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8년 11월 15일에도 만민공동회의 농성은 계속되었다. 이날 중추원 의관 김가진 등이 5흉(凶) 처벌, 헌의 6조(條)의 실행, 독립협회 복구 등 여섯 가지 조항 시행을 상소했다. 이러자 고종은 "상소한 글은 의정부에서 처결하도록 하였으니, 경 등은 즉시 물러가서 처분을 기다리라."고 비답했다. (고종실록 1898년 11월 15일 1번째 기사)

이윽고 의정부 의정서리 찬정 김규홍 등이 아뢰었다.

“민인들이 의견을 올린 6조는 이미 의정부로 하여금 조처하라는 비지(批旨)를 받아 차례로 시행되고 있습니다. (중략)

협회(協會)에 관하여 말하면 혁파하라는 조칙이 있은 만큼 감히 토의할 수 없는 것인데, 아랫 사람들의 입장에서 바꾸어 생각하라는 전하의 명령을 받았으니 천만번 흠앙(欽仰)하는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삼가 듣건대 외국에서는 혹 백성들의 강연이나 담화를 승인하여 지식을 발달시키는 사례가 있다고 합니다. 만약 ‘범위를 정하여(酌定範圍)’ 세상의 공론을 묻는다면 역시 개진하는 데 일조할 것입니다. 신 등이 마음대로 하기 곤란하므로 폐하의 처결을 바랍니다.”

이러자 고종은 제칙(制勅)을 내려 재가(裁可)하였다. (고종실록 1898년 11월 15일 2번째 기사)

11월 16일에도 만민공동회는 계속되었다. 이 날 법부 대신 한규설이 조병식, 민종묵, 김정근, 이기동, 유기환 등을 잡아다 신문할 것을 상주(上奏)하니, 고종은 윤허하였다. (고종실록 1898년 11월 16일 1번째 기사)

11월 17일에 만민공동회 의장인 종2품 고영근이 민회를 승인할 것을 청했다.

"삼가 정부(政府)의 주본(奏本)을 읽어 보니, 5흉(凶)을 재판에 넘길 것을 윤허한 것은 실로 병의 증세에 따라서 약을 쓴 것입니다. 그런데 나라의 법은 지엄하여 사적인 의견은 용납되기 어려운 만큼 사법관이 응당 감싸주어 비호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민회(民會)를 실시하는 데 대한 의견을 승인하는 것으로 말하면 이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데 원기를 돋우는 약으로서 많이 쌓을수록 더욱 자세해질 것이고 시끄럽게 떠들수록 더욱 효험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폐하께서는 여기서 무엇이 괴로워 그것을 갑자기 물리치려고 하는 것입니까?

(중략)

민회와 같은 문제에 대해서 말한다면 정부의 주본에서 개진하는 데 일조가 된다고 말한 것은 대체로 그 의도를 알 수 있는데 범위를 정하자는 데 대해서는 신 등이 사실 의혹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중략)

왜 협회에 대해서 징계를 하며 반드시 법을 정하여 속박하고 단속하려고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오직 그 힘이 커지고 그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 두려워서인 것입니다.”

이에 고종이 비답하였다.

"범위를 정하는 것은 언로를 막는 것이 아니고 회규를 정하려는 것이다. 어찌 규칙 없는 협회가 있을 수 있겠는가? "

(고종실록 1898년 11월 17일 2번째 기사)

이런 가운데 수구파들은 이기동·길영수·유기환 등이 중심이 되어 전국의 보부상들을 서울로 불러올렸다. 황국협회 세력을 강화하여 만민공동회를 공격하려고 준비한 것이다.

황국협회는 1898년 7월 7일 정낙용을 회장으로 하여 황태자가 보낸 1,000원의 하사금으로 창립된 단체로서, 창립 초에는 보부상들의 권익단체의 성격을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수구파들이 독립협회에 대항하기 위해 창립한 단체였다.

서울에 모인 보부상들은 11월 16일에는 머리에 패랭이를 쓰고 그 위에 목화송이를 꽂고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시위를 시도하였고, 총대위원을 농상공부에 보내어<상무규칙(商務規則)>의 개정과 인가를 요청하였다.

11월 18일과 19일에는 전국 각도로부터 보부상들이 줄을 이어 서울로 들어와서 그 수가 수천이 되었다. 특히 11월 19일에 보부상들은 농상공부문 앞에서 대회를 열고 연좌시위를 하면서 인가장의 발급을 강력히 요구하였다.

고종은 11월 17일에 임명한 농상공부대신 김명규에게 전화로 칙령을 내려 황국협회의<상무규칙>인가장을 발급해 주도록 명령했다. 김명규 농상공부대신은 부득이하여 발급해 주었다.

이는 고종이 특명에 의해 황국협회의 복설과 보부상들의 특권을 부여한 것이어서, 보부상들은 사기가 충천하였고, 서울은 일촉즉발(一觸卽發) 이었다.

덕수궁 석조전 (사진=김세곤)
덕수궁 석조전 (사진=김세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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