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 시대를 읽다 (1) - 민씨 척족의 몰락과 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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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시대를 읽다 (1) - 민씨 척족의 몰락과 친일
  • 김세곤 칼럼니스트
  • 승인 2020.12.07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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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6월 23일에 청일전쟁이 시작되었다. 일본 해군은 아산만 부근 풍도 앞바다에서 청국 군함을 기습하여 격침시켰다.

이보다 이틀 전인 6월 21일 새벽에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했다. 22일에는 김홍집 친일 내각이 들어섰고 대원군이 다시 전면에 나섰다. 이러자 민영준 · 민형식 · 민응식 등 민씨 척족들은 도망치기에 바빴다.

동학농민군이 전주성을 점령하자 원세개에게 청군 파병을 요청했던 병조판서 민영준은 평안도로 도망갔다가, 평양전투에서 패주한 청군을 따라 청나라로 도피했다.

민응식은 삿갓을 쓰고 교군꾼처럼 꾸미고 숭례문을 나서자 사람들이 돌멩이를 던지며 비웃었다. 그는 1882년 임오군란 때 중전을 충주 장호원에 있는 자기 집에 피신시켜 벼락출세하여 이조판서 · 병조판서를 하였다.

6월 22일에 고종은 민영준, 민형식, 민응식 등에게 유배를 명했다.

"좌찬성 민영준은 오로지 취렴(聚斂)을 일삼아 자신을 살찌우는 것으로 원망을 샀고, 전(前) 삼도수군통제사 민형식은 탐욕스럽고 사나워 못하는 짓이 없어 그 여독이 이웃 경내까지 두루 미쳤으며, 전 총제사(總製使) 민응식은 군영을 창설하면서 고친 것이 많고 세금을 거두며 물의를 일으켰으니 절도(絶島)에 정배(定配)하라.” (고종실록 1894년 6월 22일)

민영준(1852∽1935)은 1887년 12월부터 1889년 11월까지 2년간 평안감사를 하면서 온갖 수탈을 하여 고종에게 금송아지를 바쳤다.

민형식(閔炯植 1859∽1931)은 1891년에 삼도수군통제사였는데, 빈부를 가리지 않고 백성들의 재산을빼앗았다. 처음에는 영남에 그쳤으나 스스로 삼도를 관할한다 하여 호남과 호서(충청도)에 까지 미쳤다. 무릇 바닷가 가운데 배 닿을만한 곳이 먼저 수탈을 당하였다. 그는 거부(巨富)에게는 5-6만 냥, 그 다음은 3-4만 냥, 또 그 다음은 1-2만 냥을 뜯어냈으며, 통영의 수군통제영 감옥에 한 번 들어가면 곧 파산하였다. 사람들은 민형식을 ‘미친 도둑놈’이라 불렀다. (황현 지음 · 임형택 외 옮김, 역주 매천야록 상 p 306-307)

1894년 12월 27일의 고종실록에 의하면 임형식이 약탈한 돈은 72만 1,277냥이었는데, 이는 1895년 당시 국가 세입 480만 냥의 15%였다.

“탁지부(度支部)에서 건양(建陽) 원년도(元年度) 총예산을 세입 480만 9,410원(元), 세출 631만 6,831원으로 결산했는데, 세입 부족액 150만 7,421원을 국채(國債)나 기타 방법으로 보충할 사안을 내각 토의를 거쳐서 상주(上奏)하였다.”(고종실록 1895년 11월 15일)

6월 25일에 고종은 민영준을 영광군 임자도, 민형식을 흥양현(고흥군) 녹도, 민응식은 강진현 고금도로 유배 보냈다. 그런데 이들은 이미 도망쳐 숨어버려 깨어 있는 백성들은 모두 분개하였다.

이후 1년 뒤인 1895년 7월 3일에 고종은 민영준, 민형식, 조병갑, 민응식 등 261명을 풀어주었다. 참으로 너그러운 임금이다. 고부군수 조병갑을 풀어주고 민영준과 민형식 같은 탐학한 관리들을 261명이나 사면하다니.

사면령이 내린 지 45일이 지난 8월 19일 밤에 경복궁에서 민왕후(1851~1895)는 궁내부 대신으로 내정된 민영준에 대한 축하연회를 열었다. 민영준이 내정 통보를 받고 청나라에서 급거 귀국한 것이다. (안승일 지음, 김홍집과 그 시대, 2016, p 248)

그런데 다음 날인 8월 20일 새벽 5시경에 을미사변이 일어났다. 경복궁에 잠입한 일본 낭인들이 민왕후를 살해한 것이다.

민영준은 1896년에야 궁내부 특진관에 임용되었고, 1901년에는 민영휘(閔泳徽)로 개명하여 장례원경(掌禮院卿)에 임용되었다. 민응식은 1897년 8월에 중추원 의관에 임용되었는데, 1903년에 별세하였다.

한편 육군부장 민형식은 1907년 1월에 찬모관(贊謀官)에 임용되었다.

이렇게 권세를 누린 민영휘와 민형식은 1910년에 대한제국이 망하자 친일파로 변신했다. 민영휘는 일본 정부로부터 자작 작위와 은사공채 5만 원을 받았고, 민형식도 남작 작위와 2만 5천 원의 은사공채를 받았다.

그런데 민씨척족 중 ‘친일반민족행위자’는 민영휘, 민형식 외에도 여러 명이다. 민병석과 아들 민홍기, 민영규, 민영기, 민영소와 아들 민충식, 민영찬, 민종묵과 아들 민철훈 등이고 민영휘의 아들 민규식은 작위를 물려 받았다.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 Ⅳ-5, 2009)

덕수궁 중화전 (사진=김세곤)
덕수궁 중화전 (사진=김세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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