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손의 상소 26개 조목 중 4번째는 ‘작은 허물을 가볍게 다루고 오복(五服)을 소중히 여겨서 조정에 충후(忠厚)한 풍도를 세워야 합니다.’ 이다. 이를 읽어보자.

“신이 보기에 요즘 음해하고 적발하는 풍조가 점점 늘어나고, 충신(忠信)의 도(道)가 점점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정승이 있어서 본래부터 장자(長者)라고 칭송되다가 한 가지 일에 잘못이 있으면 갑자기 간사한 자라 일컫고, 어떤 명사(名士)는 평소 깨끗한 선비로 칭송되어 오다가 한 가지 흠만 있으면 갑자기 소인(小人)으로 지목하여, 아침에는 교유하는 자리를 같이 하다가, 저녁에는 공박하는 글로써 사사로운 일을 적발하여 자못 실없고 경솔한 자로 만들고 있습니다.

사람의 정신은 명암이 있고, 생각은 득실이 있고, 재질(材質)은 장단이 있습니다. 그래서 ‘허물은 용서하고 모두 다 잘하기를 바라지 말라.’라는 선사(先師)의 교훈입니다. (후략)

100%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으랴 조금만 허물은 용서하고 관용의 정치를 하라는 김일손의 간언이다. 안 그러면 서로 헐뜯어서 인재는 고갈되고 말 것이다.

다섯째 조목은 ‘조종의 법을 복원시켜서 해당 관서에게 법을 지키도록 단속하실 것.’이다.

“대저 《원육전(元六典)》과 《속육전(續六典)》은 조종의 법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논의하는 자는 반드시 조종의 법은 고칠 수 없다 하는 데, 이는 조종께서 우려하는 마음이 깊고 일을 고쳐 본 경력이 많아서 법을 제정하는 데 주밀(周密 : 허술한 구석이 없고 세밀하다)하지 않은 점이 없기 때문이라 합니다. 생각해 보건대, 원·속 두 법전은 태조께서 처음 제정한 것이 아니고, 태종(太宗)께서 고려의 옛 법에서 뺄 것은 빼고 넣을 것은 넣어서 제정한 것으로, 마치 명나라 법이 당나라 법에 의거한 것과 같습니다.

지금 쓰고 있는 《대전(大典)》이 원·속 두 법전에서 나왔으나, 때에 따라 빼고 넣었기 때문에 그 본진(本眞)이 점점 없어져서 조종의 좋은 법과 거룩한 뜻이 더러 소멸되어 남아 있지 않고, 또한 유사(有司)가 백 년이 지난 문서를 판독 하려 해도 의거할 곳이 없습니다. 신은 청컨대, 원·속 육전을 인출(印出 인쇄)하여 각 지방 관서에 반포하여 《대전》과 함께 참고하여 쓰도록 하소서.

원 · 속 두 법전을 <대전>과 함께 참고하여 법을 집행하라는 상소는 지금의 사법부도 참고할만한 사항이다.

김일손의 상소는 이어진다.

“신이 보기에는 선왕의 정사는 인(仁)과 서(恕)를 숭상하고 무릇 사람을 치죄(治罪)할 때에는 정상과 법을 여러 번 참작하다가 유사(有司 형을 집행하는 관서)의 논죄하는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기도 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법사(法司 형조)는 그 실정은 가벼운 죄인 줄 알면서 고의로 그 율(律)을 무겁게 정하여서 상부의 처분에 맡겨 마침내는 감형을 따랐는데, 그것이 점차 관습이 되고 의금부 옥사도 더욱 심하게 되었습니다.

전하께서는 마땅히 유사들이 속이지 않도록 질책하시고, 법집행을 옛날 장석지(張釋之)처럼 엄하고 공정하게 하며, 임금의 의사에 따라 경중을 정하는 일이 없도록 하신다면 모든 옥사(獄事)가 매우 다행스러울 것입니다.”

장석지는 중국 한나라 때 관리로 법을 엄격히 지키고 논의가 공정한 사람으로 이름났다.

여섯째 조목은 “제조(提調)를 없애고 도당(都堂 의정부)에 통합해야 합니다.”이다.

“삼공(三公)이 육경(六卿)을 통솔하고, 육경이 모든 관리를 통솔하여야 체계가 서로 유지되고 정사가 한 곳에서 나올 것인데, 요즘에는 삼공이 하는 일 없이 도당에 앉아 있어 산관(散官)과 같은 인상을 주고 있으며, 관청마다 각기 제조(提調)를 두고 저마다 따로 법을 만들어 정사가 여러 곳에서 나오기 때문에 통섭(統攝)할 도리가 없습니다.

내수사처럼 미미한 관아에서도 역시 자의로 <속전(續典)>외의 교령(敎令)을 시행하니, 공문서가 어지러워져서 다른 관원이 받들어 이행하기가 현란합니다.

신은 원컨대, 제조를 가려내어 모든 관직을 육조에 붙이고, 큰 관직 제수나 큰 정령(政令) 시행이 있을 때에는 육조에서 도당(의정부)의 명령을 들어서 시행하여 조정의 체계를 세우게 하소서. 이것이 조종의 법입니다.”

제조(提調)는 당상관 이상의 관원이 당상관 이상의 관원이 없는 사(司)·원(院)등 관아에 겸직으로 배속되어 그 관아를 통솔하는 중앙 관직의 하나이다. 비변사, 선혜청, 승문원, 봉상시(奉常寺), 내수사, 전의감(典醫監)등 중앙 관아에 설치되었다. 제조는 해당 관아에 상시 출근하여 관아를 통솔하고 저마다 정령을 시행함으로써 문제가 생겼다.

김일손은 제조의 폐단을 막고자 육조가 지휘하여 조정의 체계를 세울 것을 건의한다.

탁영연보 (청도박물관 소장) (사진=김세곤)
탁영연보 (청도박물관 소장) (사진=김세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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