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BS역사칼럼-길 위의 역사] (2부 무오사화) - 97회 신하들이 수륙재 폐지를 간하였으나, 연산군은 거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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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S역사칼럼-길 위의 역사] (2부 무오사화) - 97회 신하들이 수륙재 폐지를 간하였으나, 연산군은 거부 하다.
  • 김세곤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6.29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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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5년 11월8일에 연산군은 경연에서 수륙재(水陸齋)를 지내지 않는 것이 가하다.”고 하였다가, 이날 즉시 번복하여 수륙재를 파(破)하지 말도록 전교했다. (연산군일기 1495년 11월 8일 1번째, 3번째 기사)

이후 수륙재 문제는 논란이 지속되었다. 조선은 억불숭유의 국가였다. 불교의 재는 당연히 금기 사항이었다.

11월10일에 사간원 정언 이주 등이 경연에서 수륙재 폐지를 청하였다.

이주 : 전하께서 신하들을 대하면 파하라고 명하시고 대내(大內 궐내)로 들어가시면 곧 그 명을 거두시니, 신은 참으로 실망입니다.

연산군 : 이 일이 나에게서 시작된 것이 아니요, 성종께서도 폐지하지 않으셨다. 내가 다시 생각하니 하루아침에 폐지할 수 없는 것이다.

유순 : 선왕을 위하여 재 지내는 것이라면 더욱 불가하오니, 빨리 파하소서.

연산군 : 성종께서 재 지내는 것을 파하라는 유교(遺敎)가 없으셨으니, 어찌 그만둘 수 있겠는가.

손주 : 성종께서 불교를 좋아하지 않으셨는데, 어찌 예 아닌 것으로 선왕을 욕보이겠습니까. 신은 전하께서 잘못하는 일이 있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사오니 속히 결단하소서.

권민수 : 전하께서 재 지내는 일을 여러 선왕조가 있어 온 일로 미루시는데, 이는 실로 핑계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연산군은 대답하지 않았다.

11월12일에 경연에서 헌납 김일손이 아뢰었다.

김일손 : 어제 수륙재 지내는 것이 불가한 일임을 아뢰었는데, 하교하시기를 양 대비께 아뢰어 보겠다 하셨습니다. 성종께서도 도승(度僧)하는 법을 파하려 하였는데 양 대비께서 말리시매, 성종께서 대신들에게 의논하니 억지로라도 자전(慈殿)의 뜻을 좇아야 한다고 하는 이도 있었으나, 성종께서 좇지 않고 끝내 파하셨습니다.

전하께서는 수륙재를 파할 것을 명하시고 나서 곧 파하지 말라고 명하시니, 이는 성종의 뜻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나라에 신의를 잃을까 염려됩니다.

영사 어세겸 : 이미 파할 것을 명하시니 대소 신료(臣僚)들이 기뻐하였는데, 곧 파하지 말라고 명하시니 중외에서 모두 실망합니다. 일에는 경중이 있는데 모후(母后)의 뜻을 상할까 염려하여 재를 지내신다면, 그것은 선왕의 뜻을 어기는 것입니다. 모후의 뜻을 어긴다 하여 불효가 되는 것이 아니요, 선왕의 뜻을 계승하는 것이 대효(大孝)가 되는 것입니다. 그 경중을 헤아려 결단하소서.

하지만 연산군은 듣지 않았다.

창덕궁 선정전 주변  (사진=김세곤)
창덕궁 선정전 주변 (사진=김세곤)

11월15일에 사간 이의무 등이 수륙재의 일을 아뢰었다.

“11일 하교에 ‘내가 대비께 계품하더라도 청하는 대로 안될 것 같으나, 계품은 하겠다.’고 하셨고, 12일 경연에서의 하교에 ‘모후의 뜻을 상할까 염려된다.’고 하시고, 또, ‘장차 극간(極諫)하겠다.’고 하교하셨습니다. 상교가 이러하기 때문에 신들은 이것이 자전(慈殿)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전의 뜻이 아니라면 전하께서 어찌 이와같이 하교하셨겠습니까. ... 전하께서 전번의 하교에서 ‘자전의 뜻.’이라고 하시고 이번엔 ‘내 뜻이라.’ 하셨으니, 이는 전하께서 신들의 말을 막으려고 이렇게 하교하셨을 것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임금으로서의 실수가 이보다 더 큰 일은 없으며, 재를 지내는 것은 오히려 작은 일입니다. 전하께서는 아예 이런 마음을 가지지 마소서.”

하지만 연산군은 막무가내였다.

11월17일에 사간 이의무 등이 수륙재 금지를 또 상차(上箚)하였다.

“전하께서는 수륙재 지내는 것을 어찌 예라고 하십니까? 전하께서는 선왕의 영혼이 내려와서 이것을 흠향하시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지금 선왕의 영혼이 위에서 임하시고 곁에서 증험하시는데, 신들이 감히 선왕을 저버리고 억지로 전하를 좇겠습니까? 엎드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소상(小祥)에 재 지내는 일을 파하소서”

11월19일에는 대간이 합사(合司)하여 수륙재 폐지를 간하였다.

"선왕(성종)께서 축수재(祝壽齋)을 혁파하셨는데, 어찌 효도가 부족해서 그런 것이었겠습니까. 재 지내는 것이 효도하는 길이 되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전하께서는 어찌하여 선왕을 본받지 않으십니까. 또 세종께서 축수재를 지내려 하다가 허주의 청에 따라 파하셨으니, 선왕께서 무익한 일은 하지 않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연산군은 거부했다.

11월22일에 사간원이 수륙재 폐지를 상차(上箚)하였다.

"선왕(성종)께서는 ‘내가 불도를 좋아하지 않음은 그대들이 다 안다.’고 하시고, ‘이단 잡교를 개혁하는 것이 나의 본심이다.’라고까지 하신 것을 늘 기억하고 있습니다. 전하께서는 내전의 뜻을 따르는 것을 기쁨으로 삼지 마시고 선왕의 도를 따라 재 지내는 일을 빨리 파해서, 큰 효도를 온전히 하소서.“

하지만 연산군은 들어 주지 않았다.

11월 23일에도 헌납 김일손·정언 한훈과 이주가 수륙재 금지를 청하였다.

“지금의 재 지내는 일은 대간·시종(侍從)이 아뢸 뿐만 아니라, 조정에서 모두 그르다고 말하는데, 전하께서 이미 정지를 명하였다가 다시 시행하시니, 이것이 어찌 하늘에 실지로 보답하는 것이겠습니까?”

하지만 연산군은 귀를 닫았다.

창덕궁 지도 (사진=김세곤)
창덕궁 지도 (사진=김세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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