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BS역사칼럼-길 위의 역사] (2부 무오사화) - 54회 성종, 임사홍과 유자광등을 유배 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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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S역사칼럼-길 위의 역사] (2부 무오사화) - 54회 성종, 임사홍과 유자광등을 유배 보내다
  • 김세곤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8.19 10: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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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희정당  앞면
창덕궁 희정당 앞면

[한국농어촌방송=김세곤 칼럼니스트] 1478년 5월8일에 성종은 경연에 나아갔다. 강(講)하기를 마치자, 사헌부 장령 박숙달이 아뢰었다.

"유자광은 사직에 공(功)이 있고, 임사홍은 공주의 일로 인하여 특별히 명하여 사형을 감하신 것은 성상께서 부득이한 데에서 나온 것임을 알지만, 박효원과 김언신은 대간이 되어서 남의 은밀한 사주를 듣고 대신을 모함하였으므로 죄가 임사홍보다 더하니 법에 의하여 처단하소서."

성종은 "이 사람의 죄는 가볍지 아니하나 사정이 있어 은혜를 편 것이다." 라고 말하면서, 좌우에게 "대간의 말이 어떠한가?"라고 물었다.

영사 윤사흔과 노사신이 대답하였다.

"임사홍과 유자광은 사형을 감하고 형장(刑杖)을 속(贖 돈을 내어 형장을 면함)하면서 김언신과 박효원만 결장(決杖 곤장을 치는 형벌)하면, 이것은 죄는 같은데 형벌은 다른 것입니다."

성종은 "그렇다."고 말했다.

박숙달이 다시 아뢰었다.

"성상께서 즉위하신 이래로 간(諫)하는 말을 따르시기를 물이 흐르는 것처럼 하시기 때문에, 말하는 자가 말을 다하고 성상께서 아름답게 받아들이시어 의심함이 없었는데, 지금 전하께서 ‘대간의 말을 다 믿을 수 없다.’고 하시니, 이는 박효원과 김언신이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성종이 말하였다.

"이는 말을 전한 자의 잘못이다. 내가 ‘다 믿을 수 없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다 따를 수 없다.’고 말한 것뿐이다. 대저 인품이 같지 아니하여 어진 이도 있고 어질지 못한 이도 있는 것인데, 어찌 한 사람의 일로 인하여 대간을 믿지 아니하겠는가? 너희들은 혐의하지 말라."

다시 박숙달이 아뢰었다.

"채수와 이창신은 공론(公論)에 의거하여 사헌부 · 사간원과 함께 의논하여 일을 말하였는데, 마침내 임사홍의 아내가 고하였기 때문에 옥에 갇혔습니다. 뒤에 일을 말하는 자가 어찌 두려워하고 꺼리지 않겠습니까?"

성종이 말하였다.

"네 말이 진실로 옳다. 내가 본래 국문하는 것이 옳지 못함을 알았으나, 이창신은 진실로 전에는 칭찬하고 뒤에는 헐뜯었으므로, 간사함이 자못 드러났기 때문에 국문하기를 명한 것이다."

윤사흔과 이숭원이 아뢰었다.

"다른 일을 들어서 고하는 것은 들을 수 없습니다. 임사홍의 아내가 상언(上言)한 말은 보복입니다."

노사신도 아뢰었다.

"사대부가 화목한 뒤에야 조정이 안정되는 것입니다. 요사이 남을 고발하는 것이 풍속을 이루어서 장차 사람마다 위태로워질까 두렵습니다. "

이에 성종은 "채수와 이창신을 석방하라."고 전교하였다. (성종실록 1478년 5월8일 1번째 기사)

조금 있다가 이심원이 차자를 올리고 아뢰었다.

"종부시(宗簿寺)에서 신이 아버지의 병을 시약하지 아니한 것과, 남효온과 친교한 것을 가지고 탄핵하니, 무릇 불효(不孝)는 어버이가 친히 고해야만 비로소 좌율(坐律 죄가 법률 조항에 해당한다는 뜻)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은 조부와 부모가 고하지 아니하고, 인리(隣里)가 고하지 아니하고, 관령(管領)이 고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된 것은 오로지 임사홍의 잘못을 탄핵한 까닭으로 인해 신을 무함(誣陷)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신이 전일에 친히 아뢰기를, ‘오늘 임사홍을 탄핵하면 반드시 일문(一門)의 죄인이 되고, 조정에서 미워하는 바가 되어 몸을 용납할 바가 없을 것이니, 신이 믿는 바는 성명(聖明)뿐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신으로 하여금 유사(有司)에게 나아가서 변명하게 하면, 신이 마땅히 죄를 달게 받겠습니다마는, 성명께서 위에 계신데 어찌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 분하고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성종은 승정원에 전교하였다.

"대의(大義)를 위해서는 친(親)함이 없다고 하였으니 이심원이 말한 바는 잘못한 것이 아니다. 또 부자간의 일은 진실로 분변해서 바루기가 어려운데, 전일에 효령대군이 이심원에게 죄주기를 청하였으나 죄를 묻지 않는 것이 어떠한가? 그것을 종부시에 물어 보라." (성종실록 1478년 5월8일 2번째 기사)

이어서 성종은 주강(晝講)에 나아갔다. 좌부승지 김승경이 아뢰었다.

"신이 오늘 김맹성과 김괴·표연말·손비장의 조율(照律)을 다시 보니, 김맹성과 김괴·손비장은 처음에 같은 간관으로서, 박효원이 임사홍의 청탁을 몰래 들은 것을 알고 박효원을 공박하려고 꾀하였으나, 동관(同官)인 것에 구애되어 우유부단하다가 마침내 아뢰지 못하였고, 친문(親問)하실 때에 이르러서도 김맹성과 김괴가 또한 사실대로 아뢰지 아니한 까닭에, 김맹성과 김괴의 죄를 ‘대제(對制)와 상서(上書)에서 거짓으로 속이고 사실대로 아뢰지 아니한 율(律)’로써 논하여, 장(杖) 1백 대와 도(徒) 3년으로 하였고, 손비장은 ‘마땅히 아뢸 것을 아뢰지 아니한 율’로 장(杖) 80대와 고신(告身) 3등을 추탈(追奪)하였으며, 또 표연말은 일찍이 그 실정을 알면서도 그 위에 아뢰지 아니하고 도리어 이심원에게 말하였으니, 이는 진실로 곧지 못한 것인데 김맹성과 죄를 같게 하는 것은 마땅치 못할 듯합니다.

또 임사홍과 유자광은 본래 참형인데, 특별히 사형을 감하고 형장(刑杖)을 속(贖)하였으니 이는 2등(等)을 감한 것이고, 김맹성과 김괴는 다만 형장만 속(贖)하였으니 이는 1등을 감한 것이므로 은혜가 고르지 못한 것입니다. 김맹성과 김괴에게 도형(徒刑)의 연한을 감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이와 같이 하면 은혜가 고르고, 표연말과 벌이 다를 것입니다."

이에 성종이 말하였다.

"김맹성과 김괴의 죄를 경은 적중하지 못하다고 하는가? 형장을 속(贖)한 것도 이미 넉넉하다."

그러면서 성종은 이숭원에게 “경의 뜻은 어떠한가?"고 물었다.

그러자 이숭원이 대답하였다.

"이른바 ‘속여서 사실대로 하지 아니한다.’고 하는 것은 속이는 말을 가지고 계달하는 것인데, 김맹성과 김괴는 일을 말하는 데에 숨김이 있는 것이니, 속여서 사실대로 아뢰지 아니한 것과는 같지 아니합니다. 그러나 신하가 임금에게 알면서도 자세히 말하지 아니한 것은 죄가 막중합니다.” (성종실록 1478년 5월8일 3번째 기사)

창덕궁 희정당 뜰
창덕궁 희정당 뜰

마침내 성종은 임사홍(任士洪)을 의주(義州)에, 유자광(柳子光)을 동래(東萊)에, 박효원(朴孝元)을 부령(富寧)에, 김언신(金彦辛)을 강계(江界)에 유배(流配)하고, 김맹성(金孟性)을 고령(高靈)에, 김괴(金塊)를 강진(康津)에 도배(徒配)하였으며, 박효원과 김언신은 결장(決杖)하고, 나머지는 모두 속(贖)하였다.  (성종실록 1478년 5월 8일 4번째 기사)

이어서 5월9일에 성종은 표연말을 산음(山陰)에 도배(徒配)하였다.

이 날의 실록에는 사신(史臣)의 논평이 있다.

"표연말은 효행이 있었고, 부모가 죽자 재산을 모두 형제에게 주면서 말하기를, ‘나는 이미 과거에 올랐으니 반드시 성상의 은혜를 입을 것이나, 너희들은 생활이 매우 어려우니 이것을 가지고 살라.’고 하니, 고을 사람들이 칭찬하였는데, 이때에 이 죄를 받자 사람들이 애석해 하였다." (성종실록 1478년 5월9일 1번째 기사)

<도배(徒配)는 형벌기간 동안 관아에 구금하고 노역을 시키는 형벌이고, 유배(流配)는 변방이나 바닷가로 귀양 보내는 형벌이고 노역이 부과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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