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촌방송=김세곤 칼럼니스트] 임사홍 사건은 임사홍이 도승지에서 해임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사진=창덕궁 선정문 입구

1478년(성종 9년) 4월29일에 주계부정(朱溪副正) 이심원(李深源, 1454 ~ 1504)이 성종을 면담하여 폭탄 발언을 한 것이다. (성종실록 1478년 4월29일 1번째 기사)

이심원은 효령대군의 증손이고 보성군 (寶城君 1416 ~ 1499) 이합의 손자이며 평성군 이위의 장남으로 김종직의 문인이었다.

성종은 창덕궁 선정전에 나아가서 이심원을 인견(引見)했는데 두 사람의 대화를 살펴보자

이심원 : "신은 종척(宗戚)의 후손으로서 군자·소인(小人)을 쓰고 버리는 것과 형벌이 전도(顚倒)되는 것은 사직에 관계된다고 생각하여 감히 알현을 청했습니다."

성종 : "네가 이르는바 군자·소인을 쓰고 버리는 것과 형벌이 전도(顚倒)되었다는 것을 듣고 싶다."

이심원 : "어제 듣건대, 홍문관·예문관의 관원이 임사홍 및 그 아비 임원준의 간사함을 논계(論啓)하자 전하께서 모두 인견하고 힐문(詰問)하셨는데, 임원준의 간사한 형상은 묻지 아니하고 임사홍의 직첩을 거두고 홍문관·예문관 20여 관원을 파직시켰다고 합니다. 만약 양관(兩館)의 말이 옳으면 임사홍 부자를 죄주는 것이 옳고, 그렇지 아니하면 양관의 관원을 죄주는 것이 옳은데, 무슨 까닭으로 동시에 죄를 주십니까?

또 임원준 부자는 소인이 아닙니까?"

성종이 성난 목소리로 말하기를, "네가 이를 위해 왔느냐?"

이심원 :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자세히 말씀하셔서 신의 의혹을 풀게 하소서. 신은 직질(職秩)이 비록 낮을지라도 감히 진달(陳達)함을 피하지 않겠습니다."

성종 : "만약 임사홍이 진실로 소인이라면, 일찍이 승지와 이조 참의가 되었으니 또한 작은 벼슬이 아닌데, 홍문관·예문관의 관원은 바로 임금의 덕을 보양(輔養)하는 것으로서 그 때 임사홍이 소인이라고 말하지 아니하고 이제야 말한 것은 늦었다. 임원준은 비록 간사하고 탐탁(貪濁)하다고 말하나 애매하고 형적이 없는 말을 믿고 죄를 줄 수 있겠는가?"

이심원 : “성상의 하교가 지당합니다. 그러나 임사홍은 신의 고모부이기 때문에 그 사람됨을 자세히 아는데, 참으로 소인입니다. 홍문관·예문관 관원이 먼저 소인임을 말하지 아니한 것은 바로 오랫동안 자세히 살펴서 감히 급하게 하지 않으려고 한 것입니다.

임원준은 참으로 소인입니다. 홍문관·예문관의 20여 관원들과 대간들이 한 입으로 모두 간신이라고 말하였으니, 임원준의 간사함은 본래 드러난 것이라고 이를 만합니다. 그런데 전하께서는 조금도 간사한 형상을 묻지 아니하시고 도리어 말한 자를 허물하시니, 임원준의 간사함은 이로부터 더욱 꺼리는 바가 없을 것입니다.”

사진=선정전 안내판
사진=선정전 내부

성종: "네가 임원준을 소인이라고 하니 임원준이 소인인 이유를 말하라.“

임원준(任元濬1423∼1500), 그는 세조 3년(1457년)에 중시에 합격하여 이조참의에 오르고 성종 2년(1471년)에 성종을 왕위에 오르게 한 공로로 좌리공신(佐理功臣)이 되었다. 지금은 판서보다 높은 벼슬인 의정부 좌참찬이었다. 그런 임원준을 이심원이 소인이라 했으니 성종은 어리둥절했다.

성종의 물음에 이심원은 답한다.

이심원 : "소인은 형상을 말하기 어려운 것이니, 만약 무슨 일, 무슨 말이 소인이 된다고 말한다면 이는 잘못을 헤아릴 만한 것인데, 어찌 참 소인이겠습니까? 우선 한 가지 일을 가지고 임원준이 소인임을 밝히겠습니다.

처음에 성녕대군(誠寧大君 1405∽1418 태종의 4남)의 사자(嗣子)는 바로 신의 종조부(從祖父) 원천군(原川君)이었는데, 원천군이 졸(卒)하자 적자(嫡子)는 없고 장첩(長妾)의 아들 열산수(列山守)가 있어, 이로써 성녕대군의 뒤를 잇게 하는 일이 결정되지 아니하여 국론(國論)이 어지러웠습니다.

임원준이 말하기를, ‘지금 원천군이 적자가 없으니 성녕대군의 제사를 반드시 다른 데로 옮겨야 될 것인데, 효령대군의 아들 보성군(寶城君)만이 성녕대군의 뒤를 이을 수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성녕대군의 노비가 매우 많으므로, 만약 보성군이 이를 얻으면 임원준의 아들인 임사홍의 아내도 고루 나누어 가질 수 있기 때문에 힘을 다해 도모하였으나 결국 실패했습니다.

원천군의 첩자(妾子) 열산수가 뒤를 잇기로 이미 정한 뒤에, 임원준이 신에게 말하기를, ‘전자에 양녕대군의 첩자 오천부정(烏川副正)이 제사를 받들지 못하고 대군의 둘째 적자인 함양군(咸陽君)이 되었다. 듣건대 조카(이심원을 말함)가 오천부정과 사이가 좋다고 하니, 모름지기 가서 달래어 열산수의 예(例)를 끌어 상언(上言)하게 하여 양녕대군의 봉사(奉祀)를 요구하게 하면, 조정에서 반드시 오천부정의 일로써 예(例)를 삼을 것이고, 열산수로 하여금 성녕대군의 뒤를 잇지 못하게 할 것이다. 성녕대군의 후사(後嗣)가 정적(正嫡)에게로 옮겨진다면 그대의 조부인 보성군이 반드시 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신은 임원준의 꾀가 매우 간휼(奸譎)하다고 생각하여 대답하기를, ‘증조부 효령대군의 뜻이 이와 같지 않으셨는데, 조부인 보성군께서 어찌 아버님의 뜻을 거역하고 성녕대군의 뒤를 잇기를 즐겨하겠는가?’ 하였습니다.

임원준이 말하기를, ‘80여 세가 된 대군이 어찌 세상에 오래 살겠는가? 비록 아버지의 뜻을 거역할지라도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하였으니, 이는 임원준에게 측은지심이 없는 것입니다. 이 말로 미루어 보면 임원준이 정말 소인인데, 전하께서 알지 못하실 뿐입니다."

성종은 안색을 고치며 "계사(繼嗣)의 일은 임원준이 잘못한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승지들에게 임원준이 참으로 소인인지를 물었다.

도승지 손순효 : “임원준이 재리(財利)에 급급하니, 군자가 아닙니다.” 좌승지 박숙진 : "임원준은 선조(先朝)에서 더러운 행실이 매우 많았습니다. 이제 임원준의 행한 바를 살피건대, 이심원의 말과 같습니다."

좌부승지 김승경 : "임원준의 집은 본래 가난하였는데, 근래에 갑자기 부자가 되어 가산(家産)이 매우 넉넉하니, 무릇 사람은 재리(財利)에서 그 지조를 볼 수 있습니다.”

우부승지 이경동 : "신이 듣건대, 임원준은 간사하고 바르지 못하며, 안평대군에게 아부하다가 약을 훔쳐서 도망하였으니, 그간의 더러운 행실은 다 기억하기 어렵습니다. 근래에 신이 임원준과 같이 경연관이 되어서 그 사람됨을 살펴보니, 무릇 소인 같기도 하고 근신(謹愼)하는 군자 모습도 있어서 신은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이와 반대로 그 아들 임사홍의 태도는 매우 교만합니다."

이어서 이심원이 아뢰었다.

"대신의 진퇴(進退)를 비록 가볍게 할 수 없으나, 홍문관·예문관과 대간들이 모두 임원준을 간신이라고 말하였는데, 전하께서는 무슨 까닭으로 듣고서도 묻지 아니하십니까? 신은, 전하께서 마음으로는 임원준의 간사함을 아시면서 묻지 아니하는 것인지, 임원준을 옹호하고자 묻지 아니하시는 것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성종은 오랫동안 침묵하다가 말했다.

"임원준은 의정부의 대신이지만 간사한 형상이 사실이면 용납할 수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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