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하게 봄을 준비하는 자연을 보면서
나는 과연 무엇을 준비하고
그토록 오랫동안
어떤 것에 열중하며 살았는지 궁금해진다.

정숙자 문학박사
정숙자 문학박사

[한국농어촌방송/경남=정숙자 문학박사]

꽃피기 전 봄산처럼 / 꽃핀 봄산처럼

꽃지는 봄산처럼 / 꽃진 봄산처럼

나도 누구 가슴 / 한번 울렁여 보았으면

-함민복의 ‘마흔 번 째 봄’

위 시 속에 들어있는 감정을 한웅큼 가져다가 나의 가슴으로 밀어 넣는다. 산에 들에 핀 매화가 붉은 감정을 사뿐히 들여놓고 있다. 지인들의 전화기 속이 온통 꽃이다. 아마 봄이 다가도록 꽃으로 이야기들이 시작될 것이다.

나의 산책길 끝, 호수의 언저리에 개나리가 무성하다. 처음에는 개나리인지 알 수 없는 형태였다가 봄이 한발씩 세상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네들도 싹을 하나씩 키워내고 있다. 그 싹 역시 개나리라고 장담하기에는 아직 미비하다. 혹시나 하는 인간의 이기적인 호기심에 몇 가지를 꺾어서 집으로 가져와서 햇빛 잘 드는 창가에 그리고 예쁜 화병에 두었더니 하루 이틀은 아무런 기척도 없다. 삼일째 꽃봉우리 하나가 활짝 열리더니 과연 개나리꽃이었다. 빛깔고운 노란 개나리꽃은 작은 꽃잎을 하나씩 펼치기 시작하더니 내 마음을 꽃밭으로 만들어 주었다.

꽃이 피고 피는 일마저 힘겹게 받아들여지는 이 나이에 나는 조심스럽게 소망한다. 나에게도 살아갈 이유가 있는 날들이 많기를. 노란 개나리꽃의 두근거림으로 왔다가 어느새 나는 꽃도 피우지 못하는 나무가 되어 있다. 그것이 누구의 탓이라 원망도 하고 절망이라는 거미줄에 걸려 나를 꽃으로 여기지 않고 곧 베어질 나무라 여기고 소중하게 들여다보지 못한 것들에 대한 후회가 생긴다. 이 봄에 말이다.

화려하게 봄을 준비하는 자연을 보면서 나는 과연 무엇을 준비하고 그토록 오랫동안 어떤 것에 열중하며 살았는지 궁금해진다. 나 조차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는 나의 봄을 자연은 잘도 찾아서 내 앞에 두고 간다. 소리도 불평이나 불만도 없이 주어진 시간에게 자신을 온전하게 맡겨둔 채 자신의 일을 묵묵하게 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언제쯤 이 봄을 닮아 갈 수 있으려나? 겨울을 이겨내고 봄의 향기로, 봄의 바람으로 사람에게 온 차 한 잔을 마신다. 노란 개나리 꽃 뒤에서 사진 하나를 찍어서 간직한다. 나의 봄은 개나리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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