의 부담을 지고 있었다. 그것을 내년까지 전액 무상으로 만들 생각이다.

△또 다른 정책은.

-영농회장들의 수당을 인상할 생각이다.

△영농회장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쉽게 말해 마을 이장님들이다. 도시에서는 이장과 영농회장이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경우도 있지만 농촌의 경우 대개 겸직한다. 이장 수당은 지자체에서 나오지만 영농회장 수당은 조합이 부담한다. 현재 월 10만원인데 이를 5만 원정도 인상할 생각이다.

△영농회장이 몇 명인가.

-31명이다.

△그럼 매월 150만 원정도 더 들어가게 된다. 재원은 어디서 마련하나.

-조합장 관용차 없애고 조합장 월급 줄이고 또 선심성 예산 등을 과감하게 축소하면 충분히 만들 수 있다. 이런 일을 하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이다.

△개인적인 얘기를 해 보자. 조합에는 언제 들어왔나.

-1985년 시험을 쳐서 진주동부농협에 입사를 했다. 거기서 8년 정도 근무하다가 고향인 북부조합으로 왔다.

△그럼 북부조합에서 어떤 일을 했나.

-여기서 부장, 전무 등 전반적인 업무를 다 했다. 이번 선거에서도 조합원들이 제가 조합업무의 전반을 해 온 성과를 평가해서 선택한 부분도 많다. 저는 조합의 제일 밑바닥에서부터 전무까지 다양한 경험을 했다.

△어디서 언제 태어났나.

-명석면 왕지마을에서 1961년에 태어났다. 왕지마을은 제가 태어날 때는 약 70호 정도 됐는데 지금은 45호 정도 된다. 이 마을은 박 씨 집성촌이어서 어릴 때부터 동네에 나가면 다 아저씨, 삼촌 그랬다.

△지금도 거기서 사나.

-저는 태어난 번지에 지금까지 산다. 그리고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농사도 지금까지 짓고 있다.

△농사는 어느 정도 되는가.

-논 2000평 밭 800평정도 된다.

△꼭 농사를 지어야 되나.

-그런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농협에 근무하면서 농사를 지어보아야 조합원들의 심정을 잘 이해할 수 있다. 제가 농협에 입사시험 치고 면접을 볼 때 면접관한테 약속한 게 있다.

△그게 뭔가.

-농사를 지으면서 농협에 근무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약속을 지키고 또 조합원으로서 농민의 마음을 알기 위해 지금까지 농사를 짓고 있다.

△학교는 어디를 나왔나.

-명석초등학교와 명석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부터 진주시내에 나가서 동명고등학교와 농림전문대학, 지금의 과기대를 다녔다.

△학교 친구들 중에서 우리가 알 만한 사람이 있나.

-명석초등학교와 중학교 친구로 진주시생활체육회 회장을 오래 지낸 강경훈 회장이 친구다.

△그럼 친구와 함께 생활체육회 활동도 했겠다.

-그렇다. 저는 조기축구를 평생 했다.

△어느 축구회인가.

-연암도서관 옆에 있는 축구구장에서 매일 아침에 운동하는 선학축구가 제가 속한 조기축구회이다. 87년부터 3년 전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에 나가서 공을 찼다.

△고등학교 친구는 어떤 사람들이 있나.

-모교 교장을 하고 있는 문형준 선생이 고등학교 동기이다.

△이번이 초선인데 언제까지 할 것인가.

-저는 조합에서 서기보에서 전무를 거쳐 최고의 자리인 조합장까지 된 사람이다. 제가 능력이 있어서 그리 된 것이 아니고 주변에 좋은 친구들이 있어서 그 덕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당선된 것도 운이 좋아서 그리 된 것이다. 저는 조합에서 최고의 자리까지 왔기 때문에 더 이상 욕심이 없다. 4년을 열심히 해서 조합원들이 선택해 주면 재선까지는 해 볼 생각이다. 그러나 그 이상의 욕심은 없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한국농어촌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