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시 일제강점기에 훼손된 중영 복원위해 발굴조사
중영의 일부 발견되면서 복원 탄력받을 것으로 기대
진주시 “중영과 부속건물 복원해 역사 교육의장 활용”

진주성 내 조사지역 전경.
진주성 내 조사지역 전경.

[한국농어촌방송/경남=강정태 기자] 진주시가 경남연구원에 의뢰해 진행한 진주성 중영(中營) 터 학술발굴조사에서 조선시대에 축조한 중영 건물의 일부가 확인됐다고 3일 밝혔다.

이번 발굴조사에서는 조선후기 진주성도에 표현된 벼랑 지형과 진무청(병영에 소속된 서리의 집무실)으로 파악되는 관아 건물 1동이 확인돼, 향후 진주성 중영과 부속 건물 복원을 뒷받침하는 실증적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학술발굴조사는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5월까지 진행됐다. 일제강점기에 훼손된 진주성 내 주요 건물인 중영의 복원을 목적으로 중영과 그 부속 건물의 위치와 구조를 밝히고자 실시됐다.

진주성 내 조사지역 전경.
진주성 내 조사지역 전경.

진주성은 임진왜란 3대 대첩 중의 하나인 진주대첩이 일어났던 곳으로 특히 2차 진주성 전투에서는 민관군 7만 명이 왜군과 싸우다 순절한 역사의 현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임진왜란 직후인 1603년에는 경상우병영이 진주성에 설치됨에 따라, 진주성은 경상우도(慶尙右道)의 병무 중심지이자 영남 서부의 중점 방어기지로서 높은 위상을 지닌 곳이다. 이에 진주성은 사적 제118호로 지정되어 지속적인 보존과 정비가 이루어지고 있다.

중영은 경상우병영의 참모장인 우후(虞候 병마절도사를 보좌하는 종3품의 무반 관직)의 근무 공간이며, 우후는 진주성에서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 종2품의 최고위 무반 관직) 다음으로 막중한 임무를 지닌 고위직 관리에 해당한다.

조규일 진주시장이 경남연구원 관계자로부터 발굴된 조선시대 관아 터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조규일 진주시장이 경남연구원 관계자로부터 발굴된 조선시대 관아 터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조선후기에 그려진 여러 진주성도에 의하면, 중영은 영남포정사문루와 공북문 사이에 망일헌(望日軒), 장청(將廳), 삼문(三門), 배리청(陪吏廳), 진무청(鎭撫廳) 등의 부속 건물과 함께 조성되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조규일 진주시장은 “이번 발굴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진주성 내 중영과 부속 건물을 복원하여, 일제강점기 이후 무분별하게 훼손된 진주성의 제 모습을 찾고 역사문화 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진주시는 중영 복원을 계기로 진주성 내 주요 건물의 복원을 순차적으로 추진하여, 역사문화 도시인 진주의 위상을 더욱 높이기 위해 사업추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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