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전 학부장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전 학부장

[한국농어촌방송/경남=정용우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객원교수(전 학부장)]  지금으로부터 약 11년 전,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발생했을 때이다. 그 사태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직·간접적으로 많은 고통을 겪었다. 특히 비즈니스에 관여하는 사람들에게는 절망의 심연 그 자체였다. 이런 상태에서 나와 아주 친한 친구들 부부모임이 경기도 양평 강가 어딘가에서 열렸는데 책을 몇 권 구입하여 선물로 준 적이 있었다. 그 책 이름은 13억 중국인의 정신적 스승인 지셴린(季羨林) 선생이 쓴 ‘다 지나간다’ 였다. 지셴린 선생은 그 당시 98세로 중국인들로부터 ‘나라의 스승’이라는 칭호를 받을 정도로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는 원로학자였다. 금융위기로 인해 어느 해보다 고통스럽고 힘겨운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나 또래 친구들과 함께 스스로 조금이라도 위로받을 길이 없을까 생각한 결과 이런 방법을 시도해 본 것이었다.

온통 위기상황인지라 이런저런 이야기 중에 우리 모두와 절친한 선배 사업가 이야기가 나왔고 급기야는 그 선배에게 안부전화를 하게 되었다. “선배님! 요새 힘들지요?” 했더니 그 선배님 말씀, “그래, 힘들기는 하지. 그런데 우리 삶이 언제 힘들지 않은 적이 있었나? 다 그리저리 견디며 헤쳐 나가는 거지”라고 하셨다. 절묘한 답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도 비바람을 머금고 있어 언제나 맑을 수만은 없듯이 우리 인생도 고통을 함께 머금고 있기 때문에 언제나 즐겁고 행복할 수만은 없는 것. 그래서 공자(孔子)께서는 “하늘에는 헤아릴 수 없는 비바람이 있고, 사람에게는 아침저녁으로 화와 복이 있다(天有不測風雨 人有朝夕禍福)”고 했다. 그 당시에는 선배님의 말씀이 그저 담담하게 받아들여졌지만 그 후 이 말씀이 내 삶의 버팀목이 되어 줄 줄이야!

위기 발생 원인은 다르지만 2020년 올해 역시 위기의 시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때문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전염병 확진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사망자 수 또한 마찬가지다. 생명을 앗아갈지도 모르는 위험 앞에서 우리는 속수무책이다. 많은 시간을 집에서 보내고, 외출할 때는 언제나 마스크를 챙기고, 손을 열심히 씻고 있지만 바이러스로부터 얼마나 멀리 있는지, 언제쯤 이 상황이 종료될 것인지 알 수 없다. 인생은 진정 걷잡을 수 없는 고통의 연속. 고통스러운 일 없이 인간으로 생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재난에 수시로 노출되지 않는 삶은 아예 불가능한 것일까. 아마 그런 것 같다. 어디서나 주위를 한 번 둘러보기만 하면 바로 확인이 되니까. 가련하고 비참하며 뚜렷한 결실도 얻어 내지 못한 채 생존을 위해 눈물겨운 노력, 몸부림, 고투를 벌이고 있는 현장을 어디서나 발견할 수 있기에. 크든 작든 재난이 우리 생활의 근본 요소가 되어 버렸다. 참으로 삶은 고(苦)다.

그런데 문제는 이 같은 고통스러운 상황을 나 혼자 발버둥 친다고 하여 단번에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어쩔 수 없는 고통’일 것이다. 어쩔 수 없는 고통이라면 인내의 지혜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참고 기다리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재난을 항시 주시하며, 이에서 연유하는 고통을 참고 견디어 나가는 것이다. 고통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살아 있는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하다는 것이다. 살아 있는 것 자체가 가장 소중한 가치인 만큼 생명에 대한 믿음으로 싸워나가다 보면 고통은 여러 방식으로 우리를 단련시키고 새로운 삶의 태도를 가르쳐 줄지도 모른다. 사실 우리는 일상의 삶을 통해서 이런 사례를 수없이 보아왔고 내가 당사자가 되어서 경험한 바도 심심찮게 있었다. 이런 맥락에서 어떤 이는 배가 안전하게 똑바로 나아가기 위해 싣는 배의 바닥짐처럼 누구나 항시 어느 정도의 고통은 필요하다고까지 이야기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세상은 바야흐로 봄철. 우리 집 정원 여러 곳에 심어져 있는 접시꽃. 꽃 피우고 열매 맺고 난 후 싹둑 잘라냈건만 다시 그루터기로부터 새 순을 키워내고 있다. 몸통 잘려나갔다고 생을 포기하지 않고. 음지에서 파내어 햇볕이 잘 드는 곳으로 옮긴 접시꽃도 처음에는 잘 적응하지 못해 시들시들 고통스러워했으나 이내 이겨내고 잎을 키워나간다. 마지막 한 줄기 힘만 남아 있어도 이를 밑바탕으로 해서 다시 생존을 이어내고 있다. 시절 인연이 닿으면 바로 처연할 정도로 멋진 붉은 꽃을 피워내고야 말겠다는 각오와 함께. 힘든 겨울을 보내는 고통, 삶의 터전과 방식이 바뀌는 고통을 그저 담담히 받아들여 이겨내는 접시꽃들이 대견하다. 코로나 전염병이 난무하는 이 절망의 시대에 고통 속에서도 여전히 희망은 움트고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기라도 하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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