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양부칼럼-협동조합은 바른마음이다.

[한국농어촌방송=최양부 바른협동조합실천운동본부 이사장] 협동조합을 생각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낱말 중의 하나가 ‘로치데일 협동조합’이다. 협동조합에 관한 공부를 시작하면서 처음 듣는 이야기 가운데 하나가 로치데일 협동조합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왜 사람들은 협동조합을 말하면서 로치데일 이야기를 하는가? 로치데일, 로치데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로치데일은 영국의 대표적인 공업도시인 맨체스터 북동지역에 있는 작은 도시의 이름이다. 그러나 지금은 ‘세계최초의 성공한 협동조합’을 지칭하는 이름으로 더 알려져 있다. 그리고 ‘바른 협동조합’의 원형을 상징하는 대명사가 되고 있다. 1844년 8월 11일 로치데일의 방직노동자를 비롯한 사회운동가 등 28명은 오늘날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생활협동조합을 창립하고 이름을 ‘로치데일 공정선구자 협동조합’(The Rochdale Society of Equitable Pioneers)이라고 지었다. 그리고 그해 12월 21일 토드레인이란 거리에 조그마한 식료품 가게를 열었다. 지금부터 175년 전의 일이다. 이 로치데일 협동조합이 세계협동조합의 새 역사를 만들었다.

사진=로치데일 협동조합 명패

 

‘로치데일 협동조합’-협동조합 운동의 역사적 분기점

로치데일은 협동조합의 역사를 ‘로치데일 이전과 이후’로 나누는 분기점이 된다는 점에서 역사성을 갖는다. 사실 로치데일 협동조합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도 땅에서 솟아난 것도 아니다. 협동조합의 역사는 세계최초로 근대적인 모습을 갖춘 협동조합으로 1761년 스콧트란드 펜위크(Fenwick) 지역에서 생겨난 ‘펜위크 직물공 협동조합 (The Fenwick Weavers' Society)’으로 기록되고 있다. 로치데일 협동조합이 생겨나기 83년 전의 일이다. 그러나 펜위크 협동조합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 뒤에도 협동조합설립과 운영은 시행착오를 되풀이했다. 83년간의 시행착오 끝에 마침내 로치데일 협동조합이 탄생한 것이다.

1840년대까지만 해도 협동조합은 새로운 경제조직(기관)으로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여전히 검증받지 못한 생각이나 사상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마침내 로치데일 협동조합이 성공하면서 ‘협동조합도 작동하는 사회적 경제조직’으로 인정받게 되었고 오늘날과 같이 세계적으로 다종의 다양한 협동조합이 생겨나게 하는 씨앗이 되었다. 로치데일은 17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협동조합에 대한 ‘영감과 확신을 주는 모델’이 되고 있으며 사람들을 협동조합으로 불러들이고 도전하게 하는 힘의 원천이 되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은 로치데일 협동조합의 성공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세계협동조합역사가 로치데일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기리는 이유다. 그렇다면 무엇이 로치데일 협동조합을 로치데일 이전의 협동조합과 구분 짓게 했는가? 로치데일 협동조합은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는가? 성공으로 이끈 요인은 무엇인가? 그리고 왜 로치데일에서 성공할 수 있었는가? 왜 로치데일 이전의 협동조합은, 또는 다른 지역에서의 협동조합은, 왜 실패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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