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칼럼] 뿌리 내리는 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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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칼럼] 뿌리 내리는 영성
  • 김기덕 진주교회(평안동) 담임목사
  • 승인 2019.11.29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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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진주교회(평안동) 담임목사
김기덕 진주교회(평안동) 담임목사

[한국농어촌방송/경남=김기덕 진주교회(평안동) 담임목사] 꽃보다 뿌리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영성이다. 표면적인 것보다 이면적인 것, 바깥이 아니라 안을, 외적 활동보다 내면세계에 더 심혈을 기울이는 것이 영성이다. 내가 무슨 일을 얼마나 했느냐보다 그 일을 통해 어떤 영향력을 주는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영성이다. 나무의 생명은 뿌리에 있다. 많은 사람들이 꽃과 열매에 관심을 두지만 영성이 깊은 사람은 뿌리에 관심을 둔다. 뿌리가 없는 꽃은 조화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뿌리를 깊이 내리는 작업보다 열매만 맺으려고 한다. 뿌리를 내리는 인고의 과정을 피하고 싶어 한다. 영성이 없으면 내면의 소통도 없고 생각의 깊이와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다. 겉으로 보이는 것에 만족하다 시간을 허비한다. 이 세상은 꽃에 열광하고 화려한 것을 추종한다. 그러나 내면의 영성을 가진 자들은 보이지 않는 뿌리에 깊은 관심을 가진다. 뿌리를 내리지 않고 드러내려고 하는 것이 이 세상의 허상이고 허세이다.

영성은 높아짐이 아니라, 내려감이다. 내려갈수록 더 많은 것을 채울 수 있다. 영성은 화려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란다. 뿌리내리는 영성을 가진 자가 세상의 유혹에서 이길 수 있다. 겉으로 보이는 허세와 외형적인 것에 휩쓸리지 않는다. 세상의 것을 많이 가지고 있더라도 마음이 굳어지고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외형적인 것에 마음이 빼앗기다 보면 그 영혼이 피폐해지고 있다는 증거이다. 오늘날 삶의 내용은 없고 형식만 난무한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외적인 분주함만 가속도를 내고 있는 현실이다. 도달할 목적지가 어딘지 모르게 달리는 운전자와 같다. 경직되고 굳어지고 아파하는 이들이 도처에 깔려있다. 삶의 내용은 빠지고 형식만 앙상하게 남을 때 영혼은 피폐해진다. 영혼이 건강할수록 내면의 세계가 질서를 잡는다. 내면세계의 무질서가 가정의 파괴를 가져오고 사회질서를 혼란케 하는 것이다.

영성은 그리스도께 뿌리를 깊이 내리는 일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골2:6-7)” 그리스도에게 뿌리를 내릴 때 존재론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누구에게 뿌리를 내리느냐에 따라 삶의 내용과 질이 달라진다. 안타까운 것은 크리스찬 가운데서도 이 뿌리를 종교적인 형식에 뿌리를 내린 사람들이 있다. 경직되고 피상적인 종교성만 강조하는 이들로 말미암아 거짓된 영성이 참된 영성처럼 보이게 되었다. 딱딱하게 굳어진 신앙은 무기력하고 무의미하다. 일상의 삶 안으로 스며들어가지 못하는 신앙은 늘 겉돈다. 신앙의 이중성이 외식주의자의 길을 걷게 하는 것이다.

영성을 지속적으로 다루지 않으면 외식은 불가피해진다. 한두 번의 종교체험으로 뿌리 깊은 영성을 키우기란 힘들다. 일시적인 감흥이 아니라, 내면에서 지속적으로 자라는 말씀의 능력이 있어야 한다. 유진 피터슨은 “영성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향한 깨어 있는 관심이며 공동체 속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드리는 신실한 반응이다”고 했다. 영성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에서 자란다. 하나님을 만나는 내면세계 즉 마음의 정원을 잘 가꾸어야 한다. 우리 자신의 마음에 온갖 잡다한 세상적인 더러운 것이 자리 잡지 않도록 내면을 가꾸어야 한다. 다른 사람을 바꾸려 하지 말고 나 자신을 바꾸는 것이 혁명이다. 세상의 혁명을 말하기는 쉬워도 자신의 마음을 바꾸는 것은 어렵다. 마음을 오염시키는 통로를 차단하고 마음의 깊이가 그리스도에게로 닿는 깊은 영성이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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