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손의 상소는 이어진다.

“『예기(禮記)』에 ‘거상 중에 병이 있으면 고기를 먹고 술을 마시되 병이 나으면 전대로 한다.’고 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사속(嗣續, 대(代)를 이을 후손)이 중하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임금의 몸에는 종묘사직의 중함이 달려있으니 더 말 할 나위이겠습니까.”

예기(禮記)는 유가(儒家)의 경전인 오경(五經)의 하나로, 예법(禮法)의 이론과 실제를 풀이한 책이다. 상복(喪服), 예(禮)의 해설, 예악의 이론 등을 담고 있다.

“옛적에 임금이 돌아가매 새 임금이 3년 동안 말을 하지 아니하고, 여러 백관이 총재(冢宰)에게 모든 정사를 묻는 것인데, 지금의 원상(院相)이 곧 총재입니다. 신은 바라옵건대, 전하께서 졸곡(卒哭) 이전에는 다만 원상으로 하여금 승지와 함께 편의에 따라 정무를 처리하게 하시어 전하께서는 마음을 가라앉혀서 몸을 보존하시고, 신하들의 말하는 것도 또한 오래 거절하지 마시어 생각을 안정시키소서.

산릉(山陵)이 정한 기한이 있어서 빈전을 모실 날이 많지 않으니, 몸을 살피시고 힘을 헤아리시어 다시는 애태우지 마시고, 편찮으시면 속히 양음(涼陰 상려 喪廬)으로 돌아가시어 큰 효도를 마치소서. 이것이 종신토록 부모를 사모하는 큰 효도입니다. 비록 자잘한 것을 처분하지 않더라도 삼가 침묵하는 가운데에 조화가 절로 유행할 것입니다. 또한 전하께서 비록 침묵하실 때에도 대신을 가까이 하시어 환후를 보살피는 의원을 감독하게 허락하소서. 송나라 영종(英宗)이 재궁(梓宮) 앞에서 병을 얻었을 때에 한기(韓琦)가 옆에 없었더라면 위태하였을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이 점을 경계하소서.”

북송의 제5대 황제 영종(英宗 1032~1067, 재위 1063~ 1067)은 제4대 황제 인종의 사촌 형제인 조윤양의 13번째 아들이다. 1063년에 인종이 후사 없이 붕어하자 그는 영종으로 즉위하였다. 영종은 파탄 상태의 재정을 회복하기 위해 개혁에 착수하려고 했지만, 개혁에 반대하는 세력이 강하였고, 영종 자신도 병약하여 재위 4년 만에 병사(病死)하여 개혁은 실패로 끝났다.

상소는 이어진다.

“대신을 가까이 하고 환관(宦官)을 멀리 하는 것이 또한 수신(修身)하는 급무(急務)입니다. 옛날에 나라를 잘 다스리고자 하던 이는 반드시 먼저 집을 다스렸습니다. 대저 위로는 삼전(三殿)으로부터 아래로는 구족(九族)까지, 안으로 환관(宦官)·궁첩(宮妾)으로 부터 밖으로 복례(僕隷)까지도 모두가 전하의 한집안입니다. 전하께서 위로 삼전께 효도를 다하여 삼전으로 하여금 선왕의 돌아가심을 잊게 하시고, 아래로 구족에게 돈독하게 하여 구족으로 하여금 전하의 인자함을 받게 한 뒤에야 백성에게도 미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로부터 임금의 모후(母后)는 흔히 생모(生母)가 아니어서 이간하는 말에 동요되어 효도를 다하지 못하는 수가 있는데, 지금 전하께서는 삼전께 효도를 하시되 대비에게 생모와 똑같이 효도를 다하고서야 하늘에 계신 선왕의 영혼을 위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효도란 순(順)함을 위주로 하나 어버이의 영을 따르지 못할 수도 있고, 은혜란 후(厚)함을 위주로 하나 의리와 합치하지 못할 때가 있으니, 구차스런 효도를 할 수도 없습니다.

안으로 궁중의 청(請)을 막고 밖의 사사로움을 끊어서, 환관과 궁첩이 감히 뜻대로 행동하지 못하게 하고, 복례와 하천(下賤)이 감히 법을 범하지 못하게 하시고서야 집안이 다스려질 수 있습니다.

한나라 명덕황후(明德皇后)는 친정에 수레와 말이 많은 것을 보고 자신을 뼈저리게 꾸짖었고, 송나라 선인태후(宣仁太后)는 친정인 고씨(高氏)를 검찰한다고 스스로 일컬어 감히 사사가 있을 수 없었으니, 이것은 만세의 중궁(中宮)이 본받아야 할 바입니다.

근자에 월산군(月山君)의 종 길종(吉從)이란 자가 시골에서 폭력을 부렸으니, 법으로 보아서는 마땅히 변방에 귀양 보낼 것인데, 부인이 공공연하게 단자(單子)를 올려서 종을 두둔하려 하여 국법을 범했으되, 전하께서는 그의 청을 특별히 들어 주셨으니, 이것은 측근 종실에게는 법이 시행되지 않는 것입니다.

김일손은 임금이 궁중과 종친의 청탁을 배제할 것을 간언한다.

홍산현(鴻山縣)에서는 내수사(內需司)의 억센 종 열두어 명이 함께 밤에 공해(公廨)를 습격하여 공공연히 물건을 가져간 일이 있었는데, 이것은 전하께서 미처 모르시는 것입니다. 이 무리들은 세력을 믿고 법을 어지럽히고 고을 관가를 업신여겨 못할 짓이 없을 것이오니, 전하께서 사령(赦令)을 거쳤다 해서 아니 다스리지 마소서.

대저 임금은 사사로운 재산을 둘 수 없으니, 내수사에서 재산을 늘리는 것도 그만두셔야 합니다. 선왕께서 초년에 없앴다가 중년에 다시 둔 것은 자손이 번성하여 여기에서 가져다가 나누어 줄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전하께서 지금 없애신다면 무엇이 누(累)가 되겠습니까. 특히 선왕의 초년 뜻을 계승하시는 것입니다.

김일손은 임금은 사사로이 재산증식을 해서는 안 된다고 간언한다. 내수사가 재산을 늘리는 것을 경계한다.

경북 청도군 소재 자계서원 정문 (사진=김세곤)
경북 청도군 소재 자계서원 정문 (사진=김세곤)

 

경북 청도군 자계서원 전경 (사진=김세곤)
경북 청도군 자계서원 전경 (사진=김세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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