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 시대를 읽다. (8) 을미사변 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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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시대를 읽다. (8) 을미사변 전모
  • 김세곤 칼럼니스트
  • 승인 2020.12.31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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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8월 20일(양력 10월 8일) 묘시(卯時 오전 5-7시)에 민왕후가 경복궁 곤녕합(坤寧閤)에서 붕서(崩逝)하였다. 그런데 시해 사실은 즉시 반포되지 못했다. 55일이 지난 10월 15일에야 반포되었다.

그렇다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일자별로 살펴본다.

# 8월 20일

오후 3시에 외국 공사들은 일본 공관으로 가서 미우라 공사의 설명을 들었다. 미우라는 훈련대 해산에 불만을 품은 조선 군인들이 대원군과 공모하여 궁궐에 난입한 것이고, 일본은 이 사건과 전혀 관련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미국 공사대리 알렌과 영국 총영사 힐리어 그리고 러시아 공사 베베르가 강한 의문을 제기하였다.

이 날 외부대신 김윤식은 영국 총영사 힐리어에게 훈련대의 궁정 돌입 사건에 대해 해명하는 문서를 보냈다.

“살피건대, 일전에 우리 훈련대 병졸과 순검(巡檢)들이 서로 다투어, 순검들이 죽고 다치는 일이 발생하면서 성안이 시끄러웠습니다. 이 때 훈련대를 혁파하고 병기를 빼앗아 회수할 것이라는 설이 있어서, 해당 훈련대로서는 의구심이 불어나면서 잘못된 소문이 퍼져 떠들썩해지자 한 곳에 모여서 흩어지지 않고 있었는데, 문득 오늘 이른 아침에 해당 병졸들이 원통한 사정〔을미사변〕을 달려가 호소하겠다며 궁궐문으로 쳐들어왔으니, 그 하는 짓을 예측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행히 우리 폐하께서 찬란한 위엄에 힘입어 대의로써 타이르시자 이내 무사히 진정되고 궁정도 다시 고요해졌습니다.

아울러 이미 해당 군부대신 안경수 및 경무사 이윤용을 파면하여 아랫사람을 제어하지 못하고 소요사태를 빚은 죄를 징계하였습니다.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8월 20일의 고종실록에는 아래와 같이 적혀 있다.

“이보다 앞서 훈련대(訓鍊隊) 병졸(兵卒)과 순검(巡檢)이 서로 충돌하여 양편에 다 사상자가 있었다. 19일 군부 대신 안경수가 훈련대를 해산하자는 의사를 밀지(密旨)로 일본 공사 미우라 고로에게 가서 알렸으며, 훈련대 2대대장 우범선도 같은 날 일본 공사를 가서 만나보고 알렸다.”

아울러 내부(內部)는 대궐 안에 분소한 사태가 진정되어 궁정이 조용해졌음을 고시(告示)하였다.

"병정(兵丁)과 순검(巡檢)이 싸운 일로 병기(兵器)를 도로 거두고 훈련대(訓鍊隊)를 해산하자는 의견이 제기되자 병정들의 마음을 격동시켜 결국 대궐 안에 분소(奔訴)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즉시 진정되어 궁정이 조용해졌으니 중앙과 지방의 백성은 각각 생업에 안착하는 것이 마땅하다."(고종실록 1895년 8월 20일)

한편 고종은 궁내부 대신 이경직, 군부 대신 안경수, 학부대신 이완용, 농상공부 대신 이범진, 경무사(警務使) 이윤용을 파면시키고, 이재면을 궁내부 대신, 조희연을 군부 대신, 농상공부 협판(차관) 정병하를 대신 서리, 의주부 관찰사 유길준을 내부 협판에, 권형진을 경무사에 임용하였다. (고종실록 1895년 8월20일, 8월22일)

친러파가 몰락하고 친일파가 다시 정권을 잡은 것이다.

# 8월 21일

일본 공사 미우라는 외부대신 김윤식에게 훈련대가 궁궐에 난입할 때 일본인이 섞여 있었다는 소문의 사실 여부를 확인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이번 달 8월 20일 새벽에 훈련대 병정들이 억울함을 호소하려 궐내로 돌진할 적에 편복(便服)을 입은 일본인 약간 명이 뒤섞여서 함께 안으로 들어가서 폭력을 자행하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가 소문이 잘못 전해지면서 나온 것이라 알고 있지만 긴요한 사안이라 그냥 내버려 두기에는 불편한 감이 있습니다. 청컨대 이런 소문의 사실 여부를 확실히 조사하여 신속히 회신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러자 외부대신은 23일에 일본 공사에게 회신하였다.

“우리 군부에 자세한 전말을 알아본 결과 앞장선 훈련대 군졸 몇 사람이 일본인 사복을 입은 것이며 일본인은 없었습니다.”

(박은식 지음 · 김승일 옮김, 한국통사, 범우사,1999, p 200)

외부대신은 최근 교체된 친일파 군부대신 조희연의 회신에 의거하여 이렇게 회답한 것이다.

그런데 왕후 시해 사건에 일본인이 전혀 없었다는 일본 측의 발뺌은 나중에 미국과 영국 그리고 러시아 공사관에 의해 거짓으로 드러났다. 이 사건을 목격한 시위대 교관인 미국의 다이 장군과 러시아의 사바틴 그리고 시위대 장교 현흥택과 궁녀들이 진술했기 때문이다.

한말 주요 사건  (국립고궁박물관) (사진=김세곤)
한말 주요 사건 (국립고궁박물관) (사진=김세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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