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위종의 연설, ‘대한제국을 위한 호소’ 

중명전 연혁
중명전 연혁

1907년 7월 8일 밤에 이위종은 이상설과 함께 ‘국제협회(The Foundation of Internationalism)’에 초대되었다. 국제협회는 스태드가 베르타 폰 주트너 여사(1905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와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는 헤이그 시내에 있는 언론인 클럽이었다.  

스태드는 세계 각국의 기자들 200명이 모인 가운데 이위종을 ‘프린스 이(이 왕자)’로 소개하였다. 이위종은 유창한 불어로 일제에게 외교권을 뺏긴 조국의 처지를 ‘대한제국을 위한 호소(A Plea for Korea)’란 제목으로 연설하였다. 연설은 이렇다. 1) 

“러일전쟁 초기에 일본 정부는 전쟁의 두 가지 목적은 첫째 한국의 독립 유지와 영토보전, 둘째 극동아시아 교역을 위한 ‘문호개방(open door)’ 지속이라고 선언하였습니다. 또한 일본의 정치가들은 이번 전쟁은 일본 자신만을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교역 국가의 문명개화와 상업적 이익을 위한 싸움이라고 여러 차례 선전하였습니다.
  그래서 미국 · 영국과 같은 상인과 선교사들 그리고 극동의 많은 사람들은 일본이 그 약속을 지키리라 믿었습니다. 

대한제국은 국민과 정부 모두가 우리나라의 독립과 영토의 주권을 보장하겠다는 일본의 진지한 약속을 확실히 믿고 일본과 동맹을 맺었습니다.  
(1904년 2월 23일에 한일간에 체결한 한일의정서 제3조는 ‘대일본제국 정부는 대한제국의 독립과 영토보전을 확실히 보증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필자 주)  

이 협약에 의거하여 대한제국은 전쟁 수행에 필요한 군사기지를 일본에 개방하고 또 한국 정부와 국민들은 러시아와 싸우는 일본을 위해 필요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다방면으로 도왔습니다. 

구(舊) 정권(고종 정권을 말함-필자 주)의 부패, 수탈과 학정(虐政)에 지쳐 있던 우리 한국인들은 일본인들을 기대와 희망으로 맞이하였습니다. 
(We, the people of Korea, who had been tired of the corruption, exaction and cruel administration of the old Government, received the Japanese with sympathy and hope.)

 당시에 우리들은 일본이 부패한 관리들에게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고,  만민에게는 정의를 구현하며, 행정 당국에게는 솔직한 조언을 해주리라 믿었습니다. (We believed, at that time, that Japan, while dealing possibly stern measures against corrupt officials, would give justice to the common people and would give honest advice in the administrative work.) 우리는 일본이 이 기회를 활용해 한국인에게 필요한 개혁을 잘 이끌어 줄 것으로 믿었습니다.”  

뜻밖에도 이위종은 연설 서두에 고종 정권의 부패, 수탈, 학정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조선을 네 차례 방문하여 고종과 민왕후를 여러 번 만난 영국의 지리학자 비숍 여사는 저서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1897년 간행)』에서 이렇게 적었다.  

“여러 가지 개혁에도 불구하고 조선에는 착취하는 사람들과 착취당하는 사람들, 이렇게 두 계층만이 존재한다. 전자는 허가받은 흡혈귀라 할 수 있는 양반 계층으로 구성된 관리들이고, 후자는 전체 인구의 4/5를 차지하고 있는 하층민들이다. 하층민들의 존재 이유는 흡혈귀들에게 피를 공급하는 것이다. (비숍 지음 ·신복룡 역주,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 2019, p 458-462)

마지막으로 비숍은 조언한다. 

“조선은 두 가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첫째로 조선 내부로부터의 개혁이 불가능할 때 외부로부터라도 개혁되어야 한다. 둘째로 군주의 권력은 엄중하고도 영원한 헌법의 아래에 놓여야 한다.”(위 책, p 465)

하지만 영국인 비숍의 희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매관매직 풍조는 여전했고, 대한제국은 입헌군주국이 아닌 러시아 차르 체제를 닮은 전제 군주국이 되었다.  

1) 이위종의 연설문은 1907년 8월 22일의 미국 인디펜던트 잡지에 게재되었다. 1907년 10월 19일에 뉴질랜드 신문 <오아마루 메일(Oamaru Mail)>도 이위종의 영문 연설문을 실었다. 뉴질랜드 신문의 영문 연설문은 이승우의 저서 <시베리아의 별>에 실려있다. (이승우 지음, 시베리아의 별 이위종, p 34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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