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우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객원교수(전 학부장)
정용우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객원교수(전 학부장)

[한국농어촌방송/경남=정용우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객원교수(전 학부장)] 세상사 모든 것이 호불호(好不好)의 대상인지라 내가 좋아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 역시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싫어한다 해서 다른 사람 역시 싫어하는 것도 아니다. 하여 각자 다양한 삶의 모습을 존중해 주는 거다. 그런데 그 개개인의 호불호도 세월이 흐름에 따라 변하기도 한다. 나의 경우도 마찬가지. 나는 예전 한때 잔디밭을 싫어한 적이 있었다. 제국주의 이미지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제국주의의 가장 큰 특성은 폭력과 획일적 지배인데 잔디밭은 이 두 가지를 모두 갖추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한때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던 영국은 새로 개척하는 식민지마다 총독부 건물을 지으면서 주위를 잔디로 장식했다.

식민지 주민들로서는 생전 처음 보는 조경양식이었던 셈인데, 권위적인 건축물과 함께 잔디조경은 질서와 위엄을 나타내는 상징이 되었다. 또 잔디밭을 조성하고 가꾸어 나가기 위해서는 원래 그 자리에 있던 다양한 생물종들을 모조리 제거해야 하는 데, 그 과정 자체가 엄청난 폭력(lawn은 로마어 laund에서 유래한 말로, ‘열린 공간, 나무를 없애다’라는 뜻)일 뿐더러 잔디를 깐 후에도 다른 풀이나 꽃이 자리 잡지 못하게 지속적으로 뽑아내고 약을 쳐야만 하니 잔디 외의 풀과 나무의 입장에서 보면 엄청난 폭력인 것은 사실이다.

국민들의 의식수준이 급격히 향상된 요즘에 있어서는 위에서 이야기한 이런 부정적인 견해들은 거의 발붙일 곳이 없어졌다. 게다가 내가 우리 집 마당을 잔디밭으로 바꾼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20년 전, 내가 병이 들어 이곳 시골로 내려왔을 때 어머니께서도 병-뇌졸중과 약한 치매–중이었는데, 어머니에게 안식과 즐거움을 안겨드리고자 하는 의도가 강하게 작용했던 것 같다. 당초 생각은 맞아떨어져 어머니께서 참 잘 활용하시었다. 잔디밭에서 혼자 걷기 연습도 하시고, 동네 아주머니들과 잔디밭에서 놀면서 대화도 나누시곤 했다. 잔디밭에서 울기도 많이 하셨지만….

또 다른 의도는 나의 ‘희망 건지기’였다고 할 수 있겠다. 그 당시 병을 가득 안고 시골로 온 나는 참 암울했다. 미래라는 것에 대해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잘 깎아놓은 잔디를 보면 금방 이발을 해 놓은 남자 아이의 잘 생긴 머리통을 보는 것처럼, 방금 면도를 마친 남자의 말끔한 턱선을 보는 것처럼 기분이 신선해질 것 같았다. 하여 ‘희망 건지기’를 한 번 시도해 보자는 뜻에서 착수한 것이 잔디밭을 조성하는 일이었다.

이렇게 잔디밭을 만들어 가던 중, 당시 조경관련 사업을 하는 어느 분이 잔디밭 둘레에 화단을 만들어 놓으면 그 주변 꽃들이 훨씬 돋보인다는 전문가적 조언을 해 주었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을 피워놓아도 바탕이 좋지 않으면 영 멋이 안 나지만 잘 가꾸어진 잔디밭을 배경으로 화단에 꽃이 피어나면 그 아름다움이 더 빛을 낸다고 했다. 나는 그 분의 제안을 받아들여 잔디밭 둘레에는 화단을 조성했다. 그리고 그 화단에 꽃나무나 꽃 뿌리를 심고 꽃씨를 여럿 사다 뿌렸다. 나의 정원 구상은 이렇게 완성되었다.

그 후 나의 ‘희망 건지기’도 ‘어느 정도’ 실현된 셈이다. 다시 서울서 직장(서울디지털대학교)생활이 가능해졌고, 그 직장을 끝으로 은퇴하여 다시 이곳 시골로 내려왔으니 말이다. 그때 조성해 놓은 잔디밭이 지금도 그대로이다. 물론 잔디밭 둘레에 만들어 놓은 화단에서 각종 꽃이 피고 지는 것도 그대로다. 그런데 잔디밭을 활용하는 사람은 바뀌었다. 이제 어머니는 이 세상을 떠나셨고 새로 태어난 생명, 즉 손주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하삐(내 손주들은 아직 어려서 할아버지를 이렇게 부른다), 잔디밭에서 뛰놀기 좋아요.” 할 때는 그 관리의 수고로움을 잊어버린다. 올해 다섯 살인 외손녀는 봄에 꽃씨도 갖다 주었다. 봉선화, 백일홍…. 그 꽃씨를 화단과 화분에 뿌렸더니 예쁜 꽃들이 많이 피어났다. 손주 사랑에 화분을 거실 바로 앞에 갖다 놓고 손주를 대하듯이 바라본다. 그러니 자세히 본다. 자세히 보니 그들이 전해주는 이야기도 알아챌 수 있다. 우리 사람도 이 꽃들처럼 살아 보라는 메시지.

이제 봉선화 꽃은 대부분 지고 백일홍 꽃만 남았다. 이름대로 백일 동안 피어 있는 꽃이라서 그런지 참 오래 간다. 이미 피어난 꽃도 오래 가지만, 꽃이 피고 나면 또 새 줄기를 키워낸다. 새로 난 줄기는 먼저 것보다 키를 더 키운다. 그리고는 꽃을 피운다. 먼저 핀 꽃보다 더 키를 키워 내어 새 꽃을 피우는 백일홍. 우리 사람들과 다르다. 우리는 후배를, 다음세대를 더 키워 꽃 피게 해주지는 못할망정 내 몫 챙기기에 여념이 없거나 오히려 다음세대를 깔아뭉갠다. 요새 부동산 가격 급등에 주거 불안을 느껴 결혼도 미루는 현실을 목격하면서 꽃씨 갖다 준 내 손주가 결혼할 무렵에는 이런 모습이 사라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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