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장 고관달

▲ 국립원예특작과학원 고관달 원장

우리나라의 대표 건강식품인 김치는 면역력 증가와 항암효과로 주목받으며 세계 10대 건강기능식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우리 국민이 사시사철 맛있는 김치를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가을에만 재배하던 배추를 봄과 여름에도 재배할 수 있도록 우수한 품종이 개발됐기 때문이다.

원래 배추는 섭씨 18∼22도의 서늘한 기온에서 잘 자라는 채소로 여름철에는 재배가 불가능한 작물이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고온에 강한 품종이 개발되고 있어 우리 육종기술의 발전을 실감하고 있다.

과거 해방 당시 우리나라에는 속이 꽉 찬 결구배추 품종조차 없었다. 광복 이후 일본으로부터 들여오던 종자 반입이 중단되면서 농민들이 재배할 종자를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육종학자인 우장춘 박사는 김치를 만드는 채소류의 자급자족이 국민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라는 인식하에 배추 품종 개발에 집중했다.

그 결과 우 박사의 체계적인 육종 연구를 통해 짧은 시간에 병에도 강하며 결구도 잘되는 ‘원예1호’ 배추 품종이 개발에 성공하게 된 것이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재배되던 재래종 배추는 병에 약하며 결구도 잘 되지 않아 수량과 품질이 매우 낮았다. 또 종자 생산도 어려워 대중적인 재배가 불가능한 실정이었는데 수량이 많고 품질이 좋은 일대잡종 품종인 ‘원예1호’ 배추 품종 개발은 가히 혁명적이었다.

이밖에도 우 박사는 개발된 품종의 신속한 보급을 위해 육종가를 키워 민간 종묘회사를 육성해야 종자의 자급이 가능할 것으로 예견하고 육종과 종자 생산기술을 젊은이들에게 전수했다.

그래서 우 박사에게 채소 육종 기술을 전수받은 육종가의 노력으로, 1970년대 들어서는 우리가 개발한 무와 배추 품종이 육종기술의 최고 선진국인 일본에서 그 우수성을 인정받아 수출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해에는 일본은 물론 중국, 인도, 동남아 등으로 1800만달러의 무, 배추, 양배추 종자를 수출하기에 이르렀다.

자원도 없고 아무런 기술도 없던 가난한 나라의 과학자 한 명이 선진국 과학자도 생각하지 못한 십자화과 채소의 일대잡종 품종 개발을 시작했고, 피땀 흘려 후학을 양성한 결과 50년 후 결실을 맺어 이제 글로벌 시장에서 당당히 경쟁하며 세계 최고 수준의 품종을 내놓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노력의 결과는 사계절 내내 신선한 무·배추를 재배해 국민 건강에 기여함은 물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식품인 ‘김치’라는 새로운 고부가가치 산업을 육성해 수출산업으로 키 워 연 1억달러 이상을 수출하고 있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정부에서는 우리나라 경제에 한 획을 그은 우수 과학기술 70선을 선정했는데 그중 하나가 우리나라 최초의 일대잡종 배추 품종 육성이다.

이 품종 개발을 기반으로 국내 채소의 자급을 넘어 이제는 세계 최고수준의 채소종자를 외국에 수출하는 나라가 됐다.

광복 70주년의 의미를 깊이 되새기며 ‘씨앗은 그 자체가 하나의 우주이다’라는 우 박사의 가르침을 되짚어본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에 이바지하고 한국 사회를 견인할 획기적인 농업기술도 기대해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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