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곤 칼럼니스트

[한국농어촌방송=김세곤 칼럼니스트] 1456년 6월 단종 복위 사건이 일어난 이후, 세조는 단종에 대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 대신 다시는 단종 복위 모의가 일어나지 않도록 금성대군(錦城大君 세종의 여섯 째 아들) · 화의군 · 한남군 · 영풍군 · 정종(鄭悰 문종의 부마, 단종의 매형)등의 고신(告身 조정에서 벼슬을 임명하기 위해 내리는 사령장)을 거두고 먼 지방에 안치하라는 명을 내렸다. (세조실록 1456년 6월26일)

6월27일에 금성대군은 경상도 순흥에, 한남군 이어는 함양에, 화의군 이영은 전라도 금산에, 영풍군 이전은 임실에, 정종은 광주(光州)에 안치되었다.

그런데 12월9일에 영의정 정인지·우의정 정창손·좌찬성 강맹경·우찬성 신숙주 등이 아뢰기를, "지금 상왕(上王)이 명위(名位)가 서로 같으므로 소인이 틈을 타서 난(亂)을 꾀하는 자가 있으니, 근래의 성삼문의 난이 그것입니다. 청컨대 다른 곳에 있게 하여 간사하고 속이는 것을 막으소서.”하였고, 호조판서 이인손 · 이조판서 권람 등이 또 아뢰기를, "두 임금 사이에 소인이 틈을 타서 난을 꾀하는 자가 있으니, 청컨대 상왕께서 별궁에 계시도록 하여 혐의스러운 것을 끊게 하소서." 하였다. 그런데 세조는 윤허하지 않았다.

한 달이 지난 1457년 1월29일에 세종의 형인 양녕대군이 여러 종친들을 거느리고, 영의정부사 정인지는 육조 참판 이상 관원을 거느리고서 상왕을 밖에 나가 거처하게 하도록 아뢰자, 세조는 단종을 금성대군 저택에 유폐한다.(세조실록 1457년1월29일)

이리하여 단종은 창덕궁을 떠나 금성대군 저택에 유폐되었는데 이 때 금성대군은 경상도 순흥에 유배 살이 하고 있었다.  

그런데 2월8일에 세조는 명나라 황실에 급변사태가 일어났다는 보고를 받는다. 통사(通事) 진흠이 "경태황제(景泰皇帝) 경종(景宗)은 병환이 아주 심하여 4일 동안을 조회를 보지 않았으며, 정통황제(正統皇帝) 영종(英宗)께서 황태후의 명령으로써 1월17일에 복위되었습니다."라고 보고한 것이다. (세조실록 1457년 2월8일)

정통제(正統帝, 1427년~1464년)는 1449년 토목(土木)의 변(變)으로 몽고의 야센(也先)에게 포로가 되자 그 이복아우 경종이 경태황제가 되었다. 1450년에 영종이 풀려나오자 형제간에 왕위를 둘러싸고 대립하다가, 1457년에 정통제가 다시 복위(復位)한 것이다. 1)

6월3일에 세조는 조칙을 갖고 온 명나라 사신 한림원 수찬 진감과 태상시박사 고윤을 모화관에서 맞이하고, 명 사신은 경복궁에서 복위 조서(詔書)를 반포하였다.

세조와 그의 신하들은 극도로 불안했다. 명나라에서 상황이 복위되었으니 조선에서도 단종 복위파가 복위를 도모할 수 있어서 위기감이 돌았다.

이에 정인지 · 신숙주등 세조의 측근들은 단종을 살려둘 수 없다고 판단하고 계략을 꾸민다. 6월21일에 백성 김정수가  전 예문제학 윤사윤에게 "판돈녕부사 송현수와 행 돈녕부판관 권완이 반역을 도모합니다."라고 말하니, 윤사윤이 세조에게 아뢰었다. (세조실록 1457년 6월21일)

송현수는 단종비 송씨의 아비이고, 권완은 후궁 권씨의 아비이다. 백성 김정수가 누구인지, 어디에서 그런 정보를 얻었는지는  실록에 전혀 나와 있지 않다.

그런데 세조는 사정전에 나아가서 영의정 정인지·우의정 정창손·우찬성 신숙주·도승지 한명회·동부승지 김질 등을 부르고 송현수와 권완을 의금부에 하옥시켰다.

세조는 일개 백성의 말을 듣고 사실 확인도 거치지 않은 채 기다렸다는 듯이 송현수와 권완을 의금부에 하옥시킨 것이다.   이는 날조된 무옥(誣獄 아무 죄도 짓지 않은 사람을 죄가 있는 듯이 꾸며 죄를 다스림)이 분명했다.  

이어서 세조는 상왕 단종을 노산군으로 강봉시켜 강원도 영월로 유배  보낸다.

1) 정통제는 중국 명나라 제6대 황제이다. 그는 명 왕조 사상 첫 복위를 한 황제로 선덕제(宣德帝)의 장남이며, 제7대 황제 경태제(景泰帝)의 이복형이다. 1435년에 황제가 된 정통제는 1449년에 몽골계 부족 오이라트(Oirāt)족의 족장 야센(也先)이 명나라 변방을 침입하자 50만의 군대를 이끌고 친정했으나 전투에서 대패하여 야센의 포로가 되었다.

이러자 명나라 조정은 정통제의 이복동생 경태제를 황제로 옹립하였고, 1450년에 명나라에 송환된 정통제는 태상황(太上皇)이 되어 유폐되었다. 이후 명나라 조정은 정통제 파와 경태제 파로 나뉘었다. 그런데 1457년1월에 경태제가 병을 앓자, 정통제 일파가 정변을 일으켜 경태제는 폐위되었고, 폐위된 지 한 달 후에 급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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