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8년 3월 10일 만민공동회 개최에 경악한 고종은 즉시 견제에 나섰다. 3월 15일에 고종은 특명을 내려 독립협회 회원 이원긍, 여규형, 지석영, 안기중 4명을 구속 시켰다. 시종원 시종 김영준(金永準)이 무고한 것이다.이원긍은 1891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참의 등을 하였고 1894년 7월에는 내무아문 참의가 되었다. 여규형은 1882년에 문과에 급제해 부응교를 하였는데 그는 1893년에 금갑도(金甲島)에 유배되었다가 풀려났다.지석영(1855~1935)은 우리나라에 종두법(種痘法:천연두 예방법)을 처음 보급한 사람이다. 그
1898년 3월 10일 오후 2시에 서울 종로의 저잣거리에서 민회(民會)가 열렸다. 이 날 독립신문에는 행사 예고 기사를 실었고 독립협회 회장 이완용과 고문 서재필이 앞에 나서지 않고 은밀히 준비했다.민회에는 1만여 명의 시민이 모였는데 당시 서울 인구가 19만 6천 명임을 감안하면 대성황이었다.민중 대회에서 시민들은 쌀장수 현덕호를 회장으로 선출하고 백목전(白木廛) 다락 위에서 시민들이 연설을 하였다. 현공렴, 이승만 등 배재학당과 경성학당 학생들도 연설가로 나섰다. 이들은 러시아의 절영도 조차 요구 철회와 한러은행 철수, 그리고
[한국농어촌방송/경남=오규열 일대일로연구원 부원장/전 서울디지털대학교 중국학부 교수] 국회 입법조사처가 2020년 11월 11일 발간한 박선권 입법조사관의 현안분석에 따르면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자료가 확인되는 52개국 가운데 가장 낮다고 한다. 2018년 기준으로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98명으로 OECD 평균 1.63명에 비해 0.65명 낮다. 유사한 인구 규모를 갖고 있으면서 초저출산 상태에 있는 스페인의 1.26명과 이탈리아의 1.29명에 비해서도 각각 0.28명, 0.31명이 낮은 수치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2019년 0.
1897년 11월 20일에 ‘독립문(獨立門)’이 준공되었다. 대한제국이 탄생 한 지 40일 만이었고, 1896년 11월 21일에 기공식을 한 뒤 1년 만이었다. 독립문은 자주 독립의 상징이었다.서재필은 준공식 석상에서 이렇게 말했다.“우리는 이제부터 옛날 종노릇 하던 표적을 없애버리고 정말 실질적 독립을 소원한다는 표로 이 독립문을 세우는 것이니, 우리 국민은 이점을 잘 생각하고 우리나라 독립 · 자주를 위하여 더욱 분투해야 합니다.”독립문 건립을 위해 1896년 7월 2일에 창립된 독립협회는 신문·잡지 발간, 강연회·토론회 등을
1897년 10월 12일에 대한제국 탄생 이후 가장 먼저 치른 국가적 행사는 11월 21일에 있었던 명성황후(1851∽1895) 국장(國葬)이었다. 장례는 왕후가 1895년 음력 8월 20일(양력 10월 8일) 을미사변 때 경복궁 건천궁에서 시해된 지 2년 1개월 후에 이루어졌다. 장지는 서울 청량리 밖 홍릉이었다.국장(國葬)은 성대하게 치러졌다. 장례비는 쌀로는 44,300여 섬 규모로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무려 110억 원에 달했다. (강준만, 한국 근대사 산책 3, p 106)황현의 『매천야록』에는 “고깃값만 해도 6만 냥이
[한국농어촌방송/경남=정숙자 문학박사] 사람들은 대화를 하거나 개인적인 행동을 할 때 각각의 버릇이 있다. 대화 중에 사람을 손으로 치고 때리거나 또는 좋다는 표현으로 상대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다. 상대는 싫지만 참고 있을 뿐이다. 간혹 싫다는 표현을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반복되는 행동에는 변화가 없을 때는 그저 원만한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상대는 무던히 노력하는 중이다.그런데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은 상대의 고통과 노고를 전혀 헤아리지 못하고 상대도 그 행동을 즐긴다고 생각하는 대단한 오류를 범한다. 당하는 사람은 이 관계를 유
대한제국(大韓帝國)을 톺아본다. 대한제국은 1897년 10월 12일에 탄생하여 1910년 8월 29일에 망했다. 엄밀히 보면 대한제국은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 체결이후 식물 국가였다. 외교권을 빼앗긴 국가는 국가로 대접받지 못했다.그러면 대한제국의 탄생부터 살펴보자. 대한제국 탄생의 핵심은 칭제 건원(稱帝建元)과 국호(國號) 제정이다.칭제건원이란 군주의 존호를 황제로 하고 연호를 택하는 것을 말하며, 국호 제정이란 나라의 이름을 새로 정하는 것이다.칭제건원은 건원부터 시작되었다. 8월 14일에 의정부 의정(議政) 심순택이
[한국농어촌방송/경남=오규열 일대일로연구원 부원장/전 서울디지털대학교 중국학부 교수]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나선 국민의 당 안철수 대표가 야권 단일화를 서두르고 있으나 국민의 힘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입당 후, 단일화에 나서라고 주장하며 안철수의 프리미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안철수 대표를 정치의 길로 이끈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이러한 모습을 보이는 데에는 그만한 사연이 있다.1987년 이전까지 한국정치는 군사독재세력에 맞선 민주화운동세력의 치열한 투쟁의 역사였다. 1987년 대한민국 국민의 간절한 여망을 담아 5년 단임 직선제 대통령
영국의 지리학자 비숍 여사(1831∽1904)는 1897년 11월에 지은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에서 독립문을 언급하고 있다.“북경로 근처에 있는 우아한 영은문은 몇 대에 걸쳐 조선의 국왕이 중국의 칙사를 맞이하는 곳이었으나 이제는 없어졌다. ...영은문이 헐려진 자리의 가까이에 있는 폐궁을 건물로 사용하고 있는 독립협회는 국가의 독립을 축하하고 보전하고자 창립되었다. 비록 가입비가 비쌌지만 이미 회원이 2,000명에 이르렀다.”(비숍 지음·신복룡 역주,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 집문당, 2019, p 452-453)자주독립의 상
[한국농어촌방송/경남=정숙자 문학박사] 오늘은 걷기명상을 위해 길을 나서는 길목에서 매화가 싹을 내고 있었다. 너무 반가운 마음에 돌아오는 길에 그네들에게 의사를 묻지도 않고, 본 나무에서 제일 거리가 먼 가지 두 개를 내 마음대로 꺾어 집으로 데리고 왔다. 사람이 살고 있는 집안의 따뜻한 온기가 매화 싹의 기운을 도와 꽃을 빨리 보리라는 오직 내 욕심으로 말이다.며칠은 물도 잘 마시고 꽃을 피우려는 듯 제법 망울이 또렷해졌다.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나고 보니 그 매화 가지는 물 한 모금을 마시지 않고 말라 죽어가고 있었다.
1895년 12월 26일에 서재필(1864~1951)이 미국에서 귀국하였다. 1884년에 갑신정변을 일으켜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피신한 그는 필립 제이슨이란 미국인이 되어 11년 만에 돌아온 것이다.서재필은 1890년에 미국 시민권을 획득하고 1894년에 의사 면허를 얻었으며 미국 철도 우편국 창설자 조지 암스트롱의 딸과 결혼하였다. 그런데 장인인 조지 암스트롱은 15대 미국 대통령 부캐넌(16대 링컨대통령 전임자)의 사촌이었다.서재필은 배재학당 교장 아펜젤러의 집에 머물렀는데 고종은 서재필을 중추원 고문으로 임명하였다.1896년
[한국농어촌방송/경남=정숙자 문학박사] 겨울의 맹추위로 진양호가 얼음으로 채워졌다. 호수의 대부분이 얼어서 겨울의 햇살을 본의 아니게 세상 속으로 밀어내고 있다. 얼음에서 튕겨져 나와서 그런지 인간 속에 들어온 그 햇살도 따뜻하지는 않다. 얼음으로 막고 있는 호수 위에는 철새도 없고 하늘을 품고 산을 받아주던 물은 온데간데없이 투명한 얼음의 실체만이 물과 세상을 뚜렷하게 둘로 나누고 있다.호수에 비친 세상의 일들을 호수는 오히려 얼음을 통해서 토해내고 있다. 그저 묵묵히 받아만 주던 호수는 이제 세상의 일에 무심해지기로 작정한 모습
명성황후는 을미사변 때 시해당한 민 왕후(1851∽1895)의 시호이다. 그런데 왕후의 시호는 여러 번 바뀌었고, 국장(國葬)은 1897년 11월 고종 황제 때 치러져서 명성황후로 추존되었다.그러면 명성황후가 된 내역을 살펴보자. 1895년 10월 15일에 고종은 왕후의 승하를 반포하였다."지난번 변란 때에 왕후의 소재를 알지 못하였으나 날이 점차 오래되니 그 날에 세상을 떠난 증거가 정확하였다. 8월 20일 묘시(卯時 오전 5-7시)에 왕후가 곤녕합(坤寧閤 경복궁 건천궁 왕비의 침실)에서 승하하였다.“10월 17일에는 대행 왕후(
[한국농어촌방송/경남=정숙자 문학박사] 물은 고여 있지 않고 흐르는 것이 본래의 성질이다. 타의에 의해 흐르는 방향을 잊어버린 채 고여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나면 물은 썩어서 지독한 냄새와 함께 나뒹군다. 해마다 찾아와서 세상 먼 곳의 이야기를 전해주던 철새도 오지 않고 몸을 섞으며 놀던 물고기도 떠나고 없다. 아름답게 피던 앙증맞은 작은 꽃들도 모습을 감췄다. 무성한 이름 없는 억센 풀과 질긴 줄기만 무성하여 썩은 물을 부끄러운 듯 뒤덮고 있을 뿐 지나가는 사람들의 인기척도 없다. 아니 사람들은 그 물웅덩이를 피해서 먼 길을 돌아
[한국농어촌방송/경남=오규열 일대일로연구원 부원장/전 서울디지털대학교 중국학부 교수]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는 2021년 1월 6일 중국 3대 통신사들에 대해 상장 폐지 결정을 내렸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2020년 11월 중국군과 연계된 기업에 대한 미국인들의 투자를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내린 데 따른 후속 조치다. 행정명령에 앞서 미 국방부는 이들 3개 중국 국영 통신회사를 중국군과 연계된 기업 명단에 올린 바 있다.미국이 중국 통신회사를 겨냥한 것은 5G의 상용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 2019년 4월 한국의 이동통신 3
민왕후 시해 사건이 일어난 지 2일째 되는 8월 22일(양력 10월 10일)에 ‘뉴욕 헤럴드’ 서울 특파원 코커릴 기자는 고종을 알현했다.8월 23일에 영국 총영사 힐리어는 북경주재 오코너 공사에게 왕비 시해 관련 사항을 보고했다. 여기에는 러시아 사바틴의 증언도 포함되어 있었다.8월 26일에 미국 대리공사 알렌과 러시아 공사 웨베르는 외부대신 김윤식이 보낸 문건에 의문을 제기하고 왕후 시해 사건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처벌을 권고하는 문서를 보냈다.이윽고 미국공사 알렌은 시해 당일 현장에 있었던 관련자 즉 궁녀와 시위대 연대장 현흥
[한국농어촌방송/경남=정숙자 문학박사] 새해가 열렸다. 나는 본의 아니게 한 살을 더했다. 내 계획에도 없었고 의도하고 노력한 것도 아닌데 빠지는 것이 아니라 보태고 더해졌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떡국도 먹지 않았고, 일출도 애써 보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아주 친절하게도 우아한 모습으로 내 옆에 서 있다. 아마 가라고 종용을 하더라도 서운한 마음 드러내지 않고 나의 손을 쥐고 있을 것이다. 어제의 나이에 아주 공평하게 하나를 더해서 말이다. 계산도 단 한 번 틀리지 않는다. 간혹 내가 내 나이를 잊고서 태어난 해를 계산하고서야
을미사변이 일어난 이틀 후인 8월 22일에 고종은 조령(詔令)을 내려 민왕후를 폐서인하였다."짐(朕)이 보위(寶位)에 오른 지 32년에 다스림과 덕화가 널리 펴지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왕후 민씨(閔氏)가 그 친당을 끌어들여 짐의 주위에 배치하고 짐의 총명을 가리어 백성을 수탈하고 짐의 정령(政令)을 어지럽히며 벼슬을 팔아먹고 탐학이 지방에 퍼지니 도적이 사방에서 일어나서 종묘사직(宗廟社稷)이 아슬아슬하게 위태로워졌다.짐이 그 죄악이 극대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처벌하지 못한 것은 짐이 밝지 못하기 때문이기는 하나 역시 그 패거리를 꺼려
1895년 8월 20일(양력 10월 8일) 묘시(卯時 오전 5-7시)에 민왕후가 경복궁 곤녕합(坤寧閤)에서 붕서(崩逝)하였다. 그런데 시해 사실은 즉시 반포되지 못했다. 55일이 지난 10월 15일에야 반포되었다.그렇다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일자별로 살펴본다.# 8월 20일오후 3시에 외국 공사들은 일본 공관으로 가서 미우라 공사의 설명을 들었다. 미우라는 훈련대 해산에 불만을 품은 조선 군인들이 대원군과 공모하여 궁궐에 난입한 것이고, 일본은 이 사건과 전혀 관련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미국 공사대리 알렌과 영국 총
[한국농어촌방송/경남=정숙자 문학박사] 오늘의 나는 50∼60km를 꾸준하게 달려서 이 시간에 급하게 도착했다. 남아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곳에서 지나간 것들에게 매달려 한번 돌아보기를 소망한다.올해가 시작했던 1월에 나는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그냥 살아있는 시간 동안 ‘나’를 만나고 싶었던 것 같다. 기억에도 없는 계획에 나를 끼우고 맞춰서 반성할 필요도 없었다.하지만 올해는 갱년기라는 복병이 나와 늘 함께 했다. 표현할 수도 없고 원인도 짐작할 수 없는 짜증과 분노가 있었고, 그것에 대한 우울감이나 패배감 그리고 늘 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