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추원 의관 안종덕의 상소 

덕수궁 중화전
덕수궁 중화전

고종이 염근공신을 칙유한 지 두 달 정도 된 1904년 7월 15일에 중추원 의관(議官) 안종덕이 ‘조정이 청렴, 근면, 공정하지도 않고 신의도 없음’을 지적하는 상소를 올렸다. 

"5월 21일에 내린 칙서(勅書)를 삼가 보니, 빛나는 586자의 말은 간곡하기 그지없고 엄정하면서도 측은하게 여긴 것이었는데, 자신을 반성하고 자책하며 신하들을 신칙(申飭)한 내용은 마치 해와 달처럼 밝고 쇠나 돌처럼 확고한 것이었습니다. ...

대체로 청렴이라는 것은 의리와 예의의 틀이고, 근면이라는 것은 지식과 행동의 용기입니다. 공정이라는 것은 어진 이의 큰 덕이며, 신의라는 것은 덕을 세우는 기초입니다. 만약 이 네 가지가 시행되면 역사에 기록된 훌륭한 황제가 다섯에서 여섯으로 늘 것입니다. ...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폐하가 임오년(1882) 이후부터 수십 년 동안 환난이 생길 때마다 밝은 조서를 내린 것이 몇천 마디인지 모를 지경입니다. 자신을 반성하고 아랫사람을 격려하며 청렴과 근면, 공정과 신의로 일하겠다고 다짐 안 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얼마 못 가서 관리들의 부패는 전(前)과 같아지고, 무사안일과  불공정도 전과 같아지고, 신의를 잃는 것도 전과 같았습니다. 이는 무슨 까닭이겠습니까? 신이 듣건대, 말로 사람을 감동시킨 것은 얕고, 마음으로 사람을 감동시킨 것은 깊다고 합니다. ... 

가만히 보건대, 폐하께서는 말로 사람을 감동시키려 했지, 마음으로 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신은 죽음을 무릅쓰고 하나씩 진술하겠습니다.”  

안종덕은 고종의 ‘염근공신(廉勤公信)’ 칙유가 ‘진정성’이 없다고 상소한다. 먼저 그는 탐오(貪汚)를 지적한다. 
   
“대체로 아래가 위를 따르는 것은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고, 들풀이 바람이 부는 대로 넘어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윗사람이 청렴한데 아랫사람이 감히 어떻게 탐오(貪汚)하며, 윗사람이 근면한데 아랫사람이 감히 어떻게 게으르며, 윗사람이 공정한데 아랫사람이 감히 어떻게 사리(私利)를 챙기며, 윗사람이 신의가 있는데 아랫사람이 감히 어떻게 속이는 짓을 하겠습니까? 

지금 폐하는 청렴한 것을 좋아하지만 조정의 신하들은 탐오한 오점을 가지고 있고 지방의 백성들은 생계가 거덜 났다는 탄식이 많습니다. 

뇌물이 성행하여 관청의 법도가 문란해졌으며, 탐학한 자들이 도처에 넘치고 도적이 빈번히 일어납니다. 이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신은 폐하께서 청렴에 착실하게 마음을 두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습니까? (중략)

무릇 탁지부의 정공(正供)은 모두 폐하의 소유입니다. 그런데 또 무엇 때문에 별도로 내장원(內藏院)을 설치하고 탁지부에 들어가야 할 일체의 공전(公田), 사전(私田), 개인 토지, 산과 못, 어장과 염전, 인삼포(人蔘圃), 광산 등을 떼어내어 모두 가지고 있는 것입니까? 
... 도대체 임금에게 올릴 공물(貢物)을 꼭 이런 묵인 땅이나 황무지 같은 몹쓸 데서 나는 물건들로 바쳐야 한단 말입니까? 이것은 백성들에게 청렴치 못한 것을 보여주는 것이니, 풍속이 어떻게 아름다워지며 백성들이 어떻게 탐욕스러워지지 않겠습니까?”

이어서 그는 매관매직의 폐해에 대해 상소한다.  

“대체로 벼슬을 파는 문제로 말하면 예나 지금이나 나라를 망치는 길입니다. ... 저 간교한 토호들과 아전들이 감히 요행으로 폭리를 얻어 볼 생각을 품고, 부유한 자는 재산을 털고 가난한 자는 이리저리 빚을 내어 먼저 10배 값을 실어다 주고서 수령 자리를 사는데, 그런 사람이 나랏일을 위하겠습니까?  
 부임한 날부터 머리를 싸매고 하는 짓이란 어떤 것들이겠습니까? 게다가 사적으로 뇌물을 받아먹는 행위가 계속되어 그렇게 하지 않으면 본전을 못 찾을 것이니, 이런 형편에서 그가 하는 정사가 과연 청렴한 것이겠습니까? (후략)” 

이어서 안종덕은 근면의 허상에 대해 상소했다. 
       
“지금 폐하께서는 근면한 것을 좋아하지만 조정에는 게으른 습성이 있어 무슨 일이나 성사될 가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의정부의 회의는 모여 앉자마자 헤어지고 각 부(部)의 출근에 대해서 여러 번 주의를 주었음에도 출근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중략) 

신은 폐하의 근면이 ‘근면의 마땅한 도리를 잃은 데 있지않은가’생각합니다. 대체로 제왕들의 근면은 관리들이 수고로이 힘쓰는 것과는 다릅니다. 고요(皐陶)의 노래에는‘임금이 모든 일을 다 맡아보니 고굉지신(股肱之臣)들은 게을러져서 만사가 그르쳐지는구나.’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일을 자질구레한 일에까지 나서는 것이 근면한 듯 하지만 신하는 게을러지고 일이 그르쳐집니다. 

... 아! 폐하께서는 황위에 오른 이후 날마다 바쁘게 지냈으니, 참으로 천하에 의로운 임금입니다. 하지만 걱정이 지나쳐서 하찮은 일들까지 살폈고 근심이 깊어서 남이 하는 것을 싫어하여 모든 일을 직접 도맡아 하였습니다. (중략) 전형을 맡은 관리들은 명령만 기다리게 되고, 법을 맡은 관리들도 명령만을 받들게 되니, 임금의 팔다리 노릇을 해야 할 관리들이 어찌 게을러지지 않으며, 만사가 어찌 그르쳐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것을 놓고 신은 감히 폐하의 근면이 근면의 마땅한 도리를 잃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고종실록 1904년 7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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