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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S역사칼럼-길 위의 역사](11회)-세조, 사정전에서 성삼문·이개 등에게 거열형을 명하다.
  • 김세곤 칼럼니스트
  • 승인 2018.04.11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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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어촌방송=김세곤 칼럼니스트] 1456년 6월8일, 사건이 탄로 난 지 7일째 된 날에 세조는 경복궁 사정전에서 성삼문·이개·하위지·박중림(박팽년의 부친)·김문기·성승(성삼문의 부친)·유응부·윤영손· 권자신(단종의 외사촌) · 박쟁· 송석동 · 이휘 · 단종의 유모 봉보부인(奉保婦人) 1)의 여종 아가지(阿加之) · 권자신의 어미 집 여종 불덕(佛德) · 별감(別監) 석을중 등을 끌어 와서 곤장을 때리면서 심문하였다.

이 자리에는 의금부 제조 윤사로·강맹경·이인손·신숙주·성봉조·박중손·어효첨과 승지(承旨)·대간(臺諫) 등이 배석했다.

의금부는 " 이개·하위지·성삼문·박중림·김문기·유응부·박쟁·송석동·권자신·윤영손·아가지·불덕 등이 결당하여 어린 임금을 끼고 나라의 정사를 마음대로 할 것을 꾀하여, 6월초1일에 거사하려 하였으니, 그 죄는 능지처사에 해당합니다. 적몰(籍沒)과 연좌(緣坐)도 아울러 율문(律文)에 의하여 시행하소서."라고 세조에게 아뢰었다.

세조가 명하기를, "아가지와 불덕은 연좌시키지 말고, 나머지 사람들은 친자식들을 모조리 교형(絞刑)에 처하고, 어미와 딸·처첩(妻妾)·조손(祖孫)·형제·자매와 아들의 처첩은 변방 고을의 노비로 영속시키고, 나이 16세 미만인 자는 외방에 보수(保授)하였다가 나이가 차기를 기다려서 안치시키며, 나머지는 아뢴 대로 하라." 하였다.

그리하여 성삼문 등은 처형장소인 군기감으로 호송된다. 군기감은 병기(兵器)의 제조 등을 관장한 관청으로 지금의 서울특별시청 옆에 있다.

성삼문은 경복궁을 나갈 때에 좌우 옛 동료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들은 어진 임금을 도와서 태평성세를 이룩하라. 성삼문은 돌아가 옛 임금을 지하에서 뵙겠다.”하였다.

이들은 경복궁의 서문인 영추문(迎秋門)으로 나왔다. 영추문에는 죄수를 실을 수레가 대기하고 있었고, 성삼문 등의 가족들이 죽기 전에 볼 양으로 모여섰다.

경복궁 영추문

성삼문은 수레에 실려 광화문을 지나 형장인 서울시청 쪽으로 끌려가면서 시 한수를 읊었다.

둥 둥 둥 북소리는 사람 목숨을 재촉하는데 擊鼓催人命

뒤 돌아보니 해는 이미 저물었네. 回頭日欲斜

머나먼 황천길엔 주막 하나 없을 것인데 黃泉無一店

오늘밤은 뉘 집에서 잘꼬. 今夜宿誰家

시를 다 읊은 성삼문은 눈물을 주르르 흘렀다. 이를 본 주변 사람들도 남몰래 눈물을 훔쳤다.

경복궁 광화문

삶을 우(禹)의 구정(九鼎)처럼 중히 여겨야 할 경우는 삶 또한 중요하지만

죽음도 기러기 털처럼 가벼이 보아야 할 경우는 죽음도 영화로세

두 임을 생각하다가, 문득 성문 밖을 나가노니

현릉(顯陵)의 송백이 꿈속에도 푸르러라.

禹鼎重時生亦大

鴻毛輕處死有榮

明發不寐出門去

顯陵松柏夢中靑

이개의 시에서 두 임이 누군가? 바로 문종과 단종이다. 현릉이 어디인가? 현릉은 제5대 임금 문종(1414~1452)의 능이다. 그러면 현릉의 송백 즉 소나무와 잣나무는 무엇을 의미한가? 문종의 고명을 따르고자 단종을 지키려 한 충절을 의미하는 것 아닌가? 비록 단종을 복위 못 시키고 죽지만, 죽는 것도 영화(榮華)라고 한 이개의 시는 가슴 저리다.

성삼문 등을 실은 수레는 삐걱 소리를 내며 광화문 사거리를 지나 시청 앞으로 천천히 간다. 수레에는 ‘역적 성삼문’ · ‘역적 이개’라고 적힌 큰 기가 꽂혀 있고, 죄인들의 등 뒤에는 죄목과 이름이 적혀 있다. 길 좌우에는 장안 백성들이 모여 있다. “충신들 다 죽는구나.”, “아이고, 이를 어찌해”, 한숨 어린 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린다.

이 때 대여섯 살쯤 보이는 성삼문의 딸이 아비의 수레를 뒤따르며 울며 뛰었다.

“아버지, 아버지! 나도 가, 나도 같이 가요”

그러자 성삼문이 뒤돌아보며 말했다.

“울지 마라 아가야, 네 오라비들은 다 죽어도, 너는 계집애니까 살 것이다.”

그랬다. 남자들은 다 처형되었지만 여자들은 참형되지 않고 노비가 되었다. 실제로 세조는 성삼문의 아내 차산(次山)과 딸 효옥(孝玉)을 운성부원군 박종우에게 노비로 주었다. (세조실록 1456년 9월7일)

이어서 성삼문의 노비가 울면서 성삼문에게 술을 올렸다. 성삼문은 허리를 굽히어 받아 마시고 시 한 수를 또 다시 지었다.

임이 주신 밥을 먹고, 임 주신 옷 입었으니

일평생 한 마음이 어긋남이 줄 있었으랴

한 번 죽음이 충의인 줄 알았으니

현릉(顯陵)의 송백(松柏)이 꿈속에 아른거리네.

食人之食衣人衣

所一平生莫有違

一死固知忠義在

顯陵松柏夢依依

1) 봉보부인은 외명부의 정1품의 임금의 유모(乳母)에게 주던 작위이다.

김세곤 칼럼니스트  segon5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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