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BS역사칼럼-길 위의 역사] (2부 무오사화) - 96회 사간 이의무, 헌납 김일손 등이 상소하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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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S역사칼럼-길 위의 역사] (2부 무오사화) - 96회 사간 이의무, 헌납 김일손 등이 상소하다(9)
  • 김세곤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6.22 08: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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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간 이의무, 헌납 김일손 등의 상소는 계속된다.

“9. 옥사와 송사(獄訟)를 신중히 하여야 하겠습니다. 전하께서 재변을 만나면 관리가 게을러져서 옥사의 정체(停滯)를 염려하시는데, 신들의 생각으로는, 관리가 판결하는 데에 게으름도 없지는 않으나 그 과실은 자주 사면(赦免)하는 데에 있다고 여깁니다.

왜냐하면, 지난해 선왕(성종)께서 마지막으로 명하신 사면에는 강상(綱常)의 큰 죄를 범한 자도 모두 용서해 주지 않은 것이 없는데 그것이 사방에 반포된 것은 금년 연초이었습니다.

전하께서 즉위하시게 되어 사면하고, 고명(誥命 황제가 내리는 명령)을 받들고서 사면하고, 가뭄을 만나서 사하고, 이제 뇌성의 변고를 만나서 또 경범자를 놓아 주어 1년에 5번 사면하였으니 너무 많았습니다. 원하옵건대, 이제부터는 자주 사면하는 일이 없도록 하소서.

10. 부세를 관대하게 하소서(寬征斂). 국가의 부세는 원래 포목의 세금(布縷之稅)을 관대하게 하고 또 전지(田地)의 부세도 감해서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온갖 공물(供物)을 세금 외에 부과하는 것이 명색이 한 가지에 그치지 않으며 공안(貢案 공물을 규정한 문서)에 정한 것이 흔히 그 지방 생산이 아니므로 반드시 포목과 쌀을 날라다 생산지에 가서 사서 바쳐야 합니다. 이 틈을 타 간악한 자가 이익을 노리고, 호조에서는 또 재정 부족을 염려하여 내년의 공물을 앞당겨 금년에 징수하여 백성을 한없이 부리고, 폭리(暴吏) 또한 포학하니, 백성이 내는 부세가 정세(正稅)의 10배나 됩니다.

그런데 농사의 풍흉에 따라 해마다 매기는 전세(田稅)의 9등급을 매길 때에 수령이 한 등급을 더하여 관찰사에게 올리고, 관찰사도 한 등급을 더하여 조정에 올리고, 호조에서 또한 한 등급을 더하니, 정세(正稅) 또한 가중해지고 백성은 곤궁을 이겨내지 못합니다.

원컨대 호조에 명하여 이미 납부한 현재의 수량을 계산하여 내년의 공물(貢物)을 면제하게 해서 조금이라도 백성의 고생을 덜해 주는 것이 좋겠습니다. 선왕께서 일찍이 공안(貢案)을 다시 정하려다가 실시하지 못하였는데, 이제 좀 한가한 해를 기다려서 별도로 조정 관리를 보내어 순행하며 토산물을 조사하여 공안을 다시 정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모든 수요는 호조에만 책임 지우고 승정원으로 하여금 따로 전지를 내리지 않게 하시면 다행이겠습니다.”

이렇게 사간원 사간 이의무와 헌납 김일손 등은 10가지 대책을 아뢰면서 구언(求言)을 실행할 것을 건의한다. 구언은 열린 언로를 실천하는 일이다.

이제 상소는 마무리 단계이다.

“재변이란 이유 없이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전하께서 즉위하신 지 아직 1년을 넘지 못하였는데, 일식이 있고 산이 무너지고 별이 흐르고 지진이 있으며, 여름에 가물고 가을엔 장마졌으며, 나뭇잎이 단풍들어 떨어질 때에 꽃이 피며, 폐색(閉塞)하는 데에 뇌성 번개가 소리를 내니, 하늘의 운행이 그릇되고 땅의 도가 어긋나며, 절후가 괴이합니다. 절후가 괴이해짐은 정사를 잘못하는 데에 달렸으며, 화(和)를 가져오는 근본은 마음을 바르게 하여 집을 바르게 하고, 집을 바르게 하여 조정을 바르게 하는 데에 달렸습니다.

마음을 바로 하는 요결은 경연(經筵)에 있사오니, 조용히 강구하여 옛날 성현의 마음을 전하의 마음으로 삼으소서. (중략)

무릇 선왕을 섬기고 모후를 받드는 일은 한결같이 정도(正道)로 하고, 소상에 복을 비는 일을 없앤다면 전하의 충효 일맥(忠孝一脈)의 교화가 몸에서부터 가정으로, 가정에서 조정으로, 이어서 사방에 달할 것이며, 천지의 바른 기운이 응하여 재변도 없어질 것입니다.“

이에 연산군은 전교하기를,

"재(齋)를 지내는 일은 내 뜻을 이미 다 말하였거니와 윤허하지 않는다. 기타 소(疏) 중의 일은 힘써 쫓겠다." (연산군일기 1495년 11월 18일)

1495년 11월8일 경연에서 연산군은 성종을 위하여 수륙재(水陸齋)를 지내는 문제는“나도 무익하다고 생각하니, 지내지 않는 것이 가하다.”고 하였다.(연산군일기 1495년 11월 8일 1번째 기사)

그런데 이 날 연산군은 번복하여 수륙재를 파(破)하지 말도록 전교했다. (연산군일기 1495년 11월 8일 3번째 기사)

"오늘 경연에서 대간이 재(齋) 지내는 것을 파하자고 청하며, 내가 무익하다고 생각하여 파함이 가하다고 하였는데, 다시 생각하니 이는 조종조에서 해 온 것으로 폐지함이 불가하므로 파기하지 말라.“

1495년 11월 8일에 수륙재 지내는 것을 하루 만에 번복한 것이다. 이후 수륙재 문제는 논란이 계속되었다.

순천 옥천사 사당 (김굉필을 모신 사당) (사진=김세곤)
순천 옥천사 사당 (김굉필을 모신 사당) (사진=김세곤)
한훤당 김굉필 신위 (사진=김세곤)
한훤당 김굉필 신위 (사진=김세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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