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촌방송=김세곤 칼럼니스트] 1477년 8월19일에 성종은 경연에 나아갔다. 강하기를 마치자, 사헌부 장령 이명숭이 현석규만 체임되지 않은 것은 옳지 못하다고 아뢰었다. 성종은 "현석규가 아랫사람을 거느리지 못한 것이 아니라, 아랫사람이 현석규를 경시한 것이다. 현석규를 체임해야 하겠는가?"고 말했다.

사진=선정전

4일이 지난 8월23일에 유자광이 현석규·김주 등의 일에 관해 장문의 상소를 올렸다. 상소의 핵심을 읽어보자.

"신이 듣건대, 장리(贓吏) 김주는 일에 간여하여 뇌물을 주고받은 사람이 무려 백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김주가 나타났으면 진실로 마땅히 정상을 조사해서 죄를 주어야 할 것입니다. 전하께서 이미 명령하시어서 조사가 반이나 진행되었는데, 어찌하여 왕실 인척과 대신에게 미치면 명령을 거두시고 전부 석방하여 죄를 다스리지 않으십니까?

또한 근일에 승지들이 동렬(同列)을 능욕하여 예양(禮讓)을 크게 무너뜨려서, 전하께서 중화(中和)로 다스림에 누(累)를 끼쳤습니다.

도승지 현석규는 홍귀달이 자기와 의논하지 아니하고 마음대로 아뢴 것 때문에, 노여움이 극(極)해서 팔뚝을 걷어붙이고 홍귀달의 이름을 불러 욕하였습니다.

신의 어리석은 생각에는, 홍귀달이 자기 마음대로 아뢴 것은 죄가 있지만, 현석규가 홍귀달의 이름을 들먹이고 조정을 능욕한 죄 또한 다스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를 다스리지 않으면, 정승이 된 자가 찬성 이하의 이름을 불러서 능욕하고, 육경이 된 자가 참판 이하의 이름을 불러서 능욕할 것이고, 사방에서 이를 보고 본받을 듯합니다.

신의 생각은 홍귀달이 마음대로 아뢴 죄는 가볍고, 현석규가 예양을 조정에서 무너뜨린 죄는 중하다고 생각됩니다. 대간들이 이것을 말하는데도, 전하께서 듣지 않으시니 신이 매우 의혹스럽습니다.

전하께서 즉위하신 뒤로 언로를 크게 열어서 간(諫)함을 받아들이기를 너그럽게 하시어 말이 합당하지 못하다 하여 그 말의 근원을 찾아 간언을 싫어한 뜻을 보이셨다는 말을 신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현석규의 일에 대해서만 간관에게 말을 들은 연유를 하문(下問)하십니까? 전하께서 간관에게 말을 들은 연유를 물으시는 것은, 현석규에게 사사로운 정이 지극하기 때문이십니다.

언관이 자기의 일을 탄핵하면, 현석규는 진실로 대죄(待罪)하고 전하의 명령을 기다리는 것이 옳은데, 간관(諫官)이 말이 있으면 현석규도 말을 하고 서로가 다투니 이것은 현석규가 전하 앞에서 간관과 다투어 은연히 저지하고자 한 것입니다.

현석규도 역시 스스로 말하기를, ‘노여움이 극하여 입에서 거품이 나왔고, 더위로 인하여 소매를 걷어 올렸는데, 홍귀달 이름을 불렀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전하께서 현석규를 예양을 무너뜨리지 않았다고 하시겠습니까? 조정을 욕되게 하지 않았다고 하시겠습니까? 죄가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현석규는 예(禮)를 무너뜨린 것만이 아니고, 전하 앞에서 무례하게 간관을 은근히 억압하고, 조종조(祖宗朝)로부터 전수(傳守)되는 상법(常法)을 무너뜨린 것입니다.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현석규가 홍귀달에게 예양으로써 책망하지 아니하고 갑자기 분노하고 화를 내어 무례하게 책망하였으니, 현석규는 진실로 군자(君子)가 아닌 것이 명백합니다. 그는 조금은 재주가 있으나 진실로 소인(小人)보다 더욱 심한 자입니다.

그런데 전하께서는 무엇에 취하셔서 현석규를 버리지 못하십니까? 전하께서는 어찌하여 임사홍과 손순효와 한한 등이 현석규의 일을 서로 전해 말한 죄는 다스리고, 현석규가 범한 죄는 다스리지 않으십니까?

더구나 사간 박효원과 참의 노공필은 모두 현석규의 일을 서로 전해 말한 자들인데, 지금 이들은 모두 강등(降等)해 제수하고, 전하께서 현석규를 더욱 후하게 대우하시고 더욱 친밀하게 하시니, 신은 아마도 이 뒤로는 현석규와 같이 가깝고 친밀한 신하가 비록 크게 불측(不測)하고 나라를 그르치는 일이 있더라도 사람들이 경솔히 말하지 못하고, 대간은 혀를 놀리지 아니하고 서로 경계할 것이니, 임금의 총명을 가리는 화(禍)가 이로부터 생길 듯합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현석규의 죄와 김주의 일을 밝게 다스리시어서, 조정의 무례한 풍습을 막으시고 조정의 염치와 절의의 행습(行習)을 권려하시며, 언로를 여시면 매우 다행하겠습니다.

신은 비록 언관의 반열(班列)에는 있지 않으나, 재상에 대죄(待罪)한 지 누조(累朝)가 됩니다. 대간이 하는 말을 전하께서 윤허하지 않으시고, 조정의 사의(事宜)가 예에 합당하지 않으면, 재상도 말하는 것이 또한 그 직분입니다. 따라서 신은 잠자코 있을 수가 없어 만 번 죽기를 무릅쓰고 아룁니다.” (성종실록 1477년 8월23일 3번째 기사)

사진=선정전 안내판

다음날인 8월24일에 성종은 유자광을 불러서 전교하였다.

"내가 경의 상소를 보고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경은 여러 사람들 가운데에서 특출하여 마음속에 품은바가 있으면 반드시 진달하나, 상소문 가운데에 미진(未盡)한 것이 있다. ‘나를 현석규를 비호한다.’고 말하면, 현석규와 임사홍은 모두 종친(宗親)의 사위이고, 한한은 나에게 4촌인데, 어찌 유독 현석규만 비호하겠는가? 현석규의 실수는 분노한 데에서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노할 만해서 노한 것이니 이것이 죄이겠느냐?

경은 또 노공필과 박효원을 강등하여 제수하였다고 하나, 그것은 그렇지 않다. 한한의 서열이 노공필보다 먼저이고, 임사홍이 대사간이 되었으니 전일에 탄핵한 자는 같이 있기가 어렵기 때문에 바꾸어 임용한 것이다. 그리고 김주의 일은 세 정승이 이미 승정원에서 변명하였기 때문에 추핵하지 말게 한 것이다. 경은 이를 알고서 말한 것이냐, 알지 못하고서 말한 것이냐?"

성종은 유자광에게 매우 불쾌했다.

이윽고 유자광이 대답하였다.

"성상(聖上)께서 사사로이 하셨다는 것이 아니라 승정원의 일을 보니 진실로 현석규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일이 비록 노할 만하더라도 어찌 너라고 일컬으며, 이름을 불러서 욕되게 하는 데에 이를 수 있겠습니까? 그 실책은 심한 것입니다. 마땅히 세 승지와 같이 인사이동 시켜야 합니다.

성상께서 비록 현석규를 비호하지 않으셨다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성상의 뜻을 통찰해 알 수 있겠습니까? 현석규는 마땅히 물러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김주의 일은 마땅히 추국해서 실정을 알아내야 하는데도, 지금 대신은 묻지 않고 내버려 두었기 때문에, 신의 말이 이에 미친 것입니다.

이윽고 성종은 유자광에게 따끔하게 일침을 가했다.

"경이 숨기지 않는 것을 내가 매우 가상하게 여기나, 내가 하지 않은 바를 상소문에 기록하였으니 이것은 매우 옳지 못하다." (성종실록 1477년 8월 24일 4번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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