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우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전 학부장
정용우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전 학부장

[한국농어촌방송/경남=정용우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객원교수(전 학부장)] 꽃은 때를 알아 여전히 피어난다. 피어나는 꽃들을 보고 있으면 참 기분이 좋아진다. 내가 정성들여 가꾼 꽃은 더욱 그렇다. 우리 집 정원에도 초봄부터 여러 가지 꽃들이 피어나는데 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여간 즐겁지 아니하다. 지금은 초봄에 비해 피어나는 꽃들의 가지 수는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많은 꽃들이 피어난다. 대략 세어 봐도 열 종류가 넘는다. 그 중에서 꽃나리라는 이름을 가진 놈이 있다. 활짝 피어난 꽃나리가 여기 저기 눈에 띈다. 마당 주변에서도 피어나고 화분에서도 피어난다. 땅에서 피어난 꽃나리도 아름답기는 하나 화분에 심어 내가 정성들여 키워낸 꽃나리가 더욱 마음에 아름답게 와 닿는다.

내가 화분에다 이 꽃나리를 심어 가꾸는 이유는 좋아하는 꽃나리를 오랫동안 보고 즐기기 위해서다. 화분은 이리저리 옮길 수 있으니 그 위치에 따라 개화하는 시기가 다르다. 햇빛 바른 양지에서 키운 꽃나리는 튼튼해서 응달에서 키운 꽃나리보다 먼저 꽃을 피운다. 이렇게 이들 꽃나리가 먼저 꽃을 피우고 나면 응달 화분에서 자라고 있던 꽃나리를 거실 앞 양지 바른 곳으로 옮겨 놓는다. 그러면 며칠 후에 이 놈들이 꽃을 피운다. 한꺼번에 피어나지 않고 제법 간격을 두고 피어나니 나로서는 그 만큼 꽃나리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연장되는 셈이다.

내가 꽃나리를 특별히 사랑하는 이유는 꽃 자체도 아름답지만 꽃이 피기 전의 꽃봉오리가 너무 아름답기 때문이다. 말없이 자신이 지니고 있는 속뜰을 활짝 열어 보이기 전의 꽃봉오리 상태... 어쩌면 나는 이 꽃봉오리 상태일 때의 아름다움을 더 즐기는지도 모르겠다. 겨울 막바지, 동백꽃 꽃봉오리도 아름답지만 요즘의 꽃나리 꽃봉오리는 더 좋다. 꽃나리는 일직선으로 커 오르면서 옆에 잎을 달아낸다. 그 작업이 어느 정도 완료가 되면 잎을 달아내면서 하던 성장은 멈추고 맨 꼭대기에 꽃봉오리를 달아낸다. 이 꽃봉오리는 처음에는 좁쌀만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약 5 센티미터 정도까지 커진다.

그냥 커나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초록에서 연한 분홍으로, 다시 짙은 분홍으로 꽃봉오리 색깔도 바뀌어나간다. 색깔이 짙은 분홍으로 물들면 이제 바로 꽃이 피어날 것 같다. 하지만 좀 더 시간을 기다린다. 온축(蘊蓄)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시간을 보내며 꽃을 활짝 피우기 전에 자신을 완전하게 익히기 위해 온갖 힘을 모으는 것이다. 꽃봉오리를 보고 있노라면 나도 그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온축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꽃봉오리... 그 안에 활짝 핀 꽃잎의 모양이 온전히 깃들어 있을 것이고 차근차근 힘을 모아 내면의 충실을 기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아름다움을 살피는 눈, 아름다움의 가치를 알아보는 눈, 심미안이다. 심미안을 가진 사람은 존재하는 것에서 존재하지 않는 것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자연히 이 순간이 풍요로워지고 그래서 행복감을 느낀다. 꽃들도 이런 사람들에게만 특별히 속말을 건넨다. 그래서 특별히 귀하고 아름답다. 완벽하게 자신을 완성한 다음에야 비로소 제 몸을 여는 꽃봉오리... 아름다운 가치를 만들어가는 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쁨과 희망이 솟는 이유다.

그래서 옛날 현인들은 ‘꽃봉오리를 보고 닮아라.’ 한지 모르겠다. 꽃봉오리를 보면서 함장축언(含章蓄言)... ‘안으로 머금어 가만히 쌓아두라.’는 권유의 뜻이 담겨있다. 자연 속에서 책을 읽고 사색을 거듭하다 보면 내면에 고요히 쌓이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곧 깨달음일진대 이를 잘 간직해 두라는 의미일 것이다. 식견이 얕고 공부가 부족한 사람이 겨우 몇 구절의 새로운 뜻을 알았다고 해서 괜스레 떠들지 말라는 뜻이기도 할 것이며 또한 말을 하고 싶어서 견디지 못할지라도 충분히 익은 상태에서 말하라는 뜻일 게다. 아니 말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하지 않을 수 없어서, 즉 부득이 해서 말해야 할 때까지 익어 기다리는 것 그것이 아름답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그리고 이렇게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람은 자신에게서부터 사유를 시작하는 법... 꽃봉오리와 벗하여 살아가면서 그들이 나에게 던져주는 메시지를 나는 과연 잘 읽어내고 있는가. 뭔가 조금 더 빨리, 조금 더 많이 알고 있다 싶으면 그저 말하고 싶어 안달이 날 지경이니... 꽃봉오리를 통해 말하기 전에 좀 더 익기 위해, 좀 더 완벽한 상태에 이르기 위해 기다리고 기다리는 침묵의 시간이 필요함을 느끼고 이해하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나... 꽃나리 꽃봉오리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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