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우칼럼] 희망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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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우칼럼] 희망 고문
  • 정용우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객원교수(전 학부장)
  • 승인 2019.12.12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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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객원교수(전 학부장)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객원교수(전 학부장)

[한국농어촌방송/경남=정용우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객원교수(전 학부장)]  우리 대학에서는 이번 주를 끝으로 학기말시험이 마무리된다. 이로써 내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은 평가점수 입력만 남았다. 그 과정이 끝나면 방학에 들어가고 나는 이제 20년 동안 정들었던 이 학교를 떠난다. 20년 동안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래도 학생들과의 만남 그 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주경야독하는 바쁜 일상 속에서도 나에게 많은 관심과 사랑을 베풀어준 우리 학생들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어느 입학 환영회 모임 때, 입학 동기가 ‘교수님! 하고 한 번 불러보는 것’이라고 나에게 살며시 고백한 학생은 더욱 그러할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회의 질시와 냉대를 받았으면 입학 동기가 이렇게 엉뚱할 수 있을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미어진다.

모든 학생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우리 대학 많은 학생은 부모로부터 경제적 도움을 받지 못해 대학진학을 포기한 사람들이다. 나이가 들어 학사학위의 필요성을 절감하고는 스스로 돈 벌어 등록금을 조달하면서 학교에 다닌다.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이지만 삶의 목적, 즉 생존의 질과 양을 확대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고 꿈꾸기요 희망쌓기다. 물론 학위 못지않게 공부도 중요하다. 사람으로서 바로서기 위한 공부도 하지만 우리 부동산학과 학생들이 주로 하는 공부는 부동산학 공부다. 부동산학 공부를 열심히 해서 부동산에 관한 지식과 정보를 많이 획득한다면, 어려운 경제적 상황이지만 그래도 남들보다는 ‘내집 마련’이 조금이라도 수월하고 빠르게 달성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 일게다.

그러나 어디 현실이 그렇게 녹녹하던가. 가진 자들 중심으로 블록을 형성하여 아예 외부인들은 진입 자체가 불가능하도록 만들어진 시스템. 그 시스템 안에서 그들만의 소유가 다음 세대까지 계승되게끔 철저히 구조화된 시스템. 이런 시스템 하에서 ‘개천에서 용나기’란 참으로 어렵다. 지난달 발표한 통계청 2019 사회조사에서 우리 사회의 계층이동 기대감은 바닥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던 것만 봐도 이를 잘 알 수 있다. ‘일생동안 노력한다면 본인 세대에서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22.7%에 그쳤다. 부와 가난이 각각 대물림되면서 계층상승을 이뤄낼 사다리가 사라지고 있다는 뜻이며 희망보다는 체념이 사회 분위기를 지배한다는 이야기다.

이런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 낸 데에는 부동산값 폭등이 그 중심 역할을 톡톡히 했다. 국가·도시 비교 사이트인 넘베오를 보면 지난해 서울 도심 아파트 가격 상승률은 2016년 대비 38%로, 비교 대상 20개 도시 중 가장 높았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통계에서도 2017~2018년 서울 집값은 14% 올라, 조사 대상 8개 도시 중 파리와 함께 세계 2위를 차지했다. 이 기간 세계 집값 상승세가 꺾인 것과는 확연히 다른 추세다(중앙일보 11월 25일자 B1면).

상황이 이러하니 우리 많은 학생들처럼 무주택 실수요자가 내집 마련하는 것은 하늘에 별따기 만큼이나 어렵게 됐다. 소위 ‘넘사벽’(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이다. 물론 이번 정부 들어서 집값을 안정시키고 무주택 실수요자들을 위한 주택정책을 펴지 아니한 것은 아니다. 서울 새 아파트의 공급 루트인 재건축·재개발을 억제하고, 고가·다주택자 보유세 강화, 신규 주택대출 금지 등 각종 부동산 정책을 폈지만 기존 아파트 가격을 끌어올리는 부작용만 낳고 있다. 헛발질만 한 셈이다.

문 대통령은 “더욱 강력한 방안을 강구해서라도 집값을 반드시 잡겠다”고 했다. 17번이나 쏟아낸 정부대책이 결국 시장을 이기지 못했다는 학습효과 때문인지 쉽게 신뢰하지 못한다. 그러나 절망적인 상태에서 두려움을 빠져 있는 것보다는 그래도 ‘희망’이라는 단어를 가슴 속에 간직하는 것이 우리네 정신건강에 도움이 될 터. 그래서 이 또한 ‘희망고문’이 될지라도 다시 희망을 꼭 껴안는 이유다.

‘카프카의 희망’이라는 말이 있다(김진영, ‘이별의 푸가’). 카프카의 친구인 막스 브로트가 그에게 물었다. “(그럼) 세상에는 희망이 없다는 건가?” 이에 카프카는 대답했다. “아니, 세상은 희망으로 가득 차지. 그렇지만 그 희망들은 우리를(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네” 그렇지만 나는 소망한다. 이 희망이, 가진 자들과 이미 철밥통을 옆구리에 찬 사람들만을 위한 희망이 아니라, 소외된 자와 약한 자 모두를 아우르는 희망이 되기를. 그때 우리의 희망은 세상의 희망이 되고 우리 모두 함께 꿈꿀 수 있는 희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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