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大韓帝國)을 톺아본다. 대한제국은 1897년 10월 12일에 탄생하여 1910년 8월 29일에 망했다. 엄밀히 보면 대한제국은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 체결이후 식물 국가였다. 외교권을 빼앗긴 국가는 국가로 대접받지 못했다.

그러면 대한제국의 탄생부터 살펴보자. 대한제국 탄생의 핵심은 칭제 건원(稱帝建元)과 국호(國號) 제정이다.

칭제건원이란 군주의 존호를 황제로 하고 연호를 택하는 것을 말하며, 국호 제정이란 나라의 이름을 새로 정하는 것이다.

칭제건원은 건원부터 시작되었다. 8월 14일에 의정부 의정(議政) 심순택이 “신들이 명령을 받들어 연호(年號)를 의논하여 정하였는데 ‘광무(光武)’, ‘경덕(慶德)’으로 비망하여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제칙(制勅)을 내려 "‘광무’라는 두 글자로 쓸 것이다."하였다.

광무(光武)란 “외세의 간섭에서 벗어나 힘을 기르고 나라를 빛내자.” 는 의미였다.

다음은 칭제였다. 9월 초에 관료와 유생들에 의해 칭제를 요청하는 상소가 빗발쳤다. 9월 30일에는 심순택 · 조병세 · 박정양 등 전·현직 관료들이 고종을 알현하여 칭제를 진언했다. 우리나라는 명나라의 정통을 이은 나라로 황제 존호 사용이 타당하다는 주장이었다. 이러자 고종은 사양했다.

10월 1일에 심순택과 조병세 등이 백관들을 거느리고 정청(庭請)하여 황제로 칭할 것을 아뢰었다. 이러자 고종은 "어제 연석(筵席)에서 이미 짐의 뜻을 다 말하였는데, 또 이렇게 이끌고 와서 호소하니 실로 이해할 수 없다. 이것은 반드시 애써 따를 수 있는 일이 아닌데 줄곧 번거롭게 청하니, 그것이 온당한 것인지 모르겠다." 고 답하였다.

10월 2일에도 심순택과 조병세 등이 백관들을 거느리고 다섯 번이나 아뢰었으나 고종은 사양하였다.

10월 3일에 심순택과 조병세 등이 백관을 거느리고 또 두 번이나 아뢰니 고종은 그때야 비답하였다.

"짐이 덕이 없다 보니 보위에 오른 지 34년간 어려운 일을 많이 만나다 못해 마침내 만고에 없는 변까지 있게 되었다. 또한 정사가 뜻대로 되지 않아 눈에 보이는 것이 모두 근심스러운 일이니 매번 생각할 때마다 부끄러워 등에 땀이 흐른다. 그런데 지금 막중한 대호(大號)를 걸맞지 않은 나에게 올리려고 관리들은 상소를 갖추어 청하고 대신들은 연석(筵席)에 나와서 청하며 온 나라의 모든 군사들과 백성들은 복합(伏閤)하여 청하여 상하가 서로 버티어 그칠 날이 없다. 온 나라의 같은 심정을 끝내 저버릴 수 없어서 마지못해 애써 따르겠다."

고종은 아홉 번 사양 끝에 마침내 받아들인 것이다. 34년간 집권하였으니 고종도 노회한 군주였다.

황제 즉위식은 10월 12일로 결정되었고 장소는 환구단(圜丘壇)에서 치르기로 했다. 환구단은 원래 중국 사신의 숙소인 남별궁 터인데 현재는 중구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 자리이다.

10월11일 오후 두시에 고종은 경운궁을 떠나 환구단으로 행차했다. 즉위식 준비를 점검하기 위함이었다. 어가가 환구단에 이르자 고종은 제향에 쓸 각색 물건을 둘러보고 오후 네 시쯤 돌아왔다. 거리에는 병정들이 고종의 행차를 호위했고, 시민들은 집집마다 태극기와 등불을 달아 황제 즉위를 환영했다.

12일 새벽에 공교롭게도 비가 왔다. 의복들이 젖고 찬 기운이 성하였다. 그러나 국가 경사를 즐거워하는 마음에 젖은 옷과 추위를 개의치 않고 질서 정연히 각자의 직무를 착실히 하였다.

새벽 두 시에 고종은 환구단에서 천지신명에게 제사를 올렸다. 황천상제(皇天上帝)와 황지기(皇地祈) 즉 천지신명에게 직접 제사를 올려야 황제가 될 수 있었다.

제사가 끝나자마자 의정부 의정 심순택이 백관을 거느리고 아뢰었다.

"고유제(告由祭)를 지냈으니 황제의 자리에 오르소서."

고종은 신하들의 부축을 받으며 단(壇)에 올라 금의(金倚 황금 옥좌)에 앉았다. 이윽고 고종은 황제를 상징하는 12가지 무늬가 새겨진 면복 (冕服)을 입고 옥새를 받아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심순택이 백관을 거느리고 국궁(鞠躬), 삼무도(三舞蹈), 삼고두(三叩頭), 산호만세(山呼萬世), 산호만세, 재산호만세(再山呼萬世)를 불렀다. (고종실록 1897년 10월 12일)

황제는 이제 중국 황제의 책봉을 받은 제후국의 왕이 아니라 천지신명에게 책봉을 받은 천자였다.

이날 고종은 빈전(殯殿)에 나아가 명성황후를 책봉한 것에 대한 고유 별전(告由別奠)을 지냈다. 황태자도 따라 나아가 예를 행하였다.

황제 즉위식 다음 날인 13일에 고종 황제는 국호를 대한제국(大韓帝國)으로 반포하였다. 마한· 진한 · 변한의 삼한(三韓)을 아우르는 ‘큰 한(韓)’이란 뜻에서 ‘대한(大韓)’이라 한 것이다.

덕수궁 중화전 (사진=김세곤)
덕수궁 중화전 (사진=김세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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