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소방항공대 항공구조사 박영민

유난히 많은 눈이 내렸던 신축년 겨울이다. 기온도 영하 20도에 이를 만큼 몹시도 추웠다. 이런 날씨 덕에 도내 유명한 산들이 자연스레 절경을 만들어 내고 있다. 겨울산을 즐기는 사람들이 이런 아름다운 선물을 그저 자연현상으로만 넘길 리 없다.

 TV, 인터넷 등 SNS를 통해 이런 풍경들이 워너고(want to go)로서 알려지고 있음이다. 이런 문화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요즘 같은 코로나 시국에는 더욱 직접 눈앞에서 감상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도 이상할 것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항공구조사로 일하는 나로서는 그저 자연이 준 선물을 감상하는 낭만으로만 받아들일 수 없다. 이렇게 산을 찾게 되는 이유가 많아질수록 사고 발생율 또한 증가하고 산악인명구조 출동도 증가하기 때문이다.

전라북도 운항정보시스템 통계를 보면 소방헬기 출동의 90% 이상이 산악사고지만 사고유형으로 보면 중증환자 발생율은 상대적으로 그리 높지 않다. 소방항공대에 근무하면서 다양한 산악사고현장에 출동 했지만 그 모든 사고들이 대부분 사소한 이유로 발생했고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일이었다.

70대 남성 등산객이 산행중에 탈진으로 헬기구조요청을 한 사례가 있었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 그 남성은 체력 저하와 근육경련으로 스스로는 하산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헬기구조 후 병원후송간 기내에서 그는 “이정도 산행은 물 한모금 안 마시고 가능 했는데..”라고 말했다.

20대 남성 등산객이 요청한 헬기구조 사례에서 그는 현직 운동선수로서 체력단련 목적으로 산악구보를 포함한 트레이닝 중에 전신마비 증상이 나타났다고 말했다. 보통사람의 상식으로는 탈진과 같은 경미한 증상은 없을 것 같은 건장한 체격이었고 본인 또한 감당할 수 있을꺼라 판단한 경우이다.

최근에는 40대 남성 2명이 2021년 새해 일출을 보기 위해 전날 산 정상에 오른 뒤 산악 비박을 시도한 사례가 있었다. 새해 첫날 새벽 소방헬기구조요청으로 현장에 도착해보니 일행 중 한명이 심정지와 사후강직 징후를 나타내고 있었다. 아름다운 설경과 일출이 원망스러울 만큼 안타까운 죽음이 아닌가 싶다.

심지어 심장질환, 고혈압, 당뇨 등 기저질환이 있는 사람들이 건강관리 차원에서 쉽게 등산을 선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등산이 몸에 좋은 신체활동인 것은 사실이지만 기저질환자들이 쉽게 선택할 만큼 만만한 활동이 아니기도 하다.

몇 가지 사례에서 보았듯이 자신의 신체 능력을 과신하거나 산행준비 미흡을 사고원인으로 볼 수 있다. 평생을 히말라야 등반에 몸 바친 엄홍길 대장이 TV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산은 인간의 힘으로 컨트롤 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곳의 신이 허락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정복이라는 표현은 맞지 않다. 인간이 어떻게 자연을 정복하느냐, 잠시 그곳을 빌릴 뿐이다.”

어떻게 히말라야와 비교할 수 있느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히말라야든 뒷동산 언덕이든 모두 우리가 정복하는 곳이 아닌 자연임에는 틀림없다. 모든 산의 지형이 제각각이고 등산객들의 신체능력 또한 다양하기 때문에 맞춤형 등산지침을 제공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안전한 산행을 위해서 개인의 신체능력에 적합한 경로와 준비물은 얼마든지 쉽게 설정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지난 1년여 동안 전국민을 힘들게 했던 코로나19도 백신이 나오면서 곧 종식될 것이라는 희망과 함께 이후 쏟아지는 등산객들에 대한 안전사고 발생의 우려가 있기도 하지만 2021년 신축년 한해는 소방헬기 출동율이 감소하는 안전한 한해가 되길 기원해 본다.

                                                                        전북소방항공대 항공구조사 박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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