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출마에 현직 조합장을 누르고 당선

임기 중 하나로마트와 자재센터 이전 문제 해결해야
벼 육묘장 만들어 고령화로 인한 어려움 해결할 것
급여가 낮아 다른 데 가려다가 아내 때문에 주저앉아
한 번도 재선 허락않는 삼칠조합에서 재선도전 할 것

신대운 조합장은 첫 선거에 나와 현직을 누르고 조합장에 당선됐다.

[한국농어촌방송/경남=황인태 대기자] 신대운(63) 조합장은 이름에 대운이 들어서 운이 좋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그래서 그런지 인생에 그리 큰 어려움은 없었다. 농협에 들어온 것도 사실은 운이 좋았다. 평생을 조합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친구들이 다 퇴직한 나이인데도 조합장에 당선돼 새로운 인생을 개척할 수 있게 됐다. 그것만 해도 운이 좋은 인생이다.

이번 선거만 해도 운이 좋았다. 현직 조합장이 출마해 누가 보더라도 경쟁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투표함을 열어보니 차점자와 10%포인트 이상 차이가 나는 안정적인 득표로 당선이 됐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선거후유증에 시달렸을 것이다. 여러 면으로 보아도 당선될 만한 뚜렷한 이유가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평생 칠원에서 살아왔으니 조합원들이 평생을 보아 왔을 것이다. 평생을 보아온 사람들이 표를 줬으니 인생을 잘 살아 왔다는 증거다.

신 조합장이 이번 임기 중에 해결해야 할 가장 큰 과제는 하나로 마트의 이전문제이다. 전임 조합장 시절에 이미 경제사업장이 있는 자재센터로 이전하려는 계획을 세워 대의원 대회 결의까지 받아놓은 사안이다. 그러나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 않다. 마트가 이전하려는 건물을 자재센터가 쓰고 있기 때문에 자재센터를 옮겨야 한다. 자재센터는 그 옆에 신축건물로 옮겨야 하는데 그 건물이 37평으로 너무 작은 규모이다. 그래서 고민이다. 이미 일부 조합원들이 자재센터의 이전을 재고해 달라는 민원도 넣은 상태이다. 또 학교 통행료 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이런저런 문제들 때문에 하나로마트를 바로 이전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이런 문제들을 신 조합장 임기 중에 해결해야 한다.

신조합장이 임기 중 해결해야 할 또 하나의 과제는 산지유통센터의 건립문제이다. 삼칠 농협은 과수재배가 활발하다. 그런데 자체 유통센터가 없다. 가야농협 쪽에 큰 유통센터가 있긴 하지만 자체센터를 갖자는 게 조합원들의 꿈이다. 그래서 유통센터를 임기 중에 건립해야 한다. 약 3000평 부지에 1000평 규모의 센터를 건립해야 어느 정도 수요를 충당할 수가 있다. 약 80억 원의 자금이 소요되는데 중앙회와 함안군과 협의를 잘 해야 한다. 두 기관의 협조가 없이는 유통센터를 만들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문제도 임기가 끝나기 전에 해결을 보아야 한다.

신 조합장은 1956년 함안군 칠원읍에서 태어났다. 중학교까지는 칠원에서 다녔지만 고등학교는 부산에 있는 영남상업학교에 유학을 갔다. 학교를 졸업하고 마산에 있는 롯데칠성에서 경리직으로 잘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칠원조합장을 하신 주차식 조합장님이 농협근무를 권유했다. 당시는 농협이 뭐하는 기관인지도 몰랐다. 그냥 좋은 직장이라는 말에 속아서 시험을 쳤다. 그래서 첫 발령을 받은 곳이 남해 서면 농협이었다. 그런데 첫 월급을 받아보니 아연실색했다. 월급이 얼마인지 물어보지도 않고 입사를 했던 것이다. 롯데칠성에서 월급이 50만원 수준이었는데 농협월급이 15만원 남짓했다. 월급이 반 토막이 아니라 1/3토막이 난 것이다.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다시 도시로 나가기로 결심을 했다. 부산에 직장을 구해놓고는 나가려고 하는데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당시 아내는 중학교 서무실에 근무했다. 그때는 농협이 학교에 예금을 유치하러 자주 나가는 시대였다. 매주 수요일마다 아내가 근무하는 학교에 가다보니 눈이 맞아서 결혼을 약속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부산에 직장을 구해놓고도 남해를 떠나지 못했다. 그게 평생을 농협에서 보낸 이유다.

신 조합장은 농협에 근무하면서 가장 잘한 일로 삼칠농협의 탄생을 들었다. 그때 기획업무를 보면서 세 조합의 통합업무를 주관했다. 여러 난관이 있었지만 잘 극복해 통합을 성공시켰다. 통합이 되지 않았더라면 오늘의 삼칠농협은 없었을 것이다.

신 조합장은 4년 후 조합장 선거에 출마할 생각이다. 삼칠 농협은 지금까지 재선조합장을 허락하지 않았다. 신 조합장이 그 관행을 타파해 볼 생각이다. 4년간 최선을 다해 삼칠농협을 운영해보고 조합원들의 평가를 받을 생각이다. 삼칠 농협 처음으로 재선에 성공한 조합장이란 말을 듣는 것, 그게 지금 신 조합장의 꿈이다.

다음은 신대운 조합장과의 인터뷰이다.

▲삼칠이란 조합이름도 특이하고 대운이란 조합장 이름도 재미있다. 대운이 들어서 조합장이 됐나.

-대운이란 이름은 한자로 클 대(大)자에 구름 운(雲)자이다. 운이 좋다는 뜻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그건 아니다. 그래도 사람들이 이름을 들을 때마다 대운이 들겠다고 덕담을 한다. 듣기에 나쁘지는 않다.

▲삼칠 농협은 무슨 뜻인가.

-관할지역이 함안군 칠원읍, 칠북면, 칠서면 등 세 개의 칠자가 들어간 행정구역이다. 1997년 이 세 개 지역의 조합이 통합을 했다. 그때 칠자가 세 개라는 의미에서 삼칠농협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전국에서 가장 독특한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조합원은 몇 명이나 되나.

-2500명 정도 된다.

▲득표율은 얼마나 되나.

-42%정도 된다. 차석과 10%포인트 정도 차이가 났다.

▲이번 조합장 선거에는 몇 명이나 출마했었나.

-현직 조합장을 비롯해서 세 명이 나왔었다.

▲그럼 현직 조합장을 누르고 당선된 건가.

-그렇다.

▲현직 조합장이 3선 도전이었나.

-아니다. 재선 도전이었다.

▲재선 도전이면 그렇게 어렵지 않게 당선되는데

-그게 그렇지 않다. 여기는 한 번도 재선 조합장이 나와 본적이 없다. 그만큼 변화의 기운이 센 곳이다.

▲그래도 조직 등 모든 면에서 현직 조합장을 이기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그건 그렇다. 조합원들이 좋게 봐줘서 당선된 것 같다.

▲그래도 구체적 이유가 있을 텐데.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이번 선거에서 가장 큰 쟁점이 조합을 잘 경영할 사람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조합원들이 제가 경영을 가장 잘 할 것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

▲조합원들이 그렇게 판단하는 근거가 있나.

-아무래도 저는 조합에서 평생을 지낸 사람이다. 1981년에 조합에 입사해서 2016년에 퇴직했으니 35년을 조합에서 보낸 셈이다. 그렇다 보니 신용업무나 경제 사업이나 모든 면에서 업무를 두루 안다고 할 수 있다. 또 97년 합병할 때 제가 합병의 주관업무를 맡았다. 제가 합병에 가장 적극적이었다. 그때 기획을 보면서 합병업무를 주관하는 것을 보면서 조합원들의 신임이 조금 생겼다. 그런 것들이 조합원들이 보기에 조합장을 맡겨도 잘 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 생각된다.

▲합병에 그리 적극적이었던 이유가 있나.

-칠원, 칠서, 칠북은 여러 가지 면에서 상호보완적이다. 칠원은 규모가 큰 읍이기 때문에 신용사업을 활발히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칠서와 칠북은 경제 사업 위주로 운영할 수가 있다. 그래서 합병이 되면 이상적인 농협을 만들어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리 생각했다. 그래서 통합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통합 후 실제로 그리 됐나.

-상당부분 통합 때 그린 그림들이 실현되고 있다. 그때 통합되지 않았더라면 많이 어려웠을 것이다.

▲삼칠농협의 현안은 어떤 게 있나.

-현재 운영하고 있는 하나로마트가 규모가 작아서 문제이다. 주차장도 부족하고. 그래서 이전을 해야 한다.

▲이전계획은 세워져 있나.

-세워져 있다. 주유소가 있는 경제사업장에 100평짜리 건물이 있다. 그래서 여기로 이전하자고 이미 대의원대회에서 의결돼 있다.

▲그런데 뭐가 문제인가.

-이 건물을 쓰던 경제사업장이 이전을 해야 한다. 그런데 새로 이전할 경제사업장 규모가 너무 작다. 그러다 보니 칠원의 조합원들이 경제사업장 규모가 너무 작으니 마트 이전을 재고해 달라는 민원을 제기해 놓은 상태이다. 그래서 고민이다.

▲어떤 방향이든 빨리 결정해야 할 상황인 거 같다.

-그렇다. 그래서 이번 6월 이사회 때 저의 복안을 보고하려고 한다.

▲또 다른 현안은 어떤 게 있나.

-가야 쪽 농협에는 산지유통센터가 큰 게 있다. 그런데 삼칠농협을 비롯한 함안 동부 쪽에도 가야만큼은 아니더라도 산지유통센터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다.

▲어째서 그런가.

-가야 쪽은 시설원예가 많지만 삼칠 쪽은 과수가 많다. 단감, 포도, 복숭아등이 많이 생산된다. 그래서 삼칠지역에도 소규모 산지유통센터가 필요한건 사실이다.

▲어느 정도 규모의 센터가 필요하나.

-한다면 부지 3000평에 건물 1000평 정도는 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정도 규모이면 자금은 얼마나 필요하나.

-약 80억 원 정도가 필요할 것으로 추산된다.

▲그 자금은 모두 조합에서 조달해야 하나.

-아니다. 농협중앙회 지원금도 있고 함안군 지원금도 있다. 이들과 협력해서 추진해야 한다.

▲그럼 자금 문제는 크게 어렵지 않나.

-조합도 약 30% 정도의 자금을 부담해야 하는데 우리 사정으로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 임기 중 하고 싶은 일은.

-벼 육묘장을 만들고 싶다. 조합원들이 대부분 고령화 되어 모판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 그래서 조합에서 육묘장을 만들어 공급하면 고령 조합원들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

▲삼칠농협은 규모가 어떻게 되나.

-자산이 3300억 원 정도 된다. 신용사업규모는 약 5000억 원이다.

▲예금과 대출은 각각 어느 정도 되나.

-예금이 약 3000억 원이고 대출은 약 2100억 원 정도 된다. 농촌 형 농협으로 작은 규모는 아니다.

▲경제사업 규모는 얼마나 되나.

-약 320억 원이다. 삼칠 농협은 경제사업과 신용사업이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개인적인 얘기를 나눠보자. 언제 어디서 태어났나.

-1956년 함안군 칠원면에서 태어났다.

▲학교는 어떻게 되나.

-중학교까지 칠원에서 다녔고 고등학교는 부산에 유학해서 부산영남상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대학은 창원대학교를 나왔다.

▲부산영남상고 졸업한 조합장이 있지 않나.

-산청 박충기 조합장과 진주남부 송정효 조합장이 부산 영남상고 졸업생이다. 박 조합장은 선배고 송 조합장은 후배다.

▲농협과 인연은 어떻게 되나.

-상고를 졸업하고 함안에서 가까운 마산 롯데 칠성에서 경리직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나중에 칠원 농협 조합장을 지내신 주차식 조합장이 농협에 시험을 쳐 보라고 권유했다. 고향에 직장을 갖는다는 생각에 무턱대고 시험을 쳤더니 합격을 했다. 그게 1981년이다. 그렇게 해서 농협과 인연을 맺었다.

▲처음에 어디로 발령이 났나.

-남해 서면 농협에 발령이 났다. 지금은 새남해 농협이 됐다. 그런데 처음 월급을 받아보니 15만원 남짓 됐다. 마산에서 경리를 볼 때는 50만원 이었다. 월급이 1/3토막이 난거다. 그래서 다시 도시로 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왜 안 갔나.

-부산에 있는 세방기업이라고 가기로 다 돼 있었다. 그런데 그때 아내를 만난 거다. 그래서 못가고 주저앉게 됐다.

▲아내는 어디에 있었나.

-아내가 중학교 서무실에 근무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농협에서 학교에 예금을 유치하러 자주 나갔다. 제가 그 일을 하고 있다 보니 지금의 아내를 일주일에 한번 정도 만났다. 그래서 정이 들어서 결혼할 생각으로 못 떠난 거다.

▲그럼 결혼해서는 어디서 살았나.

-결혼해서 남해 서면에 살았다.

▲거기서 언제까지 살았나.

-남해에서 10년 근무하다가 칠원으로 왔다. 그러니까 10년 정도 살았다고 보면 된다.

▲그럼 아내는 어떻게 됐나.

-아내도 제가 칠원으로 온 그 다음해에 마산으로 왔다. 그리곤 약 5년 전에 퇴직했다.

▲농협에서 근무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

-앞에서도 애기했지만 조합의 합병을 주도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때 신설합병과 흡수합병을 두고 논란이 많았다. 결국 흡수합병으로 갔다. 그 일을 주도해 성공시킨 것이 가장 잘한 일이다.

▲조합에서는 언제 퇴직했나.

-상임이사로 2016년 5월까지 근무했다.

▲그때 조합장 출마를 결심한 건가.

-그렇다. 상임이사를 퇴임하면서 조합을 위해 조합장에 도전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재선에는 도전할 것인가.

-그렇다. 그런데 칠원조합에서는 아직 한 번도 재선 조합장이 탄생하지 못했다. 그만큼 변화의 기가 센 곳이다. 그래서 한번 도전해 보려고 한다.

▲웬만큼 잘하지 않고는 어려울 것 같다.

-그렇다. 이번 4년을 잘 보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저 역시 선배들처럼 초선에서 그만두어야 한다. 제가 재선의 관문을 통과해 보겠다.

▲조합에서 약 40년을 보내고 있는데 입사 때와 지금이 어떻게 다른가.

-제가 입사할 때는 조합직원들이 다 농민 운동한다는 그런 각오와 결의가 있었다. 지금 조합직원들은 은행원들이다. 좋은 직장으로 보고 입사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우리 입사 때와는 좀 분위기가 다르다. 그런 게 아쉽기도 하고 세월의 변화에 따른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도 들고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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