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촌방송=최양부 바른협동조합실천운동본부 이사장] 세계협동조합연맹은 창립 100주년이 되는 1995년에는 3번째로 1966년에 채택한 원칙을 수정한 새로운 7원칙과 함께 처음으로 협동조합의 정체성에 관한 정의와 가치를 정리하여 발표함으로써 협동조합의 본질적 성격을 더욱 명확하게 규정했다. ICA가 협동조합의 정체성, 가치, 7원칙을 새롭게 정리하게 된 역사적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협동조합 운동의 역사는 1980년 10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27차 ICA 총회를 협동조합의 21세기를 준비한 역사적인 총회로 기록하고 있다. 그 이유는 총회에서 발표된 ‘서기 2000년의 협동조합’이란 ‘레이들로 보고서’ 때문이다.

캐나다 협동조합운동가이며 ICA 중앙위원과 집행위원으로 활동한 레이들로(Alexander F. Laidlaw, 1907-1980)는 1978년 9월 코펜하겐에서 열린 ICA 중앙위원회의 위촉을 받아 보고서를 작성에 나섰으며 그 결과를 모스크바 총회에서 발표했다. (A. F. 레이들로, ‘서기 2000년의 협동조합: 1980년 모스크바 ICA 총회 A. F. 레이들로 보고서,’ 한국협동조합연구소, 2000:3, 158-160) 레이들로는 보고서에서 세계협동조합 운동이 직면한, 그리고 앞으로 직면하게 될 문제를 적시하고 이에 대한 대응방안을 제시했다.

레이들로 보고서가 발표된 직후 세계협동조합은 협동조합의 본질과 가치에 대한 논의를 새롭게 시작했고 15년간의 자기성찰과 치열한 논쟁을 거쳐 마침내 1995년 총회에서 협동조합의 정체성과 가치와 7원칙을 새로 채택하였다. 레이들로는 위기에 처한 현대협동조합을 구원한 구원의 빛의 역할을 했다.

협동조합의 약점과 결함

레이들로는 세계협동조합은 3단계의 성장과 변화를 거치면서 발전해왔으며 단계마다 협동조합은 극복해야 할 위기에 직면해 왔다고 진단한다. 첫 번째 단계는 협동조합 발전의 초기 단계로 ‘신뢰 위기’를 극복하는 문제가 가장 중요했다고 지적했다.

협동조합에 관한 생각 자체를 명확하게 정립하지 못한 단계에서 대다수가 협동조합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지, 그리고 지속할 수 있을지 의문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신뢰 위기는 대부분 협동조합 운동을 이끄는 선구자들의 신념과 열정을 통해 협동조합이 지속하고 자리를 잡아가면서 바람직하고 훌륭한 조직으로 실체를 인정받기 시작하면서 극복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협동조합의 발전이 시작하면서 두 번째 위기인 ‘경영위기’가 찾아온다. 협동조합이 경험 미숙으로 사업에서 시행착오와 실패를 거듭하면서 협동조합이 사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을지가 문제가 되었다.

이 때문에 협동조합에 적합한 경영기법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생겨났다. 이러한 경영위기도 협동조합이 경험을 쌓아가고, 더 효율적인 경영기법을 개발하고, 더 젊고 유능한 협동조합경영자들이 나타나면서 점진적으로 극복되어 나갔다.

두 차례의 위기를 극복한 협동조합에 이제는 세 번째 단계의 위기가 찾아온다. 그것은 협동조합을 왜 하는지, 협동조합을 하는 참된 목적, 사업체로서 성공한 협동조합은 여타의 자본주의적 시장 기업과는 어떠한 명백한 차별성을 가지는 지, 고유의 역할 수행은 잘하고 있는지 등에 대한 협동조합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묻는 ‘이념(정체성) 위기’였다. 이 문제는 협동조합이 사업적으로 성공하기 시작하면서 더욱 심각한 문제로 부각하게 되었다.

레이들로는 현대를 ‘문명의 기둥이 흔들리는 시대’라고 진단하고 ‘이처럼 어려운 시대에 협동조합은 다소 광기 어린 세계 속에서 온전한 정신을 가진 섬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라며 1980년 대회를 기점으로 ‘협동조합 인(人)이 전 인류를 위해 정의에 입각한 새로운 세계와 사회질서를 건설하기 위해서 노력해온 시대의 선구자로 기억되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라며 협동조합이 당면한 약점과 결함을 극복하기 위한 협동조합의 사상적 기초가 되는 협동조합의 본질과 원칙을 검토하고 21세기를 향하여 협동조합이 해야 할 과제를 검토했다. (레이들로 2000:5-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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