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직의 「화도연명술주시」의 네째 단락을 살펴보자. 넷째 단락은 6구이다.

사령(四靈)이 응했다고 핑계를 대어 諉以四靈應

태산에 봉선하고 분음에 제사했네. 宗岱且祠汾

거짓 천명을 만들 수는 있으나 僞命雖能造

세상의 혼란 의당 분분하였네. 世亂當紛紛

천리란 본디 순환하길 좋아하기에 好還理則然

소가 마침내 천친을 멸하였도다. 劭也蔑天親

그러면 한 구씩 살펴보자

사령이 응했다고 핑계를 대어, 諉以四靈應

태산에 봉선하고 분음에 제사했네. 宗岱且祠汾

사령은 네 가지 신령스런 동물인 기린(麟)·봉황새(鳳) ·거북(龜)·용(龍)을 말하는데, 사령이 나타나는 것은 곧 제왕(帝王)이 출현할 상서로운 조짐이라고 한다.

제왕이 될 상서로운 조짐이 있는 이가 황제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태산(泰山)에 봉선(封禪)하여야 하고, 또 분음(汾陰)에 제사하여야 한다.

태산은 중국 산동성에 있는 산이고, 분음은 산서성(山西省) 만영현(萬榮縣)에 있는 분수(汾水)의 남쪽 지명이다.

태산에선 진시황이 봉선하고, 분음에선 한나라 무제가 제사를 지내어 황제가 되었다.

거짓 천명을 만들 수는 있으나 僞命雖能造

세상의 혼란 의당 분분하였네. 世亂當紛紛

거짓 천명은 조작할 수 있지만 백성들은 세상의 난리를 다 안다는 의미이다. 거짓 의식을 행한 사람은 유유가 세운 남조(南朝) 송(宋 420-479)나라의 문제(文帝)이다. 그는 진시황이나 한무제의 의식을 흉내 내어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그런데 이 사실을 백성들이 모를 리가 없다.

그런데 중국만 그런가? 김종직은 조선의 정국이 마치 중국의 그것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부당한 방법으로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는 세조는 이를 합리화하기 위해서 봉선하고 제사지내는 의식을 행하였다. 이러한 의식은 진실이 아니라 가식이다.

천리란 본디 순환하길 좋아하기에 好還理則然

소가 마침내 천친을 멸하였도다. 劭也蔑天親

천리, 즉 자연의 이치는 악한 사람을 위해 순환하는 것이 아니라 착한 사람을 위해 순환한다. 처음에는 악한 사람이 부귀를 얻으니 천리가 존재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하지만 결국은 천리로 돌아간다.

송나라 문제(文帝)의 거짓 천명은 그의 큰아들인 유소(劉劭)로부터 대가를 받는다. 유소는 일찍이 황태자에 책봉되었으나 문제를 무고한 사실이 발각되어 폐태자(廢太子)가 되었다. 이에 앙심을 품고 유소는 동생인 차남 유준(劉濬)과 함께 문제를 시해하고 황제가 되었다. 그러나 유소는 3개월 만에 의병(義兵)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이리하여 유소는 중국 황제 역사상 최초로 황제 아버지를 죽인 패륜아가 되었다. 한편 역사를 두루 훑어보면 이런 일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인륜(人倫)이 말살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마지막 단락이다. 이 단락은 달랑 2구이다.

술주시에는 숨겨놓은 뜻 많나니 述酒多隱辭

팽택에게 비교할 사람 없겠구려. 彭澤無比倫

중국 팽택현에 살았던 도연명의 「술주」시에는 숨겨놓은 뜻이 많다. 시는 우의(寓意)가 함축(含蓄)되어 독자들에게 교훈을 준다. 김종직은 숨은뜻을 많이 감춘 이는 도연명이 단연 압권이라고 칭송하면서 시를 마무리한다.

김종직이 도연명의 시에 화답한 이유는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는 말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도연명의 「술주」시나 김종직의 「화도연명술주」시는 강한 교훈성을 지니고 있다.

그가 이 시를 지은 목적은 후세의 난신적자(亂臣賊子)들이 그의 시를 보고 두려워할 줄 알게 하기 위해서였다. 따라서 그는 서문의 끝부분에 “외람되이 춘추(春秋)의 한 필법(筆法)에 견준다 하리라.”고 적었다.

중국 서안 박물관 앞 용 조각상 (사진=김세곤)
중국 서안 박물관 앞 용 조각상 (사진=김세곤)
진시황제 병마용갱 (사진=김세곤)
진시황제 병마용갱 (사진=김세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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