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찬의 소설 따라 역사 따라] 제1화. 연재를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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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찬의 소설 따라 역사 따라] 제1화. 연재를 시작하며
  • 정원찬 작가
  • 승인 2019.11.29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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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팩트를 주관적인 관점에서 풀어보는 계유정난

소설을 기획하면서 오류를 줄이기 위해
가능한 한 많은 사료를 모았으나
막상 집필에서는 10%도 활용하지 못했다.
이 방대한 자료를 어떻게 활용하나 고민하다
허구를 뺀 역사적 팩트를 중심으로
다시 이야기를 풀어보는 것도 의미있으리라는….

 

※ 이 코너에서 연재하는 이야기는 소설 ‘공주는 소리 내어 울지 않았다’ 속에 전개되는 역사적 사건을 돋보기로 확대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한국농어촌방송/경남=정원찬 작가] 1. 소설 <공주는 소리 내어 울지 않았다> 집필 동기

역사바로세우기, 과거사 규명, 적폐청산, 이런 정치 논리가 내 의식의 저편에서 머무는 동안 나는 조선왕조실록을 읽는 재미에 빠져 있었다. 거기에는 5백 년 동안 한 번도 숨을 멈추지 않고 살아 움직이는 역사가 담겨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조선왕조실록은 숨을 쉬고 있는데 나는 계유년 어느 늦가을에서 숨을 딱 멈추고 말았다.

1453년. 계유정난. 수양대군이 권력을 잡은 그날이었다. 조선의 모든 병권을 수하에 두고 있는 김종서를 두고 수양대군은 자기를 따르는 무리들을 향해 외쳤다. 김종서 한 명만 잡으면 된다. 그러면 조선은 나의 세상이 된다. 어둠이 깃들 무렵 시작된 역모는 다음날 새날이 밝아오자 마무리되었다. 수양대군이 조선을 품에 안는 순간이었다.

5백 년이 지난 뒤, 1979년 12월 12일 저녁. 닮은꼴 역모가 전두환에 의해 다시 시작되었다. 계엄사령관 정승화 대장만 잡으면 된다. 전두환은 그를 따르는 하나회 무리들을 향해 그렇게 외쳤다. 수양대군이 김종서를 잡을 때처럼.

정권의 찬탈은 군사의 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한 명만 잡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아이러니를 수양대군과 전두환은 똑같이 보여주었다. 내가 아니면 이 어지러운 나라를 바로잡을 수 없다 하여…. 세조가 했던 말을 전두환도 똑같이 했다.

단종이 영월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사사되었다. 그럼에도 세조는 단종이 목을 매고 자살했다고 기록했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세조가 사육신 등 많은 충신을 죽였듯이 전두환도 군대를 동원하여 시민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단종의 죽음을 자살로 위장을 했으니 죽음이라는 결과만 있을 뿐 죽인 자의 실체는 없다. 전두환 군사정권도 마찬가지다. 광주의 무고한 시민을 학살한 현장은 있는데 죽인 자의 실체가 없다.

나쁜 짓은 가르치지 않아도 잘도 배운다고 했던가. 두 역모 사건의 닮은꼴 역사를 보며 변명만 있을 뿐 반성이 없는 두 역사를 고발하고 싶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경혜공주의 삶이었다. - 소설 <공주는 소리 내어 울지 않았다> 작가 후기 중에서

2. 경혜공주와 백영옥 여사

문종의 딸로 태어난 경혜공주. 도성 내에 소문이 자자할 만큼 출중한 미모를 지닌 그녀는 할아버지 세종이나 아버지 문종으로부터 사랑을 독차지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영원토록 달콤하고 향기로울 것 같았던 그녀의 삶도 한순간에 파괴되고 말았다. 숙부인 수양대군이 권력을 잡은 순간부터였다. 그녀는 동생도 잃었고 남편도 잃었다. 모든 걸 다 잃고 말았다.

동생 단종을 지켜내지 못한 누이의 마음을 어찌 우리가 상상이나 할 수 있으랴. 공주의 남편이란 이유로 능지처참 당하는 남편을 지켜보는 공주의 아픔을 어찌 우리가 상상이나 할 수 있으랴! 아무리 목 놓아 울어도 그 울음이 세상 밖에선 들리지 않았다. 아무리 절규하며 세상을 향해 외쳐도 그녀의 목소리는 세상에 전해지지 않았다. 되돌아온 건 남편의 죽음. 사지를 찢어 죽이는 형벌,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형벌인 능지처참으로 죽고 말았다. 남편을 그렇게 보내고 공주는 순천 관아의 노비가 되었다. 그 아픔을 가슴에 묻은 채 12년이라는 세월을 견디다가 그녀도 한맺힌 삶을 마감했다.

1979년 12월 12일 밤. 특전사령관 비서실장 권오랑 소령. 그는 정병주 사령관을 체포하기 위해 들이닥친 전두환 수하들에게 무참히도 살해당했다. 상관을 지키려다가 온몸에 6발의 총탄을 맞고 숨을 거두었다. 정의를 지키고 불의에 맞서는 그의 용기는 결국 죽음으로 산화하고 말았다.

군부가 권력을 잡고 난 이후, 김오랑 소령의 부인 백영옥 여사는 남편의 명예회복을 위해 신군부세력과 싸웠다. 시력을 잃고 장애의 몸이 된 그녀의 투쟁은 눈물겨웠다. 군부에 저항할 수 있는 일이라면 종교인이든 언론사이든 발로 뛰어다녔다. 그러나 경혜공주가 그랬던 것처럼 여사의 외침은 세상으로 울려 퍼지지 못했다. 오히려 신군부의 눈엣가시일 뿐이었다.

남편 김오랑 소령이 순국한 지 12년이 되던 해, 그녀는 남편의 명예회복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고 말았다. 실족에 의한 추락사. 늘 살던 집 난간에서 떨어져 죽었으니 사고를 위장한 살해라는 소문만 무성한 채 그녀의 죽음은 묻히고 말았다.

백영옥 여사의 비극적 운명. 군사 반란에 희생된 그녀의 삶은 어쩌면 오백 년 전 경혜공주의 삶이 아닐까 하는 착각을 갖기에 충분했다. 남편을 저 세상으로 먼저 보내고 12년 동안의 한 맺힌 삶을 살았던 두 여인. 어째서 똑같이 12년의 고통을 두 여인에게 주었을까?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너무 가슴 아픈 세월이었다.

3. 왜곡된 역사에 숨겨진 실체

역모로 인해 빚어진 두 여인의 불행한 운명. 그래서 먼저 시작한 것이 경혜공주의 삶을 추적하는 일이었다. 조선왕조실록 여기저기를 헤매며 경혜공주에 대한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러나 난관에 부딪히고 말았다. 실록이 온통 왜곡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계유정난으로 권력을 잡은 수양대군이나 정난공신들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역모의 합리화였다. 그러다 보니 역사를 왜곡하고 사실을 숨기는 것은 당연한 것. 세조실록이 가장 역사적 왜곡이 심한 이유도 이런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래서 <공주는 소리 내어 울지 않았다>를 탈고하기까지 세조와 정난공신들이 숨기고 왜곡해 놓은 역사의 뒷면을 찾아내고 재해석하는 일이 가장 어려웠다. 단종의 죽음에 관한 기록을 예로 들어보자.

임금께서 명하시길 송현수는 교형에 처하고, 나머지는 논하지 말도록 하였다. 노산군(단종)이 이를 듣고 또한 스스로 목매어서 졸하니, 예로써 장사지냈다. <세조실록 3년 10월 21일>

위 실록에서 세 가지 오류를 지적할 수 있다. 하나는 단종의 죽음을 자살로 위장해 놓은 점이고, 두 번째는 죽은 날짜이며, 마지막으로 죽음에 대한 처리 과정이다.

모든 야사집 등 많은 사료를 보아 단종은 세조에 의해 10월 24일에 사사되었다. 그리고 유기하다시피 한 시신을 영월 호장 엄흥도가 거두어 장사지냈으니 예로써 장사지냈다는 실록의 기록은 거짓이다. 그렇다면 위 실록의 기사는 단종의 죽음만이 팩트이고 나머지는 모두 날조된 셈이다. 여기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단종의 죽음’ 편에서 구체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4. 소설 따라 역사 따라

아무튼 세조와 관련하여 기술된 내용은 그 이면에 숨겨진 내용을 유추해 보는 단계를 거치지 않으면 역사 해석의 오류에 빠질 수밖에 없는 위험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많은 역사소설이 그러하듯이 작가의 가치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고 그 해석에 따라 허구화하기 때문에 해석의 오류를 작가는 가장 경계해야 한다.

<공주는 소리 내어 울지 않았다>를 집필하면서 이러한 오류를 줄이기 위해 가능한 한 많은 사료를 모으는 데 충실했다. 세종조 후반부터 문종, 단종, 세조를 거쳐 예종, 성종에 이르기까지 실록을 중심으로 하되 야사와 설화를 망라하여 자료를 수집했다. 그런데 막상 소설 집필을 마치고 보니 수집된 방대한 자료를 10%도 활용하지 못했다. 낭비가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이 자료들을 재활용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이 팩트와 허구를 조화롭게 꾸며낸 것이라면 앞으로 연재할 내용은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역사적 팩트만을 가지고 주관적인 관점에서 총 40회 분량으로 풀어내 보고자 한다.

5. <공주는 소리 내어 울지 않았다>의 처음 기획은 경혜공주의 시선으로 본 계유정난과 백영옥 여사의 시선으로 본 12·12의 두 역모 사건을 함께 다루고자 하였으나 경혜공주 이야기로 소설을 탈고하고 말았다. 하여 후자의 이야기는 다음 기회로 미룰 수밖에 없음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정 원 찬

▶경남 하동 출생
▶진주고등학교 졸업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 석사
▶중등교사 및 교장 역임
▶장편소설 「먹빛」 상·하권 출간
▶장편소설 「공주는 소리 내어 울지 않았다」 출간
▶뮤지컬 「명예」 극본 및 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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