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순실 우병우’ 의혹 삼키고 정계재편·대선판도 빅뱅 등 정국 주도권 ‘블랙홀’

[한국농어촌방송=정양기 기자] 정치권의 개헌 요구를 외면해왔던 박근혜 대통령이 그동안의 입장을 바꿔 전격적으로 개헌 추진 카드를 뽑아 들었다. 30년만의 체제 전환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정계재편 후폭풍과 함께 대선판도에도 빅뱅이 올 것이라는 관측이다.

측근비리 의혹과 20%대 지지율 급락으로 레임덕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난국을 돌파할 극약 처방을 한 것이다. 개헌이라는 초대형 이슈를 제기함으로써 좌순실 우병우’ 의혹 삼키고 정계재편·대선판도 빅뱅 등 정국 주도권 ‘세몰이’이를 통해 수세에 몰린 국면을 ‘개헌 블랙홀’로 반전시키고 국정동력을 회복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라는 분석이다.

▲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임기내 개헌을 선언하고 있다(사진제공=청와대)

또한 국회의원의 3분의 2가량이 개헌을 주장하고 있고 국민 대다수가 개헌을 선호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여야의 합의 여하에 따라 내년 대선 전 개헌이 이뤄질 가능성이 커져서 1987년 체제가 30년 만에 전면적인 전환이 이뤄질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 셈이다.

그러나 일부 유력 대선 주자들이 조기 개헌론 점화에 반대하고 있고, ‘권력구조’ 등에 대한 선호가 워낙 엇갈리는 것이 개헌에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 개헌론은 여권에서는 ‘오래된’ 시나리오였다. 개헌론이 여당의 정권 재창출 전략과 맞닿아 있다는 견해도 있다. 여

애당초 정치권에서 그려온 개헌 시나리오는 △박 대통령의 선창에 의한 현 정부 임기 내 개헌 추진 △국회 주도에 의한 개헌 추진 △대권 주자들의 대선 공약에 의한 차기 정부 출범 후 개헌 등 3가지로 압축된다. 정치권에서는 이 가운데 가장 실현 가능한 시나리오는 대통령의 선창에 의한 것이라고 봤다. 박 대통령이 이를 수용하면 여당이 따라가고 국회의원의 절대다수를 점하는 개헌론자들의 개헌 추진이 더 용이해지기 때문이다.

▲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내 개헌 추진 선언이 정치권을 강타하고 있다(사진제공=청와대)

박근혜 대통령은 "임기 내에 헌법 개정을 완수하기 위해 정부 내에 헌법 개정을 위한 조직을 설치해서 국민의 여망을 담은 개헌안을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밝히고 "이제는 1987년 체제를 극복하고 대한민국을 새롭게 도약시킬 2017년 체제를 구상하고 만들어야 할 때"라면서 전격적으로 개헌 추진을 선언했다.

박 대통령은 24일 오전 국회에서 예산안 시정연설을 갖고 “대한민국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우리가 처한 한계를 어떻게든 큰 틀에서 풀어야 하고 저의 공약사항이기도 한 개헌논의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이어 “국가운영의 큰 틀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중장기적으로도 더욱 중요하고 임기 동안에 우리나라를 선진국 대열에 바로 서게 할 틀을 마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라며 “향후 정치일정을 감안할 때 시기적으로도 지금이 적기라고 판단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개헌에 대한 입장 전환 배경으로 박 대통령은 “당면한 문제들을 일부 정책의 변화 또는 몇 개의 개혁만으로는 근본적으로 타파하기 어렵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며 “우리 정치는 대통령 선거를 치른 다음 날부터 다시 차기 대선이 시작되는 정치체제로 인해 극단적인 정쟁과 대결구도가 일상이 됐다”고 지적했다.

또한 “대통령 단임제로 정책의 연속성이 떨어지면서 지속가능한 국정과제의 추진과 결실이 어렵고 대외적으로 일관된 외교정책을 펼치기에도 어려움이 크다”며 “이런 고민들은 비단 현 정부 뿐만 아니라 1987년 개정된 현행 헌법으로 선출된 역대 대통령 모두가 되풀이해 왔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저출산·고령화, 다양한 가치와 목표가 혼재하는 복잡다기한 사회의 변화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갈 새로운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지금은 1987년 때와 같이 개헌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생각한다”고 역설했다.

아울러 “오늘부터 개헌을 주장하는 국민과 국회의 요구를 국정 과제로 받아들이고 개헌을 위한 실무적인 준비를 해 나가겠다”며 “임기 내에 헌법 개정을 완수하기 위해 정부 내에 헌법 개정을 위한 조직을 설치해 국민의 여망을 담은 개헌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청와대 주도의 개헌 추진을 예고했다.

청와대 "朴대통령이 필요시 개헌안 발의…개헌논의 주도 입장"

청와대 김재원 정무수석은 이날 춘추관 브리핑을 통해 "개헌안 제안권자는 대통령과 재적 과반의 국회"라며 "국회 논의과정을 봐가면서 필요하다면 당연히 대통령께서 헌법개정안 제안권자로서 정부안을 제안할 수 있다"고 밝혔다.

김 수석은 "대통령이 개헌논의를 주도해야 한다"며 "개헌안 논의가 지지부진하거나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논의가 진척되지 않으면 대통령이 보다 많은 의사를 표현하고 의지를 밝힘으로써 개헌에 박차를 가할 수 있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김 수석은 개헌안의 핵심인 권력구조 개편과 관련해서는 "국민들과 국회의 공감대가 함께 가야하고, 당장 대통령 4년 중임제나 내각책임제, 분권형(대통령제) 이런 것은 상정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또한, 박 대통령의 개헌추진 결심 시기에 대해 김 수석은 "지난 6월9일께 정무수석으로 임명받고 이 자리에서 일하게 됐는데 그 무렵부터 개헌에 대한 방향설정 등에 대해 많은 고민과 수석들 간 많은 의견이 있었다"며 "그래서 여러 토론 끝에 8·15광복절 기념사에서 추진을 공표하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당시에는 현실화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 수석은 "종합적이고 최종적인 개헌 보고서는 추석 연휴 전에 대통령에게 상세히 보고했다"면서 "마지막 보고는 지난 18일에 개헌의 향후 일정과 그 방향, 그리고 시정연설에 포함될 최종원고를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오늘 대통령이 시정연설 한 내용으로 구체화됐다"고 말했다.

<향후 개헌 절차 어떻게 되나-법정 기간 110일 필요>

개헌 절차는 헌법 제128조∼제130조에 명시돼 있다. 이에 따르면 헌법 개정은 국회 재적 의원 과반수 또는 대통령 발의로 제안된다. 현재 국회 재적 의원이 300명인 만큼 151명 발의로 제안이 된다.

대통령의 임기연장 또는 중임 변경을 위한 헌법 개정은 당해 대통령에 대해서는 효력이 없기 때문에 박 대통령 임기 중에 개헌이 이뤄진다고 해도 박 대통령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헌법 개정안은 20일 이상 공고되고 국회는 공고된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의결해야 하며, 국회 의결은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현재 재적 의원 300명 가운데 200명 이상이 찬성해야 헌법 개정안이 의결되는 셈이다.

헌법 개정안은 국회가 의결한 뒤 30일 이내에 국민투표에 부쳐 국회의원 선거권자 과반수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정당 등은 국민투표일 공고일부터 투표일 전날까지 방송 연설·대담·토론을 하거나 소형인쇄물을 배포하는 방식으로 찬성 또는 반대 입장에 대한 운동을 할 수 있다.

과반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 찬성을 얻으면 헌법 개정은 확정되고 대통령은 이를 즉시 공포해야 한다. 개헌안 발효 시기는 부칙으로 정한다.

헌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개헌이 확정되며 대통령은 이를 즉시 공포해야 한다. 대통령은 일반 법률과는 달리 헌법 개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다.

<박 대통령의 임기 내 헌법 개정 선언에 대한 여야 각 당의 반응>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의 임기 내 헌법 개정을 전격 제안한 것과 관련, 여야는 개헌 논의에 참여하겠다는 반응을 내놨다. 새누리당 내에서 일제히 환영과 지지 의사가 쏟아진 것과 달리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등 야권은 개헌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박 대통령의 기습적인 제안에 불순한 의도가 담겼다”며 “박 대통령이 개헌 논의를 주도해선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 "개헌 시간적 부분, 의지 문제…정략적 이용은 안돼"
"당 대표 되고 나서 일관되게 개헌 건의 드려왔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의지의 문제다. 정치권과 국민 여론이 어느 정도 형성된다면 시간적 부분은 별다른 제약 요인이 안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표는 또 "박근혜 대통령이 당 대표시절부터 대선후보가 되셨을 때도 필요성에 대해 일관되게 말씀을 했었고 제가 당 대표가 되고 나서 청와대에서 잠깐 독대하는 시간에도 개헌에 대한 건의를 드렸다"며 "그 뒤에도 여러 차례 개헌에 관한 의견 교환이 있었고 일관되게 개헌에 대해 건의를 드려왔다"고 전했다.

이 대표는 "권력구조는 소신이 있지만 특정정권과 특정정당, 특정정치인 위주의 개헌은 맞지 않다"며 "국민 공감대가 제일 중요한 것이고 국민헌법이 돼야 한다는 말을 일관되게 말해왔다"고 설명했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 "박정희 3선개헌 떠올라"
"시기 적절치 않아…대통령, 개헌논의서 빠져야"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예전에 아버지(박정희 대통령)가 정권 연장을 위해 3선 개헌 할 때의 모습이 떠오른다"고 지적했다.

추 대표는 또 "저는 이 사태를 아주 심각하게 본다"며 "(개헌) 시기가 적절하지 않을뿐더러 대통령은 자칫 잘못하면 정권연장 음모에 휘말릴 수 있어 개헌논의에서 빠져야하는 분"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개헌특위'와 관련해서는 "천천히 논의할 것"이라며 "일단 차분하게 최고위원들과 논의를 하도록 하겠다"고 말을 아꼈다.

국민의당 "만시지탄…정권비리 은폐수단 돼선 안돼"
"임기내 개헌 추진 입장 환영하지만 국정농단 덮으려는 의심충분"

손금주 수석대변인은 "박 대통령이 이제 와서 개헌론을 제시하는 것은 만시지탄이지만, 뒤늦게나마 대통령의 임기내 개헌 추진 입장을 표명한 것에는 환영을 표한다"고 전제했다.

손 수석대변인은 그러나 "개헌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며, 개헌 이전에 우리가 논의해야 할 문제 또한 산적해 있다"며 "개헌론을 던진 현 시점도 문제이다. 누가 봐도 최순실, 우병우 등 대통령 측근의 국정농단을 덮기 위한 것이라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한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새누리당에서 제기해왔던 개헌론에 제동을 걸어왔던 박 대통령이기에 개헌론을 던진 의도에 대해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며 "국민의당은 개헌논의와는 별도로 최순실, 우병우 등 대통령 측근의 권력형 비리 의혹을 끝까지 파헤칠 것을 약속드리며, 우리 사회가 새로운 헌법체계를 준비할 수 있도록 진정성 있는 논의의 장을 마련해 주기를 요청한다"고 밝혔다.

정의당 "깜짝 개헌으로 최순실 게이트 못 덮어"

추혜선 대변인은 "깜짝 개헌 제안으로 최순실 게이트를 덮을 수는 없다"고 비판하며 "대통령께서는 최근 국정 현안에 대한 책임 있는 모습 대신 본인의 임기 안에 헌법 개정을 완수하겠다는 느닷없는 제안으로 이 난국을 돌파하려는 것이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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