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 거창농협 조합장 재선에 성공하다

조합원에게 영농교환권 준 것 선거후 무혐의 받아
선거기간 내내 흑색선전 등으로 어려운 선거 치러
임기 중 거창에서 가장 큰 금융기관으로 자리잡아

이화형 조합장은 기가 세다는 거창농협에서 난무하는 흑색선전 가운데서도 안정적인 득표로 재선에 성공했다.

[한국농어촌방송/경남=황인태 대기자] 이화형(63) 거창농협 조합장은 이번 조합장 선거에서 흑색선전과 고발에 시달렸다. 조합원들에게 영농자재교환권을 준 것이 이슈였다. 이 제도는 이 조합장시대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번 선거 때 무자격 조합원을 가려내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무자격 조합원으로 판명난 사람에게도 영농자재교환권을 준 것이 선거법 위반이냐 아니냐를 두고 상대 후보가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이 조합장은 “설사 무자격 조합원으로 판명 났다 하더라도 지난 시절 조합원으로 활동한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영농자재교환권을 주는 게 맞다”는 입장이었다. 결국 검찰 고발까지 이어졌고 선거가 끝난 후 무혐의 처리됐다. 선거기간 중에 결과가 나왔으면 좋았겠지만 선거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려는 사정당국의 입장도 이해는 됐다. 그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 조합장은 기가 세다는 거창농협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이 조합장은 눌변이다. 일반 선출직에 비해 자신의 일을 잘 자랑하지 못한다. 자신이 억울한 일에 대해서도 자신의 입장을 잘 옹호하지 못했다. 기자는 인터뷰 내내 의미있는 말을 끌어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종내 별 좋은 말들을 듣지 못했다. 국가대표 농협이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성과를 자랑하고 있는 거창농협 조합장으로서는 의외였다. 말은 눌변이라도 이 조합장에게 남다른 능력이 있기에 거창농협을 국가대표농협으로 키운 것일 게다. 그래서 자료를 찾아봤다.

자료에 나타나는 거창농협의 지난 4년은 화려한 실적의 향연이었다. 국가대표 농협이라고 칭할 만했다. 인구 4만의 거창읍을 관할하고 있는 거창농협은 단위조합이다. 제2금융이란 의미이다. 그런데 모든 금융기관들이 다 들어와 있는 거창읍에서 단위조합으로 당당히 예금과 대출 면에서 압도적 1위를 하고 있다. 이 조합장이 취임한 이후 다음해에 대출 3000억 원을 돌파했다. 지금은 예금 4600억 원, 대출 3500억 원 정도 된다. 특정지역에서 제2금융인 단위농협이 제1금융을 비롯한 모든 은행들을 제치고 1위를 한다는 의미에서 거창농협을 국가대표농협이라고 부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조합장은 눌변이지만 자신의 임기 중 일은 똑 부러지게 했다. 그래서 상도 많이 받았다. NH농협생명 베스트 CEO상을 2년 연속으로 받았다. 2017년, 2018년의 일이다. 또 농협중앙회장 공적상을 비롯하여 상복이 많다.

이 조합장은 지난번 임기에서 신용사업에서 획기적 성과를 낸 것을 비롯하여 하나로마트를 증축해 거창에서 새로운 쇼핑문화를 열었다. 또 2017년에는 거창농협이 속한 12그룹에서 종합업적평가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NH손해보험 판매에서도 전국 1위를 달성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이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이 조합장은 이번 임기에서는 조합원 소득 5000만원 시대를 여는 기반을 마련할 생각이다. 이것이 달성된다면 전국농협에서 신기원을 이루게 될 것이다. 이 조합장은 이 길을 6차 산업에서 찾겠다고 했다.

이화형 조합장은 1956년 거창읍 국농소(國農所)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국농소(國農所)는 나라에서 농사를 짓는 장소라는 의미이다. 이 조합장은 전주 이씨이다. 조선시대에는 왕실의 종친이라는 의미다. 그런데 이 조합장의 윗대 할아버지가 임진왜란을 피해 거창에 왔다. 할아버지는 난이 끝나고도 돌아가지 않았다. 왕실 종친이었기에 나라에서 녹전을 내려줘 농사를 짓게 했다. 그게 국농소의 시작이었다. 그 이후 국농소는 전주 이씨들의 집성촌이 됐다. 이 조합장은 6살에 고향인 국농소에 들어와 지금까지 살고 있다. 군대 3년을 제외하고는 국농소를 떠나 본 적이 없다. 아내도 국농소에서 만났다. 초등학교 동기동창이다. 국농소가 자신의 모든 것이다.

이 조합장은 이번 재선으로 조합장을 끝낼 생각이다. 거창농협은 기가 세서 3선을 잘 허용하지 않는 전통이다. 괜히 힘쓰지 말고 아름답게 퇴장할 생각이다. 국농소에서 자라 지금까지 살고 있고 자신의 직장이던 농협에서 조합장까지 했으니 이만하면 괜찮은 인생이라는 게 이 조합장이 돌아본 자신의 인생이다.

다음은 이화형 조합장과의 인터뷰이다.

▲거창농협은 관할이 어디인가.

-거창읍이 관할이다.

▲조합원은 몇 명인가.

-약 3000명 정도 된다.

▲이번 선거는 재선인가.

-그렇다. 재선 도전이었다.

▲득표율이 얼마였나.

-두 명이 경쟁했는데 약 64%의 득표를 얻었다.

▲그 정도면 안정적인 득표 아닌가.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선거는 치열했다.

▲왜 그런가.

-조합원들에게 영농자재 교환권을 주고 있다. 그런데 자격이 없는 조합원에게 준 게 선거법 위반이라고 검찰에 고발이 됐다. 이게 선거기간 내내 쟁점이 됐다.

▲그게 무슨 말인가.

-이전부터 조합원들에게 영농자재 교환권을 줘왔다. 그런데 조합장 선거를 하면서 자격 없는 조합원을 가려내기 위해 일제정비를 했다. 그래서 조합원 자격을 상실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이 사람들에게도 영농자재 교환권이 나갔다. 이 부분이 문제가 됐다. 문제제기를 하는 측에서는 불법이라고 했고 저는 합법이라고 했다. 이게 조합장 선거기간 내내 시비거리가 된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됐나.

-선거가 끝난 후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그래서 말끔히 정리됐다.

▲선거기간 중에 결론이 났더라면 훨씬 쉬웠을 것 같다.

-검찰에서 선거에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 때문에 일부러 선거가 끝난 후 검토를 한 것 같다. 저는 무혐의 처리될 것으로 확신했다.

▲그것 외에는 큰 쟁점이 없었나.

-그렇다. 거창농협이 워낙 잘 운영되는 조합이어서 큰 쟁점이 없었다.

▲잘 운영되는 것들이 무엇인가.

-신용사업에서 거창농협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어떻게 약진했나.

-제가 조합장이 된 이후 다음해인 2016년에 거창농협의 상호대출금이 3000억 원이 돌파됐다. 지금은 대출금이 3500억 원, 예금이 4600억 원이다. 거창읍에서는 전체 금융기관 중에서 톱이다.

▲제2금융으로 굉장한 성과라고 생각된다. 어떻게 해서 이런 결과를 이뤘나.

-조합원 관리와 고객관리를 잘 하고 있다. 또 주부대학, 장수대학 등을 통해 고객을 유치하고 있다. 노래교실도 계속하고 있다. 이런 것들이 조합원들을 뭉치게 하고 조합에 예금도 하고 대출도 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다른 금융기관과 비교하면 어떤가.

-거창읍은 4만의 인구가 있다. 그래서 전체 금융기관들이 다 들어와 있다. 그런 가운데서 단위조합에 불과한 거창농협이 압도적인 성과로 1위를 하고 있다. 제1금융들도 단위조합인 저희들을 따라오지 못한다. 그래서 거창농협을 국가대표 거창농협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렇게 공격적으로 하면 부실채권이 발생하지 않나.

-당연히 그런 걱정을 할 거다. 그러나 대출을 이리 많이 해줬다고 부실이 된 것도 아니다. 우리조합은 연체비율이 0%이다. 2017년 농협중앙회로부터 클린뱅크 인증서도 받았다. 이것 역시 자랑해도 될 일이다.

▲또 다른 자랑을 해 달라.

-농협에서 손해보험을 판매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조합이 NH농협손해보험 판매액이 전국 1위를 차지했다. 2017년 일이다. 비록 특수한 한 분야이긴 하지만 거창이라는 작은 읍에서 전국 1위가 나온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또 생명보험 분야에서도 전국 2위를 차지했다. 이외에도 경남관내 지점 종합업적평가에서 창남지점과 대동지점이 소속 그룹에서 1위를 달성했다. 아림지점은 2위, 월천지점은 3위를 차지했다. 거창농협 소속 지점들이 상위권을 휩쓸었다.

▲이렇게 성과가 좋으면 중앙회에서 상도 주던데.

-그렇다. 2017년에 우리 조합이 소속된 12그룹에서 전국 우수상을 받았다.

▲신용사업 말고 경제 사업은 어떤가.

-지난번 임기 중에 하나로마트를 증축했다. 그래서 조합원과 지역주민에게 보다 다양하고 신선한 농축산물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 쇼핑의 즐거움을 하나로마트에서 누릴 수 있게 됐다.

▲지난번 임기는 그렇고 이번 임기에는 어떤 일을 할 것인가.

-중앙회의 공약이기도 하고 저의 공약이기도 한데 거창농협 조합원들의 소득 5000만원 시대를 열 것이다.

▲현재 수준이 얼마나 되는가.

-3000만 원 남짓 된다고 본다.

▲그럼 임기 중에 달성이 가능하겠는가.

-달성 가능 여부를 떠나 우리의 목표이다. 저는 잘하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해서 달성할 것인가.

-농업소득으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농외소득을 올려야 한다.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6차 산업이 답이라고 생각한다. 조합원들 농가에서 6차 산업이 진행될 수 있도록 조합에서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다. 또 대도시 농협들과 연계해서 우리 조합원들의 농산물이 잘 팔릴 수 있도록 체계를 만들려고 한다.

▲임기 중 해야 할 또 다른 일은.

-원로조합원들을 위한 건강센터를 건립할 계획이다. 올해 입안해서 내년에는 건축이 시작될 것으로 본다.

▲어느 정도 규모인가.

‘농협중앙회의 설립 기준이 있다. 3층으로 300평 이상 만들 생각이다. 의사 1인과 간호사 2인이 근무할 정도의 규모는 돼야 할 것으로 계획하고 있다.

▲개인적인 얘기를 좀 해보자. 언제 어디서 태어났나.

-1956년 거창읍 국농소에서 태어났다.

▲국농소라는 게 마을이름인가.

-그렇다. 마을 이름이다. 국가에서 농사를 짓는 장소라는 의미이다.

▲어디쯤 있는 마을인가.

-88고속도로 거창 톨게이트를 나와 합천방면으로 500m 정도 직진하면 나오는 마을이다.

▲국농소란 이름이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설명해 달라.

-제가 전주 이가이다. 원래 조선왕조 종친이었다. 제 윗대 할아버님이 임진왜란 때 지금 국농소 자리에 피난을 오셨다. 임란이 끝나도 돌아가지 않자 나라에서 땅을 내려 주었다. 왕실 종친이다 보니 그때 국가에서 관리하던 녹전이란 땅을 하사해서 농사를 짓고 살게 해 준거다. 그래서 그 마을 이름이 나라에서 농사를 짓는 장소란 뜻으로 국농소(國農所)가 된 거다.

▲그럼 조합장은 여기서 태어나 여기서 살았나.

-아니다. 그것도 좀 사연이 있다. 저는 태어나기는 서울에서 태어났다. 6살에 할아버지가 살고 있는 국농소로 와서 평생을 여기서 살았다. 군대 간 3년을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여기서 살고 있다.

▲왜 서울에서 태어나 여기로 왔나.

-할아버지가 물려받은 땅을 많이 팔아버렸다. 그래서 일본에서 태어나신 아버님이 해방이 되고 나서 귀국하면서 할아버지가 계시는 국농소로 오시지 않고 서울로 가버리셨다. 거기서 제가 태어났고 동생들도 태어났다. 그런데 아버지가 외동이셨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대는 이어야 하니 아버지가 국농소로 내려오기 싫으면 장남인 저라도 보래라고 해서 제가 오게 된 것이다. 저는 아버지 대신 대를 잇기 위해 국농소로 와서 지금까지 산 셈이다.

▲그럼 아버지, 형제들은 다 서울에 있나.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계신다. 그리고 형제들도 다 외지에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 형제들을 떠나 할아버지 밑에서 혼자 크느라고 고생이 많았겠다.

-그렇지는 않았다. 모르는 사람들은 할머니가 제 어머니인줄 아는 사람들도 있었다. 저는 할아버지 밑에서 행복한 유년기를 보냈다. 아내도 국농소에서 만났다. 초등학교 동기동창이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국농소를 떠나지 못하는 것 아닌가 싶다.

▲지금 국농소에는 전주 이씨들이 얼마나 있나.

-제가 어릴 때는 마을이 150호 정도 됐다. 그런데 지금은 90호도 안 된다. 그중에 약 40호 정도가 전주 이씨다. 아직은 집성촌의 모양새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도 얼마나 갈지 알 수 없다. 우리 대가 끝나면 국농소, 전주 이씨 집성촌, 대를 잇기 위해 고향에 오는 풍습 등도 다 사라지지 않을까 싶다.

▲국농소에서는 무엇을 하고 있나.

-포도농장을 하고 있다. 1000평 정도 농사를 짓고 있다.

▲수입은 괜찮나.

-제가 직접 짓는 것도 아니고 인부를 대서 한다. 그러니 그리 큰 소득은 되지 않고 있다.

▲농협과 인연은 언제부터였나.

-고등학교 졸업하고 1980년에 거창농협에 서기보로 입사를 했다. 그게 농협과의 인연이다.

▲퇴직은 언제 했나.

-2012년도에 했다. 집에서 2년 정도 농사짓다가 조합장에 출마했다.

▲당시는 누구랑 경쟁했나.

-당시 현직 조합장과 싸웠다. 현직 조합장이 막강한 조직력으로 선거를 진행했는데 조합원들은 저한테 표를 몰아줬다. 그때도 득표율이 60%를 넘었던 것 같다.

▲현직을 이기기가 쉽지 않은데 비결이라도 있었나.

-거창농협은 3선을 잘 허용하지 않는다. 그때 현직이 3선 도전이었다. 그래서 관행도 있었고 조합원들의 피로감도 있었지 않나 싶다.

▲그럼 이 조합장은 3선에 도전할 것인가.

-별로 그런 생각이 없다. 거창농협은 3선 도전을 잘 허용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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