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하 정숙자칼럼/차를 통한 중년 극복기] 나의 가을은 익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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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하 정숙자칼럼/차를 통한 중년 극복기] 나의 가을은 익었다
  • 정숙자 문학박사
  • 승인 2020.10.27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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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했던 봄과 열정적인 여름은
이미 타인의 것이 되었지만
내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기에
나의 가을이 슬프지 않다
정숙자 문학박사
정숙자 문학박사

[한국농어촌방송/경남=정숙자 문학박사] 들판을 노랗게 물들였던 곡식들도 한순간 사라져 빈 공간으로 나에게 다가서고, 못난이 모과들도 연두 빛을 잃고 노란색으로 조금씩 익어가고 있다.

나의 가을 역시도 대추알이 붉게 물들어 땅을 향해 비 오듯 내리더니 내 가슴속에 알알이 박히고 있다. 가로수 잎들도 푸른빛을 버리고 붉은 빛을 빌려와서 가을 속으로 깊이 걸어들어 가고 있다.

휑하게 불던 바람도 아직 남아 있던-간혹 비추는-따뜻한 햇살에게 잠깐씩 자리를 비워주고 있어, 그래도 그 햇살 아래서 가을을 만나고 있으니 이 또한 내가 살아 있어 누리는 행복인 것 같다.

나의 봄과 여름의 세월도 어느덧 사라지고 치열하고 부지런히 산 세월의 결과물처럼 나도 익어서 이 가을에 와 닿았다. 부끄러움과 감동은 적어지고 그런 나를 되돌아보며, 그 화려했던 봄과 열정적인 여름의 청춘은 이미 타인의 것이 되었지만 나의 가을이 슬프지 않은 것은 나의 계절에 해당하는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을에 피는 꽃이 있듯이 나의 가을도 간혹 그 시간에 어울리는 꽃을 피울 것이다. 꽃을 피울 여력이 남아있지 않다면 제 한 몸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울 자세를 가질 것이라 확신한다. 살아서 이 자리에 오기까지 긴장감을 가지고 충만하게 살았다. 되돌려 어느 시점으로 다시 간다고 해도 이렇게 열심히 치열하게 살 자신이 없어 과거의 시간이 아닌 현재와 미래의 시간에 살고 싶다.

이런 마음으로 오늘의 가을을 맞이하며, 햇살을 가슴 가득 안고 억새풀 뒹굴고 있는 눈부신 작은 숲으로 차 한 잔 친구삼아 국화도 데리고 들어가고 싶다. 간혹 첫사랑의 추억을 국화향기에 숨기며 혼잣말처럼 익어가는 가을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가을도 자신의 이야기 보따리를 풀면서 겨울을 데리고 올 것이다. 가을은 내게 이야기할 것이다. 미리 오는 겨울을 서먹하게 대하지 말라고 말이다. 당황스러울 나를 위해 넉넉하고 배려심 많은 가을은 겨울을 소개시켜 주며 어울려 잘 지내라고 할 것이다.

가을의 꽃들이 하나씩 지워져 갈 때, 나무는 그동안 감추었던 속살을 우리에게 내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가을이 비워내고 걷어내듯이 나는 언제쯤 자유로운 몸짓을 가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직도 몇 번의 더 익은 가을을 보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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