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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S역사칼럼-길 위의 역사](3회) 사정전에서세조, 성삼문과 하위지를 친국하다
  • 김세곤 칼럼니스트
  • 승인 2018.02.14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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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 칼럼니스트

[한국농어촌방송=김세곤 칼럼리스트] 「세조실록」에는 성삼문(成三問)이 곤장을 맞고 대죄를 범했다고 순순히 자백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이는 생육신 남효온(1454∼1492)이 지은 『추강집』의 「육신전」과는 너무 다르다. 

세조실록은 편찬 책임자가 계유정난 공신인 한명회 · 신숙주 ·최항 등이었다. 이들이 편찬한 실록이 단종복위 운동을 제대로 쓸 리 없다.

한편 남효온은 1489년에 박팽년 · 성삼문 · 이개 · 하위지 · 유성원 · 유응부의 절개를 기술한 『육신전』을 집필했는데, 무오사화의 희생자인 사관 김일손(1464∼1498)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일손의 문집인 『탁영선생문집(2012년 간행)』의 「탁영선생 연보」에는 “1490년 4월에 남효온이 지은 『육신전』 초안을 사관(史館)과 『승정원일기』에 의거해 다시 고쳐짓고 집안에 깊숙이 갈마 두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1490년 가을에 남효온은 김일손과 함께 삼각산 중흥사에서 김시습을 만났다. 세 사람은 밤새 담소하고 백운대를 올랐으며 닷새 동안 같이 지냈다. 아마 단종과 육신에 대하여도 이야기 했으리라.

그러면 「육신전」의 성삼문 관련 부분을 읽어보자.

일이 발각되어 체포되었다. 세조가 친히 국문하면서 꾸짖기를 “그대는 어찌하여 나를 배반하였는가?” 하니, 성삼문이 소리치며 말하기를 “옛 임금을 복위시키려 했을 뿐입니다. 천하에 그 누가 자기 임금을 사랑하지 않는 자가 있겠습니까. 제 마음은 나라 사람들이 모두 아는 바이거늘 어찌 배반이라 하십니까. 나리는 평소에 걸핏하면 주공(周公)을 끌어댔는데 주공에게 이런 일이 있었습니까. 성삼문이 이렇게 한 것은 하늘에 두 개의 해가 없고 백성에게 두 임금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였다.

사정전 앞마당에 꿇어앉은 성삼문은 “단종을 복위시키려고 했는데 이것이 왜 배반이냐고 세조에게 반문했다.” 그러면서 세조를 ‘나리’라고 호칭했다고 한다. 사진=김세곤 칼럼니스트

성삼문은 단종을 복위시키려고 했는데 이것이 왜 배반이냐고 세조에게 반문했다. 그러면서 세조를 ‘나리’라고 호칭한다. 임금으로 인정 안한 것이다. 이어서 성삼문은 “나리는 평소에 걸핏하면 주공을 끌어댔는데 주공에게 이런 일이 있었습니까.”라고 되받아쳤다.1)

1453년 10월10일에 계유정난을 일으킨 수양대군(훗날 세조)은 영의정이 되어 정권을 장악한 후에 11월20일에 공신들과 함께 “내가 단종을 배신하지 않고 어른이 될 때까지 끝까지 보필하겠다.”고 맹세했다.(단종실록 1453년 11월20일) 성삼문은 이런 맹세를 안 지키고 왕위를 찬탈한 세조를 꾸짖은 것이다.

「육신전」을 계속 읽어보자.

이러자 세조가 발을 구르며 말하기를 “선위를 받던 당초에는 어찌 저지하지 않고 곧 나에게 의지하다가 지금에야 나를 배반하는가?” 하니, 성삼문이 말하기를 “형세상 저지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진실로 나아가서 금지할 수 없음을 알고는 물러나서 한번 죽으려고 했지만, 공연한 죽음은 무익한 것입니다. 꾹 참고 오늘에 이르렀던 것은 뒷일을 도모하려 했던 것뿐입니다.” 하였다.

한편 성삼문을 친국한 세조는 예조참판 하위지(河緯地 1412∼1456)를 잡아들였다. 사정전 앞뜰에서 세조가 하위지에게 묻기를, "성삼문이 너와 함께 무슨 일을 의논하였느냐?" 하니, 기억할 수 없다고 대답했다. 세조가 역모를 공모했느냐고 물었으나, 하위지는 말하지 아니하였다.

하위지는 사람됨이 침착하고 과묵하며 도리에 어긋난 말이 없었다. 세조가 1453년에 김종서를 죽이고 영의정이 되자 그는 선산(善山)에 물러가 살았다. 그런데 1455년에 세조가 임금이 된 뒤 교서를 내려 매우 간곡하게 올라오라고 하니, 하위지는 마지못해 한양으로 올라와서 예조참판에 제수되었다. 그는 세조 밑에서 벼슬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서 1455년 이후 녹봉은 따로 방에 쌓아두었다 한다.

1)주공은 문왕의 아들이고 무왕(武王)의 동생이다. 그는 무왕을 도와 주나라(BC 1046∼770)를 세웠다. 무왕이 죽자 주공은 직접 왕권을 장악하라는 주변의 유혹을 뿌리치고 무왕의 어린 아들 성왕(成王)을 보좌하는 길을 택했고, 성왕에게 통치 기술을 가르쳤다. 

그는 어린 조카 성왕을 보필하여 7년간 섭정하면서 주나라를 반석 위에 올려놓고 성왕이 나이가 들자 섭정에서 물러났다. 공자는 주공을 후세의 황제들과 대신들이 모범으로 삼아야 할 인물로 격찬했다.

<다음 주에 계속됩니다>

김세곤 칼럼니스트  segon5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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