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BS역사칼럼-길 위의 역사](7회) - 세조, 신숙주를 시켜 박팽년과 하위지를 회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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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S역사칼럼-길 위의 역사](7회) - 세조, 신숙주를 시켜 박팽년과 하위지를 회유하다.
  • 김세곤 칼럼니스트
  • 승인 2018.03.14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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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 칼럼니스트

[한국농어촌방송=김세곤 칼럼니스트] 1456년 6월3일에 세조는 믿었던 신하들이 반역을 했다고 생각하여 화가 풀리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집현전 학사 출신 박팽년 · 하위지 등의 재주를 아껴서 그들이 죄를 뉘우치면 살려줄 생각도 있었다. 세조는 비밀리에 사람을 시켜서 박팽년과 하위지를 회유했다.

세조의 회유내용은 1799년에 편찬된 정조 임금의 시문집 ‘홍재전서 제60권 / 잡저(雜著) 7 / 장릉(영월에 있는 단종의 능) 배식단에 배향된 정단(正壇)’에 나온다.

증 이조 판서 행 형조 참판 충정공(忠正公) 박팽년(朴彭年)

병자년(1456, 세조 2)에 성삼문 등과 상왕의 복위를 모의하다가 수감되었을 적에, 세조가 그의 재주를 아까워하여 몰래 타이르기를, “네가 나를 섬기면 마땅히 너를 사면하리라.” 하니, 박팽년이 웃으며 대답하지 않았다.

증 이조 판서 행 예조 참판 충렬공(忠烈公) 하위지(河緯地)

병자년(1456, 세조 2)에 거사가 발각되자 세조가 그의 재주를 아껴서 비밀리에 타이르기를, “네가 만약 그런 일이 없었다고 스스로 변명만 한다면 죽음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다.”고 하자, 하위지가 웃으며 대답하기를, “남들이 반역으로 지목한 이상 그 죄는 응당 죽어야 하오. 무엇하러 물어보는 거요.” 하였는데, 성삼문과 함께 같은 날에 죽었다.

이를 보면 박팽년 · 하위지에게 세조의 말을 몰래 전한 이가 있었다. 그 인물이 누구일까? 바로 집현전 동기인 추국관 신숙주였다.

그 근거가 1498년 7월12일자 연산군일기(5번째 기사)에 있다.

유자광이 사초(史草)를 가지고 축조(逐條)하여 심문하니, 김일손(金馹孫)이 말하기를, "신의 사초에 기록한바 ‘황보(皇甫)·김(金)이 죽었다.’한 것은 신의 생각에 절개로써 죽었다고 여겼기 때문이며, 소릉(昭陵)의 재궁(梓宮)을 파서 바닷가에 버린 사실은 조문숙에게 들었고, 이개·최숙손이 서로 이야기한 일과 박팽년 등의 일과, 김담(金淡)이 하위지의 집에 가서 위태로운 나라에는 거하지 않는다고 말한 일과, 이윤인이 박팽년과 더불어 서로 이야기 한 일과, 세조가 그 재주를 애석히 여기어 살리고자 해서 신숙주(申叔舟)를 보내어 효유하였으나 모두 듣지 않고 나아가 죽었다는 일은 모두 고(故) 진사 최맹한에게 들었다." 고 하였다.

1498년 7월 무오사화로 능지처참 당한 김일손(1464∼1498)은 성종실록 편찬과 관련한 사초사건으로 정치 공작의 달인 유자광으로부터 심문을 당했다. 위 실록 기사를 보면 김일손은 ‘신숙주가 박팽년 · 하위지 ·이개를 회유한 일을 최맹한에게 들었다’고 유자광에게 진술했다.

김일손은 남효온이 『육신전』을 쓸 때에 많은 자료를 제공한 사관이다. 실제로 김일손은 생육신을 두루 만났다. 이종범은 『사림열전 2- 순례자의 노래(2008년 발간)』에서 “김일손은 15세부터 이십 대 후반까지 세조의 치세를 은둔으로 저항한 노선비들을 차례로 만났다. 그것은 순례였으며 역사운동이었다.”라고 적고 있다 (같은 책 p 351)

또한 김일손은 파헤쳐진 현덕왕후(단종의 모친이고 문종의 부인)의 소릉 복위 상소를 3번이나 올렸다.

한편 신숙주는 의금부 감옥에서 은밀하게 박팽년부터 만났다. 신숙주는 집현전 시절부터 박팽년과 친했으니 말이 통할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박팽년은 죽음의 길을 택했다.

신숙주는 하위지도 접촉했으나 하위지는 ‘반역자는 응당 죽어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고, 이개도 마찬가지였다.

한편 박팽년 등은 의금부 감옥 안에서 그 유명한 ‘사육신 충의가’ 또는 ‘육신애상가(六臣哀傷歌)’를 불렀다.

먼저 박팽년이 읊었다.

까마귀 눈비 맞아 희는 듯 검노매라.

야광명월이 밤인 듯 어두우랴

임 향한 일편단심이아 가실 줄이 있으랴

이개도 폐부를 도려내는 애잔한 시를 읊었다.

창안에 혔는 촛불 눌과 이별하였관대

겉으로 눈물지고 속 타는 줄 모르는가

저 촛불 나와 같아서 속 타는 줄 모르더라.

잇따라 성삼문이 그 유명한 절의시를 읊었다.

이 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꼬 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되었다가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하리라

무인 유응부도 시를 읊었다.

간밤에 불던 바람 눈서리 치단 말가

낙락장송이 다 기울어진단 말가

하물며 못 다 핀 꽃이야 일러 무삼하리오. 1)

안타깝게도 하위지의 시는 전해지지 않는다. 그가 워낙 과묵해서 시를 읊지 않았을 수도 있다. 대신 그가 지은 한시가 남효온의 『육신전』에 전해진다.

남아의 득실이야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구나.

머리위에 밝은 달이 환히 비추는데

도롱이를 건네주는 뜻이 있을 것이라

강호에 비 내리면 즐겁게 서로 찾으리.

이 시는 하위지가 고향인 경상도 선산으로 내려가자 박팽년이 도롱이를 빌려주었다. 하위지는 단종 복위 뜻으로 알아채고 이 시를 지었다.

사육신, 이들은 선비정신을 더럽히고 싶지 않은 불사이군(不事二君)의 화신(化身)이었다.

사진=사육신 공원의 의절사와 신도비각

1) 박팽년 · 이개 · 성삼문 · 유응부의 시조는 김천택이 1728년(영조 4)에 엮은 『청구영언』과 1876년(고종 13)에 박효관과 박민영이 편찬한 『가곡원류』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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