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화 한국농어촌공사 진주·산청지사장
강동화 한국농어촌공사 진주·산청지사장

[한국농어촌방송/경남=강동화 한국농어촌공사 진주·산청지사장] 제5호 태풍 다나스가 북상한다는 소식에 핸드폰으로 문자가 날아든다. “기관장들은 태풍에 대비하여 정위치 하기 바람” “태풍 북상에 따른 심각단계(RED) 알림” 이제는 꽤나 익숙해진 문자라 부서별 비상대책회의를 마치고 사무실에서 대기하는 중 비와 관련된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린다.

강 건너 불구경한다고 했는데 산 너머 물 구경을 하면 어떤 기분이었을까? 내 일이 아니면 큰 부담 없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 데, 50여년도 훌쩍 넘긴 이야기지만 태풍을 기다리며 그 시절 이야기를 꺼내볼까 한다.

나의 고향은 진주시 내동면 유수리 정동마을이다. 물이 좋은 동네라서 정동(井洞)마을이라 했고, 특별히 버드나무가 많아서 유수리(柳樹里)라고 불렀다. 유수리 하면 중생대 백악기 화석산지가 발견되고 그 학문적 가치를 인정받아 1997년 12월 문화재청에 의해 천연기념물 제390호로 지정된 곳이라는 것은 관심 있는 많은 이들이 알고 있으나 정작 이곳이 남강댐 물을 사천만으로 보내는 분수령(分水嶺)이었던 곳을 기억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이란 말이 있는데 산은 스스로 물을 나누는 고개가 되고 물은 산을 건너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어린 시절을 낙남정맥 (洛南正脈)을 100여 미터 잘라 남강댐 물을 사천만으로 연결한 바로 그 지점에 살았다. 이곳은 남강댐에서 사천만으로 흐르는 11km 가화천의 1/3지점에 위치한다.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그 당시 10대 건설사인 대한전척공사가 사업을 맡아 진행했는데, 매일같이 수많은 중장비가 움직이고 인공적으로 하천을 만드는 발파소리가 하루에도 수차례 진동하고, 온 마을 사람들은 농사일을 뒤로하고 방수로 현장에서 일을 했다. 이렇게 거대한 인공수로가 만들어졌고 새로운 물길은 가화천을 따라 사천만으로 연결되었다. 그러면서 조그마한 동네하천은 국가하천으로 그 체급이 바뀌었다.

그 시절 남강댐에서 물을 내려보낼 때는 미리 사이렌을 울렸다. 물을 내려 보낼 예정이니 강가에서 얼른 피하라는 경고의 뜻인데 사이렌이 울리면 우리는 수업을 하다 말고 일제히 물 구경을 나갔다. 요즘에야 매뉴얼대로 안전하게 물을 흘려보내고 있지만, 그 당시는 댐을 막은 초창기라 지금처럼 민주적(?)으로 수문을 열고 닫던 시절을 아니었다. 계곡에서 큰 홍수가 지면 물이 일어서서 내려온다고 하는데 남강댐의 수문을 열면 가화천으로 물이 일어서서 내려오는 모습을 자주 보곤 했다.

수몰지에서 초가지붕이 둥둥 떠내려오고, 집채만 한 바위는 굉음을 울리며 구르고, 집에서 기르던 돼지며 닭, 심지어 황소까지 떠내려오곤 했는데 호기 많은 동네 청년은 그 급류 속을 로프를 메고 들어가서 황소를 끌고 나오는 이도 있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방수로는 가화천을 따라 지금의 나동공원 아래에 거대한 인공 방수로를 만들었다. 수문을 열면 방류되는 거대한 물줄기는 거침없이 방수로를 따라 빠르게 흐르고, 유속을 줄이기 위해 설치된 감쇄공에서 솟아오른 물줄기는 30여m는 족히 올라 그 아래 큰 정수지(그 당시 우리는 가화소라고 불렀다)를 만들었다. 거대한 방수로에 휘몰아치며 내려가는 물줄기는 때로는 안개를 만들고 때로는 햇살에 반사되어 무지개다리를 만들고…….

사이렌이 한 번 더 울리면 우리는 수업을 접고 일제히 방수로로 내려갔다. 낮아진 물줄기에 갇혀있던 붕어랑 잉어 쏘가리가 물이 흐르는 방향으로 뛰어내리면 우리는 방수로 아래에서 어른 팔뚝만한 물고기를 맨손으로 잡곤 했다.

세차게 내리던 빗줄기의 세력이 한풀 꺾이고, 새벽 6시를 지나면서 태풍은 내륙을 관통한다는 당초 예보와는 달리 서해안 목포 부근에서 열대 저기압으로 변했다. 어릴 적 편안하게 산 너머 물 구경한 느낌을 지금은 가질 수 없지만, 사무실의 물관리자동화실(TM/TC)에 설치된 CCTV로 진주·산청지사에 설치된 47개소의 배수펌프장에 얼마나 많은 물이 들어오는가를 보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다.

그동안 정부에서는 안전한 영농을 하기 위해 많은 농업기반시설을 만들고 개보수하였지만, 급변하는 영농환경과 기후변화를 따라가기에는 아직도 어려운 게 사실이다. 쓰임새가 많은 정부 재원이지만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생명과도 같은 우리의 농업이 물속에 잠기지 않고 풍년농사가 될 수 있도록 통 큰 지원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다행히 태풍 다나스는 이곳에는 큰 피해 없이 지나갔다. 밤새 비상근무를 한 지사 가족들의 얼굴이 피곤 해 보이긴 하지만 농경지 침수나 별다른 사고 없이 상황이 마무리되어 비교적 밝은 표정이다. 큰 물 구경 못한 것 다행으로 삼고 집에 가는 길에 따뜻한 사우나로 피로를 풀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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