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촌방송=김세곤 칼럼니스트] 147856일에 정승들이 모여서 임사홍의 처벌에 대해 의논하였다

한명회·심회·윤사흔·윤필상·홍응·허종·어유소·양성지·윤흠·신정·신준

·홍도상·김영유·유지·안관후·김춘경·경준·박숙달·강거효·유인호는 의논하기를, "()에 의하여 과단(科斷)하소서."하였다.

이윽고 윤계겸·이극균이 아뢰었다.

"율학해이(律學解頤)의 간당조(姦黨條), ‘()이란 것은 간사한 무리이고, ()이란 것은 붕당(朋黨)의 사람이다. 만약에 사람이 본래 죄가 없거나 혹은 죄가 있어도 사형에 이르지 아니하였는데, 모두 이들 간사한 붕당의 사람이 망령되게 올린 참소(讒訴)의 말을 입어서 사람을 잘못 죽이게 한 자는 참()한다.’고 하였습니다. 임사홍과 유자광·박효원·김언신은 현석규를 소인이라고 모함하였을 뿐이고 사람을 죽이는 데에는 이르지 아니하였으니 성상께서 재결하시어 시행하시고, 김괴와 김맹성

· 표연말 · 손비장의 죄상은 계달한 대로 시행하소서."

이어서 김순명이 말했다.

"예로부터 붕당은 그 해가 큽니다. 임사홍은 임금을 업신여기고 대간과 교결하였으니 그 실정을 안 자도 죄가 또한 같습니다. 표연말과 김괴· 김맹성·손비장의 조율(照律)이 심히 가벼우니 마땅히 중한 율에 따라 과단(科斷)하소서. 이를 징계하지 않으면 뒤에 경계하는 바가 없을 것입니다.”

정승들의 의견을 들은 성종은 "윤계겸과 이극균의 의논이 옳다. 임사홍 등은 사형을 감하라."고 전교했다. 성종은 이미 임사홍등을 죽일 생각이 없던 차에 윤계겸과 이극균이 의견을 내니 이에 따른 것이다.

이러자 대간들이 아뢰었다.

"법이란 천하에 공평하게 적용하는 것이고, 임금이 사사로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임사홍 등은 죄악이 깊고 중한데 전하께서 특별히 사형을 감하심은 옳지 못합니다. 청컨대 율에 의해 과단하소서."

이러자 성종은 "경등이 아무리 말할지라도 나는 듣지 않겠다."고 말했다. 성종은 임사홍 · 유자광을 봐주기로 작정했다.

성종은 또 명하여 유자광에게 결장(決杖 곤장을 때림)할 가부를 의논하게 하니, 한명회 등이 의논하기를, "유자광에게 사형을 감하심은 성상의 은혜가 지극히 중하니, 공신을 삭적(削籍 명부에서 이름을 삭제함)하고 결장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한편 성종은 주서(注書) 양희지에게 명하여 오늘 모이지 아니한 재상들에게 찾아가서 의논하게 했다.

먼저 정인지가 의논했다.

"유자광이 이미 성상의 은혜를 입어 사형이 감해졌으니, 결장을 없애고 먼 지방에 부처(付處)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이어서 정창손·노사신·이승소가 의논하여 말했다.

"유자광은 그 죄가 깊고 중하니 율에 의하여 처결하는 것이 적당하나, 사직에 관계되는 죄가 아니고 또 익대공신이니, 사형을 감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또한 속장(贖杖 돈을 내고 곤장을 면제함)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윤자운·서거정도 말했다.

"유자광이 붕당을 교결하여 생각이 그 지위를 벗어나서 함부로 외람되게 글을 올려 임금을 속였으므로 죄를 범한 것이 지극히 큰데, 사형을 감하였으니 성은이 깊고 중합니다. 공신을 삭적(削籍)하고 결장(決杖)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김국광도 의논했다.

"유자광의 죄악은 율()에 정조(正條)가 있는데, 특별히 사형을 감하기를 명하였으니, 성상의 은혜가 분수에 지나칩니다. 유자광이 공신으로서 성상을 속였으니, 이제 마땅히 삭적하고 결장(決杖)하여 먼 지방에 유치시켜서 영구히 서용하지 않아야 합니다. "

강희맹이 말했다.

"유자광은 서자의 몸으로 지위가 극품(極品)에 이르렀으니, 마땅히 성은에 보답하여야 할 것인데, 붕당을 교결하여 시비를 변란(變亂)시켜 겉으로는 충직(忠直)함을 가장하며 안으로는 실로 간사하니 이는 소인(小人)의 가장 큰 사례입니다. 마땅히 공신을 삭적하고 먼 변방에 내쳐서 종신토록 서용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유자광은 대부가 되었으니 형장(刑杖)을 받을 수 없습니다. 속장(贖杖)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성종은 명하여 임사홍과 유자광·김언신·박효원은 사형을 감하고, 표연말과 김맹성·김괴·손비장은 율()에 의하게 하였다.

대간이 다시 아뢰었다.

"신 등은 임사홍 등에게 사형을 감하신 명령을 듣고 결망(缺望)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임사홍은 소인의 정상이 모두 드러났고, 그 당류도 이미 찾았으니 청컨대 율에 의하여 과단(科斷)하소서. 청컨대 법을 무너뜨리지 마소서."

성종은 전교하였다.

"이미 사정(事情)을 헤아려서 결정하였으니 경들의 청을 듣지 않겠다."

대간이 또 아뢰었다.

"사정은 진실로 사형이 마땅합니다. 붕당은 국가의 흥망과 사직의 안위가 달렸습니다. 중국 전한(前漢) 때 유향이 말하기를, ‘붕당은 나라를 망하게 하는 도적이다.’고 하였으니, 청컨대 붕당의 신하를 기르지 마소서.”

하지만 성종은 듣지 않았다.

(성종실록 1478567번째 기사)

57일에 성종은 경연에 나아갔다. ()하기를 마치자, 사간 경준이 아뢰었다.

"임사홍 등의 죄를 특별히 명하여 가벼운 죄에 처하셨으니, 신 등은 옳지 못하게 생각합니다. 지금 임사홍 등은 은밀히 대간과 결탁하여 대신을 모함하였으니, 의금부에서 간당(姦黨)의 율()에 해당시킨 것은 매우 합당합니다. 청컨대 율문(律文)에 따르소서.“

(사진 1=창덕궁 선정전 앞뜰)

 

(사진 2= 창덕궁 궁궐도)

이에 성종이 말했다.

"사직에 관계되는 것이 아닌데, 참형에 처하는 것은 지나치지 않은가?"

다시 경준이 아뢰었다.

"간신이 임금의 곁에 있으면 오늘 한 대신을 내쳐 버리고, 내일 또 한 대신을 내쳐 버릴 것입니다. 이것이 그치지 아니하여 극도에 이르면 사직이 자연스레 위태로워집니다. 이로써 본다면 어찌 사직에 관계되지 않는다고 하겠습니까?"

이어서 사헌부 집의 김춘경이 아뢰었다.

"임사홍이 범한 바가 지극히 큰데, 지금 베지 않고 다만 먼 지방에 유배시키면, 뒷날에 다시 썼을 때 간계를 다시 낼지 어찌 알겠습니까? 청컨대 율에 의하여 죄를 주소서.”

성종이 경준이나 김춘경의 말 대로 후환을 없앴다면 유자광나 임사홍에 역사에 간신으로 남지 않았을 것인데. 유자광이 주도한 무오사화도 다른 모습이었을 것인데, 참으로 안타깝다.

이어서 성종이 말했다.

"비록 사형 안하고 먼 지방에 유배한다 해도 영구히 서용하지 않으면, 다시 벼슬할 리가 만무하다."

이어서 좌우에게 "어떠한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영사 심회가 아뢰었다.

"그 죄가 지극히 중하니, 청컨대 율에 의하여 처단하소서."

이러자 성종은 말을 돌린다.

"또 의논할 것이 있다. 유자광은 조종조(祖宗朝) 때의 원훈이고, 임원준은 좌리공신인데, 만약 율문(律文)과 같이 한다면, 어찌 백세까지 죄를 용서한다.’는 뜻이 있겠는가? 경등은 사형을 감한 것을 가볍다고 하나, 나는 결장(決杖)하는 것도 미안하게 생각한다."

김춘경 등이 아뢰었다.

"공과 허물은 마땅히 서로 비길 만해야 합니다. 이 무리들은 죄가 중하여 그 공이 허물을 가릴 수가 없습니다."

성종이 말하였다.

"참형에 처하는 것은 불가하다고 여긴다. 내 장차 대신과 더불어 다시 의논해서 죄를 정하겠다."

(성종실록 1478571번 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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