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재선에 성공

2년 전 조합장 유고로 시끄러웠던 조합을 안정시켜
‘우리 강산애’ 농산물 브랜드로 농림부 장관상 받아
‘조합장은 영업사원이다’는 지론 이번에도 실천할 것

유호종 진양농협 조합장은 2년 전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이번에 무난히 재선에 성공했다.

[한국농어촌방송/경남=황인태 대기자] 유호종 진주진양농협 조합장은 2년 전 진양농협이 조합장의 유고로 인해 시끄러웠을 때 조합장에 출마해 당선돼 이번이 두 번째 도전이었다. 재선도전이었지만 4명이나 출마해 선거가 치열했다. 그러나 조합원들은 4명 출마에 비해서는 높은 지지율인 40%의 득표율로 당당히 재선 조합장이 됐다.

진양농협이 이렇게 조합장 출마자가 많은 것은 진주시 동부5개면에 산재해 있던 5개의 조합이 1997년 진양농협이라는 간판아래 하나로 통합되었기 때문이다. 각 면의 조합원들이 자기 면에서 조합장이 나와야 손해를 보지 않는다는 막연한 피해의식이 있다. 면단위 소 지역이기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늘 조합장 선거가 시끄럽고 선거후유증도 적지 않았다. 지난번 조합장도 그런 이유로 중도에 유고가 됐다.

유 조합장은 그러나 조합장에 당선된 2년 전부터 지금까지 공정한 업무처리로 조합을 안정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2년간 시끄러웠던 조합이 많이 안정됐다는 데는 조합원들 대부분이 동의하는 부분이다. 또 “조합장은 영업사원이다”는 평소의 생각대로 세일즈에 몰두해 ‘우리강산애’라는 진양농협의 농산물 브랜드를 정착시켰다. 이런 공으로 인해 올해 1월 농림부장관상을 받기도 했다. 이번 선거에서도 이런 점들이 평가받아 무난히 재선에 성공했다는 게 유 조합장의 생각이다.

진양농협의 농산물 브랜드인 '우리강산애'의 곡물도정공장 전경.

유 조합장은 이번 임기동안에도 ‘우리강산애’ 브랜드 활성화와 농산물 판매에 주력할 생각이다. 농협은 이제 생산은 조합원이 판매는 조합이 하는 시대가 됐다는 게 유 조합장의 판단이다. 그래서 도시 농협들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세일즈를 벌일 계획이다. 이와함께 도정공장과 농자재센터를 조기에 오픈하여 조합원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할 생각이다. 도정공장만 하더라도 시작이 되면 조합원들이 생산한 쌀, 보리, 율무 등을 처리하는데 큰 문제가 없을 것이란 게 유 조합장의 판단. 또 진주 동부 5개 면의 조합이 통합된 역사로 인해 늘 조합원들 간의 피해의식과 경쟁구도가 있는 점을 불식시키기 위해 투명하고 공정하게 업무를 처리해 나갈 계획이다. 이것이 어긋나면 아무리 일을 잘해도 조합이 다시 시끄러워질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자신이 조합장을 맡을 시기에 진양농협이 안정되고 발전의 근간이 마련됐다는 평을 듣는 것만으로 자신은 만족한다고 생각했다.

유조합장은 1961년 진주시 사봉면에서 태어나 등건초등학교를 다니다가 부모님의 교육열에 따라 시내에 있는 망경초등학교에 전학해 그곳에서 졸업했다. 중앙중학교를 나온 후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반성종고를 졸업했다. 대학은 과기대에서 원예학을 전공해 석사학위까지 받았다. 그때부터 아버지 농사일을 돕기 시작해 벼농사를 짓다가 1997년부터 하우스 농사를 시작했다. 현재도 1200평 정도의 하우스 농사를 짓는데 주로 고추와 피망 등을 재배한다. 연간 1억 원 정도의 소득을 올리고 있는 유 조합장은 아이들도 다 커서 농사짓는 수입으로 사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다고 했다. 지난 2년간 무보수로 조합장 일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자신이 농사에서 손을 떼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유 조합장은 최선을 다해서 조합장 일을 보다가 큰 욕심 없이 내려놓고 다시 농사일 하러 돌아가는 게 꿈이라고 했다.

다음은 유호종 조합장과의 인터뷰이다.

△이번이 첫 출마인가.

-아니다. 2017년 4월에 전 조합장의 유고로 인해 치러진 선거에 첫 출마해서 당선돼 이번이 두 번째 도전이었다.

△그럼 재선인가.

-그렇다.

△이번에는 몇 명이나 출마했는가.

-총 4명이 출마했다.

△왜 그렇게 조합장 출마자가 많은가.

-진양 농협의 특성 때문이다.

△어떤 특성인가.

-진양농협은 진주시 동부5개면인 진성, 지수, 사봉, 일반성, 이반성, 사봉면 조합이 통합된 조합이다. 그렇다 보니 늘 면마다 1명씩 나와서 면 대결 성격을 지니게 된다. 그래서 늘 출마자가 많다. 각 면의 조합원들이 자기 면에서 조합장이 나와야 손해를 안 본다는 인식이 있다. 실상은 그렇지도 않은데 일종의 피해의식이 있는 것이다. 일종의 소지역이기주의가 있는 셈이다.

△이번에도 그렇게 된 것인가.

-이번에는 일반성면, 이반성면에서 각 1명 사봉면에서 저를 포함해서 2명이 나왔다.

△그래서 몇% 득표로 당선됐나.

-조합원 2951명 중 40.1% 정도 얻었다.

△그 정도면 4명 출마해서는 많은 득표율 아닌가.

-그렇다고 생각한다.

△높은 지지를 얻은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 조합은 2년 전에 조합장이 유고가 됐다. 선거후유증으로 그리 됐다. 그렇다 보니 조합이 시끄러웠다. 제가 2년 전에 조합장이 돼서 비교적 무난하게 조합을 이끌어 왔고 혼란스러웠던 조합을 안정시켰다. 또 지난 2년간 조합장 월급을 받지 않고 일했다. 그런 것들에 대해 조합원들이 그 공을 평가한 것 같다.

△월급을 왜 받지 않았나.

-제가 2년 전에 출마했을 때 조합의 순이익이 10억을 넘지 않으면 월급을 받지 않는다고 공약을 했었다. 그 공약을 지킨다는 차원에서 그렇게 했다.

△그럼 아직도 월급을 받지 않나.

-이번 4월 달 부터는 받는다. 조합의 순 이익이 10억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에서 쟁점은 무엇이었나.

-모든 조합이 다 그렇겠지만 과연 누구를 시키면 조합이 발전될 것인가가 이슈였다.

△그래서 본인이 평가받은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지난 2년간 제가 하는 일을 조합원들이 다 보고 있었다. 좋은 후보들이 많지만 그래도 역시 일할 줄 아는 사람은 유호종이다. 조합원들이 그리 평가한 것 같다. 이때 인터뷰에 배석한 윤상우 상무가 조합장에 대해 “공정하고 추진력이 있다는 평을 조합원들로부터 받는다.”고 거들었다.

△공정하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조합의 인사와 채용, 경제사업 등을 추진하는데 있어서 투명하고 공정하게 운영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럼 유 조합장 이전에는 공정하지 않았나.

-그런 부분들이 있어서 조합원들의 불만이 제기되곤 했다. 저는 모든 것을 투명하게 진행한다. 조합장은 제가 위탁받은 자리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굳이 제가 공정하지 않을 이유도 없다. 이 자리 벗어나면 저는 다시 농사지으러 간다. 그래서 조합장으로 인해 치부할일도 누구를 봐줄 일도 없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 펼쳐놓고 업무를 본다. 그런 것들이 조합원들에게서 좋은 평가를 들은 것 같다.

△구체적으로 지난 2년간 어떤 일을 했나.

-좀 많이 했다. 가장 큰 일은 ‘우리 강산애’라는 진양농협의 브랜드를 만든 것이다. 쌀이나 잡곡의 브랜드인데 이렇게 브랜드를 만들어 놓으니 판매가 더 잘 됐다.

△매출이 어느 정도 되는가.

-쌀만 연간 약 55억 원 정도 판다. 여기 출신이 경영하는 넥센에도 ‘우리강산애’ 브랜드의 쌀이 들어간다.

△주로 어떻게 판매하나.

-도시에 있는 농협들을 대상으로 세일즈를 다닌다. 저는 조합장은 영업사원이라고 생각한다. 도시에 있는 농협에 가서 고개 숙이고 우리 것 좀 팔아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일반 업체들을 찾아다니면서 우선 경품으로 넣어달라고 요청한다. 그렇게 해서 반응이 좋으면 본격적으로 ‘우리 강산애’를 써 달라고 부탁한다. 이런 방식으로 세일즈를 한다.

△그렇게 영업을 꼭 해야 되나.

-저는 이제 농협의 역할은 조합원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얼마나 잘 팔아주느냐가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조합원들이 농산물을 생산해 놓으면 뭐하나. 결국은 팔아야 돈이 되지 않나. 그런데 개별 농가가 판매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조합이 이 일을 대신해 줘야 하는 것이다. 이게 농협의 본질이다. 이거 하지 않으면 안된다. 지금까지 이런 일을 하지 않고 돈 장사 위주로 했다.

△농협하면 일반인들은 은행을 먼저 떠 올리게 된다.

-그게 잘못된 것이다. 물론 경제 사업을 하려면 재원이 있어야 되니 수익이 나는 돈 장사도 해야 된다. 그래도 돈 장사에만 목을 매서는 안 된다. 조합이 조합원들의 이익을 위해 구성된 것 아니냐. 조합원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 자기들의 물건을 파는 것인데 그게 조합의 큰 일이 되는 것이 당연하다. 저는 지난 2년간 그런 생각으로 조합장을 해 왔고 그래서 브랜드도 만들고 도시 조합이나 기업들을 찾아다니면서 영업을 한 것이다.

△원래 영업을 했었나.

-전혀 아니다. 농사만 지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영업을 잘하나.

-잘하는 것은 아니고 조합이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열심히 하는 거다.

△농림부 장관상을 받은 것도 이것 때문인가.

-그렇다. 제가 조합장으로 재직한 2년 동안 우리강산애 브랜드를 만들고 세일즈에 나선 것을 평가받아 올해 1월 달에 받았다. 농림부에서도 제가 한 일에 대해 높게 평가한 것 같다.

△앞으로 조합의 현안문제는 어떤 게 있나.

-농자재센터를 준공해서 운영하는 일이다. 현재 이 본부 옆에다 400평 규모의 농자재 센터를 이미 공사 완료했다. 그래서 이제는 잘 운영하는 일이 남아있다. 또 도정공장도 건축해야 된다. 이런 일을 제 임기 내에 다 완료하려고 한다.

△도정공장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조합원들이 시중에서 도정을 하면 40kg에 4000~5000원을 줘야 한다. 그런데 조합의 도정공장에서는 3500원을 받는다. 그만큼 조합원들에게 이익이 된다. 약 200평 규모의 도정공장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게 완공되면 조합원들이 생산한 쌀, 보리, 율무까지 다 처리가 가능하다. 조합원들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울대 병원과 함께하는 건강진단은 계속할 건가.

-그렇다. 지난 2년간 서울대 병원과 연계해서 조합원들의 의료진단을 실시했다. 2박3일 동안 약 500명 정도 했다. 또 자생한방병원도 와서 300명 정도의 조합원들의 건강을 살피고 갔다. 이런 일을 이번 임기동안에도 지속적으로 해 나갈 예정이다.

△개인적인 얘기를 해 보자. 고향이 어디인가.

-1961년 진주시 사봉면에서 태어났다.

△학교는 어디를 다녔나.

-사봉에서 등건초등학교를 다니다가 진주시내에 있는 망경초등학교로 전학 가 거기서 졸업했다.

△어릴 때 유학을 간 것을 보면 집이 좀 살았겠다.

-그렇진 않고 부모님이 교육열이 높으셨다. 중학교는 중앙중학교를 나왔고 고등학교는 고향에

있는 반성종고를 나왔다. 그런 다음 과기대에 들어가 석사까지 했다. 원예학을 전공했다.

△고향엔 왜 왔나.

-특별한 이유는 없고 아버지가 고향에 계셨고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그것을 받아서 했다.

△지금도 농사를 짓나.

-처음에는 벼농사를 짓다가 1997년부터 하우스 농사를 시작해 현재는 1200평정도 짓는다.

△주로 어떤 작물을 하나.

-고추 피망 등 채소위주로 한다.

△그 정도면 소득은 얼마나 되나.

-총 매출로 따져서 연 1억 원 정도 된다. 농비를 빼면 5천만 원 정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먹고사는 데는 지장이 없다.

△농사를 질 짓는 편인가.

-농사는 정직하다. 한만큼 나온다. 농작물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큰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평생 농사를 지어보니 실제 그렇다고 생각한다.

△농협과는 언제 인연을 맺었나.

-저는 조합원으로 농협과 인연을 맺었지 특별히 농협에서 근무하고 그런 것은 없다. 평생 농사를 지었고 그렇게 하다가 2년 전에 조합이 시끄러워서 조합장에 출마하게 된 것이다. 농협과 인연은 그게 처음이다.

△3선까지 도전할 생각인가.

-지금은 임기 4년을 어떻게 잘 할 것인가 그것만 생각한다. 그렇지만 원래 큰 욕심은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순리대로 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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