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8년 7월 18일에 이주(李胄)가 공초하였다.

"신이 사간원 정언(正言)으로 있을 때 설재(設齋)가 편안하지 아니하다는 것을 논하여 서계(書啓)하기를, ‘성종은 나의 임금(吾君)이온데, 신이 멀지 않아 죽으면 무슨 면목으로 성종을 지하에서 뵈오리까. 바라옵건대 신을 파직하시고 신의 죄를 다스려서 신으로 하여금 성종을 지하에서 뵐 적에 할 말이 있게 해 주시오면 이는 전하의 은사이옵니다.’ 하였습니다.

이른바 ‘성종은 나의 임금이다.’라고 한 것은 옛날에도 역시 ‘나의 임금[吾君]’이라는 말이 있었기 때문이오며, ‘할 말이 있다’고 한 것은 신이 간관(諫官)으로서 그 책임을 다해야만 다음에 선왕을 지하에서 뵐 때 할 말이 있기 때문이옵니다. 대저 말이 격절(激切)하지 아니하면 천의(天意)를 움직이지 못하므로 감히 이같이 서계한 것입니다." (연산군일기 1498년 7월 18일 2번째 기사)

이윽고 윤필상과 유자광 등이 아뢰었다.

“이원(李黿)이 김종직의 시호를 의론하면서 아름다움을 칭찬한 것이 공자(孔子)와 같았으며, 표연말(表沿沫)이 김종직의 행장(行狀)을 지었으니, 청컨대 아울러 국문하옵소서.”

이에 연산군이 국문하라고 전교하였다. (연산군일기 1498년 7월 18일 3번째 기사)

조금 있다가 국문을 당한 이원이 공초하였다.

"신은 일찍이 김종직에게 수업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김종직이 동지성균(同知成均)으로 있을 적에 신이 생원(生員)으로 성균관에 머물면서, 목은(牧隱)의 관어대부(觀魚臺賦)를 차운하여 김종직의 과차(科次)로 나아가니 김종직이 저를 칭찬하였습니다.

김일손이 신더러 그 제자라 한 것은 아마도 이 때문일 것이오며, 그 문집도 신은 일찍이 보지 못하였고, 이른바 ‘육군(六君)’이란 것도 역시 알지 못하옵니다.”

이원이 차운했다는 ‘관어대부’는 이색(1328∽1396)이 지은 부(賦)이다. 이 부는 『목은집』 ‘목은시고 제1권’에 ‘관어대소부(觀魚臺小賦)’란 제목으로 실려있다. 이를 살펴보자.

“관어대(觀魚臺)는 영해부(寧海府 지금의 경북 영덕군 영해면)에 있는데, 동해(東海)를 내려다보고 있어 암석의 낭떠러지 밑에 유영(游泳)하는 고기들을 셀 수가 있으므로 관어대라 이름한 것이다.

영해부는 나의 외가(外家)가 있는 곳이므로 소부(小賦)를 지어서 중원(中原)에 전해지기를 바라는 바이다. (당시 이색의 아버지 이곡(李穀)이 중국에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적었다.)

영해의 동쪽 언덕

일본의 서쪽 물가엔

큰 파도만 아득할 뿐

그 나머지는 알 수가 없네

물결이 움직이면 산이 무너지는 듯하고

물결이 잠잠하면 닦아 놓은 거울 같도다

바람 귀신이 풀무로 삼는 곳이요

바다 귀신이 집으로 삼은 곳이라

고래들이 떼지어 놀면 기세가 창공을 뒤흔들고

사나운 새 외로이 날면 그림자 저녁놀에 잇닿네.

관어대가 굽어보고 있으니

눈에는 땅이 보이지 않도다

위에는 한 하늘만 있고

아래는 한 물만 있어

아득히 먼 그 사이가

천리만리나 되누나

오직 관어대 밑에는

파도가 일지 않아서

고기들을 내려다보면

서로 같고 다른 놈 있어

느릿한 놈 활발한 놈이

제각기 만족해하누나

임공의 미끼는 과장된 것이라

내가 감히 흉내낼 바 아니요

강태공의 낚싯바늘은 곧았으니

내가 감히 기대할 바 아니로다

아 우리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니

내 형체를 잊고 그 즐거움을 즐기며

즐거움을 즐기다 죽어서 내 편안하리

물아가 한마음이요(物我一心)

고금이 한 이치인데(古今一理)

그 누가 구복(口服) 채우기에 급급하여

군자의 버림받기를 달게 여기랴

슬프도다 문왕은 이미 돌아갔으니

오인을 생각해도 바라기 어렵거니와

부자(夫子)로 하여금 떼를 타게 한다면

또한 반드시 여기에 낙이 있었으리라

(공자가 일찍이 탄식하기를, “도가 행해지지 않으니, 나는 떼를 타고 바다에 뜨리라.[道不行 乘桴浮于海]”하였다. ‘논어 공야장(公冶長)’에 나온다.)

오직 고기가 뛴다는 짧은 글귀는

바로 중용의 가장 큰 뜻이니

(자사(子思)가 지은 『중용장구(中庸章句)』 제12장에는 “『시경』에 이르기를, ‘솔개는 날아서 하늘에 이르고, 물고기는 못에서 뛴다.(鳶飛戾天 魚躍于淵)’하였으니, 도(道)의 유행(流行)이 상하(上下)에 드러남을 말한 것이다.”라고 적혀있다.)

종신토록 그 뜻을 깊이 탐구하면 다행히 자사(子思)를 본받을 수 있으리

경남 함양군 역사인물공원 (사진=김세곤)
역사 인물공원에 세워진 김종직 동상 (사진=김세곤)
역사 인물공원에 세워진 김종직 동상 (사진=김세곤)
경남 함양군 역사인물공원 (사진=김세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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