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문화는 한·중·일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먼저 시작

기마인물상의 동복(銅鍑)
기마인물상의 동복(銅鍑)

역사적으로 가야 김수로왕의 도래로부터 차문화 시작
차 발생지 인도 아유타 출신 허황후가 남방계 차 종자 가져와
김해 동상, 대성동 등지에 차밭 조성

가야시대 차를 우려먹는 동으로 만든 솥인 동복(銅鍑)이
차가 북방계인 알타이계 유목민족의 고유한 문화임을 입증

서기 828년 통일신라 김대렴 공이 당에서 복방계 차 종자 가져와
하동에 심어 왕가 뿐 아니라 귀족들까지 차문화 전파 대중화

 

[한국농어촌방송/경남=김민석 박사] 우리나라의 차문화가 마치 중국과 일본에서 온 것인 양 이야기하는 분들이 많은데 이것은 정말 심각한 사대주의고 식민사관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우선 한·중·일 3국의 차문화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1. 한·중·일 3국의 차문화

1) 중국

먼저 중국의 경우이다. 중국 역사상 차는 당나라, 원나라, 청나라 등이 즐겨 마시고 문화를 발전시겼는데 이 세 나라의 공통점은 지배세력들이 모두 북방유목민족으로 문화 인류학적으로 중국 한족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그리고 당, 원, 청의 지배세력들은 유목민족의 특성상 중국 한족보다 육식을 많이하는 식습관 때문에 몸에 지방축적이 많아지므로 결국 지방축적을 줄이기 위해 차를 음용하였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 추론이다

중국은 자신의 역사에서 위 세 나라를 빼고는 이야기가 되지 않기 때문에 당, 원, 청의 지배세력들을 중국 한족의 역사에 넣고 이야기하지만 문화인류학적으로 농업를 중심으로 하는 남방계 한족보다는 목축을 중심으로 하는 북방계 유목민족이며 오히려 중국보다는 우리나라와 생활방식이 대단히 흡사하다. 정리하자면 중국의 차문화는 북방계인 유목민족의 중국지배 후에 대중화되었다.

2) 일본

다음은 일본의 경우이다. 일본을 대표하는 말차도 임진왜란 이후에 풍신수길의 차선생 센리큐에 의해 발전하고 그의 후손들이 체계화시겼지만 내용을 좀더 들어가보면 고려시대 우리나라 스님들이 선차를 일본에 전파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 예로 일본 다도의 상징이며 일본 국보인 이도다완도 조선의 막사발에 불과하며, 결국 일본의 말차문화도 조선 도공 3000명 이상을 피랍하여 차를 마시는 다완을 발전시킴으로 오늘의 명성을 이루었다.

3) 한국

한국의 차문화는 우랄알타이산맥을 중심으로 북방 유목민족으로 유라시아를 호령하던 시점으로부터 만리장성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만주와 한반도를 중심으로 고착화되는 시기를 제외하고라도 역사적으로 20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먼저 역사적으로 가야 김수로왕의 도래로부터 차문화는 시작되었고 서기 48년 허황후가 인도로부터 남방계 차 종자를 가져와 김해 동상, 대성동 등지에 차밭을 만들었고, 서기 828년 통일신라시대에 당에서 김대렴공이 복방계 차 종자를 가져와 하동에 심어 왕가가 아닌 귀족들까지 차문화가 전파되었다. 그리고 고려시대에 절정을 이루며 자생적으로 차문화가 대중화되어 잘 발달하였으나, 조선시대 숭유억불의 영향으로 차문화가 선차문화로 축소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조선말기 정약용 등 실학자들에 의해 부활하는 듯하였으나 이후에 일제치하를 겪으면서 차문화의 암흑기를 맞이하였다.

그러나 차문화는 북방유목민족의 독특한 생활습관이며, 차문화의 시작이나 차문화의 대중화나 어느 것을 보더라도 역사적으로 우리나라가 한·중·일 가운데 가장 먼저 시작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김수로왕의 왕후인 허황옥이 차의 발생지인 인도의 아유타 출신이라는 것과 맥을 같이하며, 가야와 신라의 유물인 기마인물상의 동복(銅鍑cauldron -차를 우려먹는 동으로 만든 솥)이 증명하고 있다. 이러한 기마인물상의 동복은 한국뿐만 아니라 중앙아시아의 여러 유목민과 유럽의 훈족을 포함한 알타이계의 유물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차가 중국의 문화가 아니라 알타이계 유목민족의 고유한 문화임을 입증한다.

허황후와 김수로왕
허황후와 김수로왕

2. 우리나라 전통적 5대 음다법

이렇듯 한·중·일 가운데 자생적으로 가장 먼저 시작된 한국의 차문화는 시대에 따라 5개의 음다법을 가지고 있다. 우선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에는 진다법, 자다법 등이 주류를 이루었으며, 고려시대는 말차 중심의 점다법이, 차의 암흑기인 조선시대에는 후기에 와서야 비로서 다산과 그의 제자 초의, 추사 등에 의해 포다법 중심의 음다법이 유행하였다.

1) 고다법 (烤茶法)

고다는 차를 불에 말린다는 뜻이다. 고다법은 음다법이라고 보기보다는 제다법으로 보는 것이 더 옳은 이야기이나 고다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차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음다의 시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고다는 가야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널리 응용되고 있으며, 고다과정을 거쳐야 음용하기 좋은 색과 향미를 낼 수 있다. 또한 찻잎의 물기를 제거하거나, 차에 스며있는 습기를 제거하기 위해 널리 사용되는 방법이다. 특히 강진의 정차나 청태전, 하동의 약차인 잭살 등과 같이 습기를 없애기 위해 덩어리 차를 화로로 굽거나 돌솥 등에 볶은 후에 차를 우려마시는 것이 고다법의 핵심이다.

이러한 고다법은 찻잎을 마시는 차가 되게 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핵심기술이다. 중국 당나라 시대의 육우의 다경에도 차 마시기 전의 준비과정으로 차를 굽는 자(炙) 맷돌에 가는 연(碾) 가는 그물에 걸러내는 라(羅)의 세 단계를 설명하고 있다. 고다라고 하는 것은 말린 찻잎을 차로 만들기 위해 굽는 자(炙)의 과정이며, 지금까지 이 방식은 살청, 홍배라는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유행한 병차는 습기가 많아 차를 끓여 먹기 전에 반드시 차를 굽는 고다 과정을 거쳐 차의 습기를 제거하고 차를 맷돌로 가는 연마과정을 거쳐 촘촘한 거물에 걸러내어 연고차로 하여 마셨다.

2) 전다법 (煎茶法)

전다는 차를 다탕에서 오랫동안 다리는 다법이다. 전다법은 우리의 선조들인 알타이민족들의 다법으로 차솥이나 주전자에 찻잎을 수시간에서 수일간 차를 끓여서 그 액기스를 마시는 방법이다. 이러한 전다법은 단순히 차를 우리는 방법으로 뿐만 아니라 추운 초원의 밤을 이겨내기 위해 찻물을 끓여 수증기를 만들고 만들어진 수증기를 통해 게르 안의 온도와 습기를 유지하고 오랫동안 달임으로 인해 감미로운 찻잎의 방향물질이 만들어져 실내의 향기를 좋게 하고 궁극적으로 만들어진 아로마가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히 하여 힘겨운 초원생활을 이겨나가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러한 전다법이 당을 통해 한족에 전해져 중국의 차문화가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야를 비롯한 고구려 백제 신라 등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에 주로 행해진 다법이며, 이러한 다법은 한국의 가장 오래되고 전통적 방식으로 지금도 민간요법이 되었고 이러한 전다법은 오랜시간의 열탕으로 인해 약차의 유용성분과 효능이 배가되므로 오늘날에도 한약을 달이는 방식으로 남아있다.

녹차밭.
녹차밭.

3) 자다법(煮茶法)

자다는 차를 삶는다는 뜻이며 팽다법(烹茶法)이라고도 한다. 수분 또는 수십분 비교적 짧은 시간에 차를 삶아내며, 차의 양의 감소가 거의 없다. 자다법이란 찻잎을 쪄서 고형덩어리인 병차(餠茶)로 만들어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마다 꺼내어 다마에 부드럽게 간 후 차솥에 차가루를 넣어 끓여 말발(沫浡)을 만들어 마시는 방법이다. 이전의 전다법과의 가장 큰 차이는 우리는 시간에 있다. 자다법은 수분 또는 수십분 비교적 짤은 시간에 행해진다. 자다법은 차가 가지고 있는 유용성분을 열탕과 비등하는 수포작용을 통해 용출시킴으로 오래동안 달아는 전다법과 같이 유용성분의 합성반응은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차를 짧은 시간에 쉽게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많은 차인들이 전다법에서 자다법으로 음다법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현재 티베트의 수유차, 몽고, 러시아, 신장위구르 등 밀크티나 쨔이 등이 이와 비숫한 방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이후 전다법은 초근목피를 이용하여 한약을 다리는 방법으로 발전하였고, 자다법은 식물을 조리하는 방법으로 발전되어 지금도 탕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그리고 온돌을 통해 난방이 해결된 이후 긴 시간 차를 우릴 필요가 없어져 버렸기 때문에 한국의 다법에서 차를 마시기에 너무 많은 시간이 필요한 전다법과 자다법은 서서히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4) 점다법(點茶法)

점다는 차를 다완에 넣고 물을 조금 추가하여 다선으로 격불하여 말 거품이 일어나게 하여 마시는 다법이다. 점다법(點茶法)이란 다마(茶磨)에 부드럽게 간 덩어리 고형차 가루를 차 솥에 넣지 않고 찻사발에 직접 넣어 연고(軟膏)와 같이 끈적하게 만든 후 적당한 양의 열수(熱水)를 부어 다선(茶筅)이란 다구를 사용하여 잘 휘저어 거품을 내어 마시는 방법인데 지금의 말차 음용법과 매우 유사하다.

자다법과 달리 점다법에서 만들어진 차는 거품의 유무로 그 판단 기준으로 정하게 된다. 이에 따라 거품을 내기 위해 처음에는 차시를 이용해 거품을 냈으나 후일 이것이 개선되어 ‘차선’ 이란 전문 다기가 등장했다. 또한 거품을 잘 내기 위해 차가루도 고급화되었고 이에 차의 품질도 자연히 아주 어린 차싹 중심으로 딴다. 그래서 찻잎 따는 시기도 더욱 빠르게, 채엽 지역도 기후가 따뜻한 지역으로 이동하게 된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말차는 고려시대 이후 숭유억불정책으로 암흑기를 맞이하게 되었고, 한국에서 차를 배운 일본은 따뜻한 지역을 중심으로 좋은 연차를 만들고 도자기 전쟁이라 불리는 임진왜란을 통해 한국의 도공 3000명 이상을 일본으로 납치하여 찻잔 제작을 산업화시켜 세계적으로 가장 오래된 센케이라는 독특한 말차문화를 만들어 가는 계기가 되었다.

5) 포다법(泡茶法)

포다는 차를 우려내는 방법이다. 한국에는 슬프게도 조선초기부터 차를 불교의 문화로 치부하여 사대부들이 차 보다는 술을 좋아하는 문화가 만들어졌다. 여기에는 고려가 원나라에게 받은 수모와 신돈과 같은 승려들에 대한 반동으로 차를 멀리하고 술을 가깝게 하는 충분한 계기가 된 것 같다. 이러한 한국차문화의 단절은 다산에 와서 족쇄가 풀리게 되었다. 다산은 술을 마시는 나라는 망하고 차를 마시는 나라는 흥한다고 하며, 실학의 정신으로 한국차의 부흥을 이끌었다. 그의 차제자인 초의와 추사도 이러한 차에 부흥에 동참하였으며, 이러한 차의 문화는 천주학의 다산, 불교의 초의, 유학의 추사 등 그 시대를 대표하는 석학들에 의해 조선의 차문화 부활을 알렸다.

포다법은 조선의 음다법으로 명과 청의 영향으로 유행하였으며 찻잎을 넣고 물을 부어 우려내는 다기인 다호(茶壺)가 반드시 필요하며, 포다법은 오늘날까지 차인들에게 크게 유행하고 있다. 그리고 포다법의 출현으로 잎차 시대가 열리자 제다법의 연구개발이 급속도로 발전되어 덖음차 형식인 녹차 제다법이 우리나라를 휩쓸게 되었다.

이러한 녹차제다법은 하동, 보성, 김해, 제주 등에 널리 보급되었고 지금까지 유행하고 있다. 또한 다양한 차맛을 원하는 다인의 기호에 따라 보성, 강진 등 호남은 일찍부터 발효차 개발에 착수하였으며, 오설록을 중심으로 제주에서는 병차형태의 긴압차가 만들어지고 있다. 특히 요즘에는 제다기술의 보급화와 때를 같이하여, 차인들을 중심으로 홍차(紅茶, Black tea), 황차(黃茶, Yellow tea), 흑차(黑茶, Dark tea). 백차(白茶, White tea) 등 다양한 차들이 만들어져 음다의 즐거움을 주고 있다.

김민석 박사

▶경영학 박사

▶오성다도명가연 대표

▶경남협동조합협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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