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8년 7월16일에 대사헌 강귀손이 성종실록의 사초 사건을 결말지을 것을 건의했다. (연산군일기 1498년 7월 16일 3번째 기사)

대사헌 강귀손이 아뢰었다.

"궐정(闕庭 대궐의 정원)이 옥(獄)이 되고 형장(刑杖)의 독성이 드날리며 죄인이 넘어지니, 도성 안이 소요하여 보고 듣는 사람이 매우 놀랍니다. 지금 죄의 괴수(김일손을 말함)가 이미 자백하였으니, 그 나머지 연루자의 국문은 청컨대 유사(有司 관련 부서)에게 맡기옵소서.“

그런데 승지 홍식이 연산군의 분부가 있다 해서 난색을 표했다.

강귀손이 성내어 아뢰었다.

"홍식이 스스로 보전할 계책만 하여 임금의 분부만 복종하고 간관(諫官)이 일을 논한 것은 폐각(廢閣)하고 올리지 아니하니, 옹폐(壅蔽 : 귀를 막고 눈을 가림) 염려가 장차 이로부터 비롯될 것입니다. 그 사람됨과 심술이 이러하니 국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강귀손은 승지 홍식을 국문하겠다고 아뢰었다. 요즘 같으면 검찰총장이 청와대 비서관을 문책하라고 대통령에게 건의한 것이다. 하지만 연산군은 승지 홍식을 옹호하고 대사헌 강귀손의 말을 듣지 않았다.

7월17일에 연산군은 전라도 도사(都事) 정종보에게 "도내에서 간행한 김종직의 문집 판본(板本)을 즉시 훼판(毁板)하여 불태우라."고 명령 하였다. 판본을 조각내어 불태우라는 지시는 다시는 책을 발간할 수 없게 하려는 조치였다.

이윽고 연산군은 예조에 전교하였다.

"중외의 사람 중 혹 김종직의 문집을 수장한 일이 있으면 즉시 수납(輸納)하게 하고, 수납하지 않는 자는 중히 죄를 묻도록 하라."(연산군일기 1498년 7월 17일 1번째 기사)

이어서 연산군은 여러 신하들이 모인 앞에서 김종직이 지은 「조의제문」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즉 조의제문 전체를 읽고 직접 풀이한 것이다. (연산군일기 1498년 7월 17일 2번째 기사)

먼저 연산군은 김종직에 대하여 평가한다.

“김종직은 초야의 미천한 선비로 세조 시절에 과거에 합격했고, 성종 때에 이르러서는 발탁하여 경연(經筵)에 두어 오래도록 시종(侍從)의 자리에 있었고, 끝에는 형조판서까지 이르러 은총이 온 조정에 가득하였다. 그가 병들어 은퇴하자 성종께서 소재지의 수령으로 하여금 특별히 미곡을 하사하여 말년을 잘 마치게 하였다. 그런데 지금 그의 제자 김일손은 자신이 찬수한 사초(史草)에 부도(不道)한 말로 선왕조(세조를 말함)의 일을 터무니없이 기록하고 또 그의 스승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실었다. ”

사림의 종장(宗匠) 김종직(1431∼1492)은 성종 때에 중용되었고 그의 제자인 김일손, 조위 등도 조정에 나갔다. 1489년 3월에 김종직은 형조판서가 되었는데 가을에 병으로 사직하고 고향 밀양으로 내려갔다. 1491년에는 병이 위독하자 성종은 약을 하사하였고, 노비와 전답도 내려 주었다. 김종직은 1492년에 별세했다.

이어서 연산군은 「조의제문」을 한 줄 한 줄 읽는다.

“정축 10월 어느 날에 나는 밀성(密城)으로부터 경산(京山)으로 향하여 답계역(踏溪驛)에서 자는데, 꿈에 신(神)이 칠장(七章)의 의복을 입고 헌칠한 모양으로 와서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초(楚)나라 회왕(懷王)의 손자 심(心)인데, 서초 패왕(西楚霸王 항우를 말함 )에게 살해되어 빈강(郴江)에 잠겼다.」 하고 문득 보이지 아니하였다. ”

「조의제문」 첫 부분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정축 10월 어느 날’이다. 김종직은 정축 10월(1457년 10월) 어느 날에 밀성(密城 밀양의 옛 지명)으로부터 경산(京山)으로 향하여 답계역(踏溪驛)에서 자면서 꿈을 꾸었다.

김종직은 1431년 6월에 밀양에서 부친 김숙자(1389∼1456)와 모친 박씨 사이에서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밀양은 모친의 고향인데, 선산에 살던 부친 김숙자는 처가의 재산을 상속받아 밀양으로 옮겨 살았다. 그런데 1456년 3월에 아버지 김숙자가 밀양에서 별세하였다. 따라서 1457년 10월은 김종직이 시묘살이 중인 때이다.

추원재 전경 (경남 밀양시 김종직 생가) (사진=김세곤)
추원재 전경 (경남 밀양시 김종직 생가) (사진=김세곤)
추원재 (사진=김세곤)
추원재 (사진=김세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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