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하나하나 영혼 담아 죽은 나무에 새 생명

무역회사 대표 시절 취미로 수석에 푹 빠져
우연히 서각 최고봉 현산 강민 선생 만나 서각 사사
‘서각’ 혼자놀기 좋은 예술, 늙어서도 외로움 달래줄 예술

치매예방 잡념없애 집중력 향상 우울증 예방에 도움
오는 10월에 창원에서 ‘정세연 초대전’ 개최할 예정
사천지역에 생태공원, 서각 전시관 건립 하는 게 꿈

정세연 작가는 형태도 없이 넓적한 나무에 조각칼과 끌을 손에 쥔 장인이 수만 번 두드리고 깎아내면 상상도 못한 작품으로 변신하는 예술, 서각은 ‘내 인생의 모습’ 이라고 말한다.
정세연 작가는 형태도 없이 넓적한 나무에 조각칼과 끌을 손에 쥔 장인이 수만 번 두드리고 깎아내면 상상도 못한 작품으로 변신하는 예술, 서각은 ‘내 인생의 모습’ 이라고 말한다.

[한국농어촌방송/경남=강현일 기자] 형태도 없이 넓적한 나무에 조각칼과 끌을 손에 쥔 장인이 수만 번 두드리고 깎아내면 상상도 못한 작품으로 변신하는 예술, 서각은 ‘내 인생의 모습’이라는 석천 정세연(63) 작가.

따스한 봄날 오후 바닷가 근처 뱃고동 소리가 은은하게 들리는 작업실에서 석천 선생을 만났다. 석천 선생의 작업실에는 수많은 정통 수석들과 서각 작품들로 가득 차 있다. 들어서는 순간 수석 속의 여름 계곡과 가파른 산맥이 나를 반겼고, 그 수석과 잘 어울리는 듯 정 선생의 서각 작품들은 웅장한 기세로 벽에 전시되어 있었다. 석천 선생은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작품 활동에 있어서는 어느 젊은이보다 열정이 대단해 보였다.

정 작가는 1990년대에 성장하는 무역회사의 대표였다. 그 당시 우리나라의 경기는 최고조였다. 처음에 정 작가는 일상의 지루함을 잊기 위해 수석을 모으기 시작했다. 무역회사를 운영하며 전 세계를 다니면서 좋다는 수석은 모조리 수집했다. 주변에서는 이런 돌덩이를 왜 돈 주고 사고 다니냐고 뭐라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정 작가는 수석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그 수석 속의 산맥, 거친 계곡을 한 눈으로 볼 수 있어 수석을 수집을 고집하는 이유라고 했다.

무역회사를 운영하며 수석을 모으던 중 서각가 현산 강민 선생을 만나게 됐다. 강민 선생과 작품을 서로 교환하면서 서각과의 인연은 우연히 시작됐다. 처음에는 취미로 했는데, 너무 재미있고 작업할 때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좋았다. 이때부터 강민 선생에게 6년간 전통, 현대 서각을 사사 받았다.

낮에는 회사를 운영하면서 밤에는 서각에 몰입했다. 그러나 정 작가에게 인생 최대의 위기가 찾아왔다. 바로 IMF 경제 위기가 닥친 것이다. 어렵게 일군 회사는 쉽게 무너졌고 힘든 시기를 오랫동안 겪었다. 이 힘든 시기를 버티게 해준 것 또한 수석과 서각이다. 지금의 정 작가를 존재하게 하는 것 또한 서각이다. 서각과 수석은 정 작가 인생의 강력한 원동력이 되어줬다. 또 좌절을 겪으면 몇 배 더 강해진다는 것도 배웠다. 이렇게 버티고 버텨 지금의 자리까지 온 정 작가는 말한다. 과거의 일은 잊고 현재의 생활의 최선을 다하면 좋은 일이 반드시 생긴다고. 밤낮없이 과거의 아픔을 잊기 위해 서각 작업에 매달리며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하기 시작한 그는 국내 최고의 서각 작가로 인정받기 위해 지금도 피나는 노력 중이다.

현재 정세연 작가는 대한민국 공예예술대전 심사위원, 대한민국 전통공예대전 심사위원, 대한민국 개천미술대상전 심사위원, 현대미술협회 경상남도 지회장, 한국각자협회 경상남도 지회장, 한국미술협회 중앙회원, 석천 서각교실 원장 등 여러 곳에서 활동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며, 생태공원건립 또한 목표를 두고 작업에 전념하고 있다.

정 작가는 전국에서 갤러리 초대전을 열어 지역민에게 생소한 새로운 장르의 예술세계를 전하고 있다. 어떤 작품을 만들더라도 모든 순간을 소중히 하며 최선을 다하고 있는 작가 정세연. 작품 하나하나에 자신이 살아온 삶과 혼을 담아내고 있는 그의 열정이 앞으로도 오랫동안 계속되길 기대한다.

정세연 작가의 대표작품 ‘대나무’
정세연 작가의 대표작품 ‘대나무’

다음은 정작가와의 인터뷰이다.

▲ 정 작가의 고향은 어디인가?

충주다. 부산에서 무역업과 물류운송업에 전념하다가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지금은 사천이 제2의 고향으로 생각한다.

▲ 작업실에 정체 모를 돌덩이가 상당히 많은데 어떤 돌인가?

- 돌덩이라니… 나한테는 소중한 것이다. 설명하자면 ‘수석’이라고 한다. 전 세계를 돌면서 모은 나의 몸과도 같은 것들이다. 수석수집이 취미다. 과거에 사업할 때 하나씩 모으다보니 이렇게 많아졌다.

▲ 수석이 뭔가?

- 강이나 바닷가의 돌밭 또는 산중에서 기이하게 생긴 돌을 수집하여 그 묘취를 즐기는 취미. 인데 일본에서는 물 수 자를 써 ‘水石’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목숨 수 자를 써서 壽石 이라고 한다. 수석이란 작은 자연석으로 산수 미의 경치를 축소해 볼 수 있는 일종의 예술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수석은 ‘예술이 되는 돌’이라고 생각한다.

▲ 수석을 잘 고르는 방법은 뭔가?

수석을 평가할 때 기본은 형, 질, 색인데 구도까지 같이 봐야 한다. 형은 돌의 생김새, 질은 석질, 구도는 형태석이면 형태석의 생김새, 문양석이면 돌의 문양에 들어있는 구도를 말한다. 색채는 빨강, 노랑 하양, 파랑 등 뚜렷할수록 좋다.

▲ 많은 정도가 아니라 작업실 대부분이 수석들로 가득 차 있다. 언제부터 모은 것인가?

- 모은 지 40년가량 됐다. 지금은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전시도 하고 판매도 한다. 정통수석, 정원석, 서각, 목공예, 장식품 등이 있다.

▲ 서각은 언제부터 시작했나?

- 20년가량 됐다.

▲ 어떻게 시작하게 된 동기는 뭔가?

- 앞 전에 말했듯이 수석 모으는 게 취미였다. 그때쯤 서각작가 현산 강민 선생을 만나게 됐다. 서로 수석과 서각 작품을 교환하면서 친해졌는데, 강민 선생도 수석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다가 서각 작품을 접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강민 선생에게 배워 입문하게 됐다. 

▲ 얼마나 배웠나?

- 6년 정도 배운 것 같다. 배울 때는 진짜 이를 악물고 배웠다. 난 뭐든지 하면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손재주가 어릴 때부터 있어서 그런지 금방 습득했다.

▲ 서각은 무엇인가?

- 서각은 죽은 나무에 새 생명 불어넣는 일이다. 형태도 없이 넓적한 나무에 조각칼과 끌을 손에 쥔 장인이 수만 번 두드리고, 깎아내면 상상도 못한 작품으로 변신한다. 가정의 평안을 바라는 간단한 글부터 오래전 선현들의 한자 시구, 불경(佛經) 해설이 담기기도 하고, 호랑이와 고래, 꽃 등이 새겨지기도 한다. 이처럼 글씨나 그림을 나무 등에 새기는 예술 장르를 서각(書刻)이라 한다. 나무에 영혼을 불어 넣는 서각은 오래전부터 현판이나 주련, 암각화 또는 경판으로 사찰이나 서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이처럼 서각은 문자전달 역할과 공예 적인 면에서 독특한 문화예술의 매개체로 인식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

▲ 배우기 쉬운 예술인가?

- 섬세함을 요 하면서도 오랜 시간을 작업에 몰두해야 해 고도의 인내심까지 필요한 서각은 보통 사람들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생활예술이라고 생각한다.

▲ 서각이 좋은 점은 뭔가?

- 마음 수련이다. 머리로 작품을 구상하고 손을 사용해 서각도, 망치 등을 다룬다. 작품 활동에서 정신집중으로 치매 예방 잡념 등을 없애 집중력 향상과 우울증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나무의 향을 맡으며 심리안정도 된다.

과거 씨름선수였던 태산 이만기 작가와 찍은 사진
과거 씨름선수였던 태산 이만기 작가와 찍은 사진

▲ 정 작가의 작품세계는 무엇인가?

- 서각의 작품세계는 심오하다. 서각은 글씨나 그림을 나무나 기타 재료에 음각, 양각, 혼합각으로 새기는 것이다. 나무의 종류와 성질, 건조방법에서부터 서각의 여러 가지 각 법, 선질, 채색 등을 기틀을 잡아 나만의 강렬하고 인상적인 예술작품을 만든다.

▲ 그럼 서각에서 재료인 나무는 어떻게 수급하나?

- 서각의 주재료인 나무는 직접 준비한다. 나무는 각자 나름의 색깔을 가지고 있다. 작업을 할 때 나무의 결대로 조각을 하지 않으면 찢어지기 때문에 나무의 특색을 잘 살려야 한다. 일반적으로 은행나무와 느티나무 등을 사용하는데 나무의 질감에 따라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와 기법에 맞는 나무를 선택한다.

▲ 나무는 어디서 구했나?

목재소나, 소재는 많은데 좋은 나무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전국을 수소문해서 수급했다. 지금 10년 동안 쓸 나무는 충분히 구했다.

▲ 낮에는 손님도 오고 작품에 집중할 시간이 없어 보이는데 작업은 언제 하나?

- 낮에 업무나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스트레스를 밤에 제가 좋아하는 작업에 몰두하면서 잊고 있다. 좋아해서 하는 일이라 100% 몰입하다 보니 잡념도 잊게 되고 보람도 느낀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다가 밤을 샌 적도 많다. 그만큼 서각은 충분히 매력 있다.

▲ 작품제작 기간은 얼마나 되나?

따라 다르다. 보통 2~3일에서 부터 수개월 또는 수년이 걸리는 작품도 있다.

▲ 이 지역에 유명한 서각 작가는 누가 있나?

. 유명한 분들은 많은데 대표적으로 삼림 송문영, 목민 유현수, 송암 이덕화 선생이 외에도 유명 서각 작가 선생들이 많이 있었다.

▲ 배우려 하는 사람은 많나?

. 요즘 들어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 많다. 40대 이상의 분들이 대부분이다. 서각이라는 게 혼자 즐기기 좋고 나이가 들어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리고 성취감이 어느 작품보다 높은 것 같다. 낮에 받은 스트레스를 풀기도 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오는 분 은퇴후 취미여가 생활. 서각 작업을 하고 있으면 각박한 세상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어서 좋다고들 한다.

▲ 서각은 금방 배울 수 있나?

-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보통 3개월만 배우면 가훈 등을 새겨 작품도 가능하다. 심도있는 작업은 몇 년간은 배워야 완벽히 구사할 수 있다. 쉬운 예술은 아니다.

▲ 서각 입문자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없나?

-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다. 취미로 서각을 시작하려면 창칼과 망치가 필요한데 적은 금액으로 구입할 수 있다. 나무도 비용이 많이 들지 않으니 금전적인 부담이 없으니 망설이지 말고 배우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작업할 때는 노력이 필요하다. 작품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면 된다.

▲ 서각에 한자가 많은데 서예도 잘해야 하는가?

- 그렇게 설명하자면 하나의 예술작품이 완성되기까지에는 많은 작업 과정을 거쳐야 한다. 많은 수련의 시간 속에서 새로운 표현을 위한 고뇌와 고독과의 싸움으로 자신을 소진 시켜가는 것이 예술가의 길이다. 위대한 예술가는 하루아침에 탄생하는 것이 아니다. 훌륭한 서각 작품의 창작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많은 서예의 수련이 요하다. 작품의 기본이 되는 훌륭한 서고를 얻으려면 필서의 완숙을 기하여야 한다. 서각이 서예로부터 분화됐다고 하지만, 그 형상성이나 조형성에서 하등의 차이점이 없어 서예에 의한 서고가 기본이 된다. 같지만 그 근원의 기본은 서예로부터 얻어지기 때문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화가가 되려면 데생 수련부터 시작하는 것처럼 서각가가 되려면 서각의 기초 수련인 서예부터 시작해야 한다.

▲ 서예를 자유자재로 사용해야 가능하다는 말인가?

아니다 머리에 떠오르는 미적 영감, 문자의 창조적 형상을 이룩하려면 무엇보다도 모필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서예가 전제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모필의 신비스러운 세계를 감지하고 이를 다룰 수 있어야 한다는 이유 외에도 지금까지 인류가 발명한 그 어떤 필사 용구도 모필 이상의 것은 없기 때문이다. 또 한 서각은 새겨야만 하는 노동을 요하는 작업이 따름으로 쓴다는 일 이외에도 각에 대한 여러 가지 기법까지도 배워야 한다. 그러나 각에 대한 기법이란 일정 기간이 지나면 누구나 습득할 수 있지만, 서고 작성에 대한 자신감이 없다면 개성 있는 현대 서각은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 개인전이나 초대전은 언제 할 예정인가?

된다면 지금이라도 하고 싶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일정이 취소되고 조심하는 분위기다. 조금 잠잠해지면 10월에 초대전을 열 생각이다.

정세연 작가가 운영하는 '석천갤러리'
정세연 작가가 운영하는 '석천갤러리'

▲ 서각은 작품 감상은 어떻게 해야 하나?

- 서각은 제대로 작품을 이해하기란 쉽지가 않다. 작가만의 독자적 필법, 각법, 채법으로 느낌대로 글을 보고 느낄 수도 있지만, 작가로부터 직접 작품 설명을 들으면서 감상하는 것을 추천한다.

▲ 작품은 몇 점 정도 했나?

. 400점 이상은 한 것 같다. 기간이 오래 걸리다 보니 종이에 그림을 그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 어떤 평가를 받기를 원하나?

- 누구에게 특벼한 평가를 받기보다는 나의작품을 좋아해주고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생활예술인으로 기억해 주었음 한다.

▲ 애착이 가는 작품은 없나?

- 모든 작품은 작가로서는 나름 소중하다. 마음이 가장 힘들 때의 작품이 늘 정이간다.

▲ 현재 활동하는 단체는 있나?

. 대한민국 공예예술대전 심사위원, 대한민국 전통공예대전 심사위원, 대한민국 개천미술대상전 심사위원, 현대미술협회 경상남도 지회장, 한국각자협회 경상남도 지회장, 한국미술협회 중앙회원, 석천서각교실 원장, 석천 갤러리 원장 등 여러 곳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이전의 경험을 살려 세종무역이라는 무역회사도 하고 있다. 세계 각국에 수입, 수출, 무역, 통관 대행하며 운영하고 있다.

▲ 앞으로의 계획은 없나?

- 여러 예술 장르 중에서도 가장 힘들고 긴 작업시간과 예술혼을 필요로 하는 서각 예술이 이곳 경남에서 도민들로부터 많은 호응과 사랑을 받았으면 한다. 사천 쪽에 경남 작가들의 서각 전시관을 만들고 싶다. 그리고 내가 모은 수석도 전시하고 내가 이 세상에 없어도 미래에 후손들이 작품을 보고 배울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한다. 하지만 쉽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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